예수님처럼 루터처럼2 – 삶의 열매로 완성할 우리 시대의 종교개혁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기획
예수님처럼 루터처럼

삶의 열매로 완성할 우리 시대의 종교개혁

글 원용일 목사(직장사역연구소장)

모인 교회에서 흩어진 교회로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유럽의 교회들 중에는 주일 오후에 ‘폐문의식’을 하는 교회가 있었다. 왕조 시대에 왕위 입궁한 후에 하던 폐문의식은 이해되는데 교회에서 출입문을 잠그는 의식은 어떤 의미였는가? 교회의 기물을 훔쳐가는 좀도둑을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다. 폐문의식을 했다고 주중에는 전혀 교회의 문을 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는 종교개혁의 핵심적 상징이 담겨 있었다.

이제 ‘모인 교회’에서 교우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공동체에서 교제하며 위로받고 힘을 얻었으니 ‘흩어진 교회’로 나가라는 파송의 의미였다. 모인 교회에서 하는 교회 활동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일터와 가정을 비롯해 지역사회와 국가에서 세상에 영향을 주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세상에 나아가 우리 아무개 교회의 대표 선수로 세상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다가 다음 주일에 다시 오라는 성도의 사명과 책임에 관한 의식이었다. 우리 개신교인들은 바로 이런 야성(野性)을 가졌던 선배들의 후예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1517년 10월 31일 이후 유럽을 들끓게 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올해로 500주년을 맞기에 더욱 뜻 깊다. 그런데 과연 개혁자들이 주도한 종교개혁은 성공했는지, 교회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회의 본질을 회복했는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종교개혁의 핵심적 두 바퀴였던 이신칭의 교리와 만인제사장론으로 오늘 우리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확실한 구원관과 직업소명론으로 무장하고 있는가?

16세기에 또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있었다.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세례파 혹은 재침례파)들은 가톨릭과 개혁 교회 양쪽의 박해를 받아 16세기 이후 이백 년 동안 사천 명의 성도가 순교 당했다. 이들이 강조한 고백할 수 있는 성인(成人)이 받는 ‘세례’란 전통적 의미의 성례전만은 아니었다. 순종하는 제자의 삶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데 주력했다. 제자도를 추구하는 매일의 삶은 교회 안에 한정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일에 주력했다.

구원 받은 성도는 행동할 수밖에 없다

아나뱁티스트들은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도 동의하고 이신칭의 교리도 전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성경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을 추가했다. 참된 구원의 신앙은 칭의뿐만 아니라 성화도 가져다준다고 그들은 강조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은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나뱁티스트들은 중요하게 여겼다. 사도 야고보가 가르치는 내용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아나뱁티스트 지도자인 메노 시몬스가 루터교인들의 모습에 대해 비판했다. 맥주와 포도주를 한껏 마셔 술에 취한 코와 입술로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났다는 시편을 읊기만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복음적인 귀한 형제라고 추켜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루터 자신도 이런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성경적인 새로운 교회를 세웠지만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 나은 성도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생활의 변화와 개선이 없는 루터교회 교인들의 현실을 매우 유감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루터는 자신의 책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따로 기록해 두어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과 분리시켜 보려고 했으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길 만큼 충분하게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어디 없소?”

그러니 루터는 이렇게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어디 없소?” 루터가 성직자들의 소명만이 고귀하다고 보았던 가톨릭교회를 반박하고 크리스천의 직업 자체가 소명이라고 주장한 직업소명론은 바람직한 소명 이해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마르틴 루터는 직업소명론을 통해 진정으로 종교개혁을 성취했는가?”
아나뱁티스트들이 이 질문에 답했다. 그들은 박해받고 순교하면서도 세상 속 크리스천으로 모범적이며 탁월한 삶을 살았는데, 루터의 만인제사장 직분을 종교생활과 사회 전반에 응용하며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심지어 적대자들도 인정했다.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의 분파 독립을 촉발했던 사람으로 재세례파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나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의 삶과 행위를 조사한다면 우선 나무랄 데 없고, 경건하며, 겸손하여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 삶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삶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 사제로 아나뱁티스트를 비난한 책들을 썼던 크리스토퍼 피셔는 아나뱁티스트 신자가 영지 관리인으로 인기가 높고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을 개탄했다. 어떤 영주들은 아나뱁티스트 신자에게는 회계(會計)를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신임한다고 했다. 피셔는 영주들이 아나뱁티스트들을 고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가톨릭교회와 개혁파교회의 신자들이 그들보다 신실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현실을 한탄했다.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업이 곧 소명이라는 명제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실제로 우리의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삶을 통해 소명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명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21세기에 필요한 진정한 종교개혁은 삶의 현장에서 소명을 실천하는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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