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며

2017 AUTUMN Special Theme 시온의 대로
테마 인터뷰

기적의 꽃이 피는 소명의 언덕에서 삼성서울병원 김정숙 원목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며 환자와 소통하고 있는 김정숙 원목

직접 그 자리에 서 보지 않고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두려움을 결코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생의 가장 고독한 시간 속에 놓인 사람들의 곁을 평생 지키며 병원 선교의 불씨를 뜨겁게 지피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김정숙 원목. 중대용산병원에서 팔 년, 삼성서울병원에서 이십삼 년째, 삼십여 년 간 가꾸어 온 소명의 언덕에는 손길과 발길이 닿은 곳마다 새 생명이 자라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던 말기 암 환자들이 완치되어 봉사자로 와서 환자를 돌보는 기적의 꽃이 피고 있다. 오늘도 생명을 품은 김정숙 원목의 발걸음은 삼성서울병원 이천여 개의 병상을 향한다. 병상에는 웃음이 있고, 희망이 있다.

기독교실 문을 여세요
삼성서울병원 본관 지하 1층 기독교실의 문을 열면 이십삼 년째 환자들의 곁을 지켜 온 김정숙 원목이 있다. 몇 평 안 되지만 누구든 와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십자가가 걸려 있는 작은 기도 공간과 김정숙 원목의 책상도 한쪽에 있다. 책상 위에는 병실 심방 요청, 기도 제목,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를 만나고 기록해 놓은 갖가지 사연들이 수북하다. 외국이나 지방에서 온 환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도 김정숙 원목이 있는 이 기독교실이다.
“병실에 가서 환자들 상담하고, 기도하고, 복음 전하고, 퇴근할 때면 마음이 그렇게 충만할 수가 없어요. 생명을 살렸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함은 환자에게도 임하지만 제게 더 많이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생명을 살렸으면 저도 산 것이에요.”

그럼에도 강하고 담대했던 동역자들
뇌종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느라 직장암 말기가 되도록 자신의 병을 몰랐던 오륜교회의 허 권사는 암세포가 항문 전체에 퍼진데다 폐까지 전이되어 수술 전 항암치료를 먼저 해야 했고, 인공항문을 몸 밖으로 만들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김정숙 원목과 허 권사의 가족은 저녁마다 예배를 드리며 간절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하나님, 우리 권사님 몸 안에 있는 암세포를 한곳으로 몰아서 수술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인공항문을 만들지 않게 해 주세요.”
그 후 검진에서 허 권사의 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항문 전체에 퍼져 있던 암세포도 보이지 않았으며, 기도한대로 암세포가 직장 한곳으로 모여 수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수술한 지 올해로 칠 년, 완치 판정을 받고 매주 목요일 직장암·대장암 환자들의 병실이 있는 암병원 7층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십 년 전 유방암 말기로 석 달도 못살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던 박 권사 또한 완치되어 유방암 환자들이 입원한 암병원 5층 병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환자들은 자신과 같은 병을 앓았던 박 권사의 말을 당연히 주목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복음과 희망이 전해진다고 한다.

직장암을 앓았던 목요 봉사팀 허정자 권사의 기도와 간증으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환자를 김정숙 원목이 전도하고 하나님을 영접시킨 후 병상 세례를 주고 있다

내가 서 있을 자리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교포가 삼성서울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다가 투병 끝에 숨을 거둔 일이 있다. 때마침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의 중심에 있던 때였고, 외부인의 병원 출입이 금지되어 단 한명의 조문객도 받을 수 없었다. 장례 전광판의 불도 꺼져 있었고, 분양소도 사용하지 않았던 참 외롭고 쓸쓸한 장례였다고 김정숙 원목은 그때를 회상한다.
고인의 남편, 아들과 딸, 여동생만 참석한 가운데 염습 실에서 장례 예배를 드리고, 바로 화장터로 가서 마무리 예배를 드리고, 뉴질랜드로 떠나는 가족들을 배웅하며 김정숙 원목은 이 자리가 자신이 서 있을 자리임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고 한다.
“고국에 와서 투병하다 죽었는데 예배 없는 장례가 된다면 얼마나 쓸쓸하겠어요. 말씀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채워주신 것이 은혜이지요.”
주지 스님을 전도하여 병상 세례를 베풀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찬양으로 임종을 지키며 장례 일정까지 맡은 일을 비롯하여 삼십여 년 동안의 병원 선교는 하나님의 임재와 기적을 체험하는 은혜의 산실이었다.

내게 주신 가시
그동안 많은 환자들을 돌보아 왔지만 이십대부터 앓아온 자신의 허리디스크는 여전히 안고 사는 김정숙 원목. 더군다나 2009년에는 덤프트럭이 김정숙 원목의 차를 들이받는 바람에 허리 수술까지 했다. 허리의 통증은 평생의 동반자처럼 김정숙 원목을 떠나지 않는다.
“삼십육 년간을 이런 허리로 살아왔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 이런 허리를 가지고 34개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것, 허리의 연약함이 없었다면 이 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가시를 주셔서 붙잡아 놓고 병원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또 한 가지는 제가 고통을 늘 겪고 있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환자가 너무 이해가 됩니다. 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아닌가 합니다.”

2016년 삼성서울병원 직원들과 함께 했던 스와질랜드 의료 봉사
성탄 예배. ‘신우회’라는 이름 조차 허락치 않았던 삼성서울병원에서 성탄예배를 드리기까지는 김정숙 원목의 섬김의 발걸음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기독교인의 편견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임종의 모습이 다른가?’라는 질문을 하자 김정숙 원목은 그동안 수많은 임종을 지켜본 결과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영과 육이 분리되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러나 죽은 모습은 누구나 평온해요. 분명 죽음에는 색깔이 있어요. 그런데 그 색깔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고 병에 따라 색깔이 다르고, 죽어가는 모습이 달라요. 간암이나 췌장암에 걸리면 황달이 심해지고, 황달이 심해지면 흑달이 오기도 해요. 혈액종양을 앓았던 환자들은 얼굴이 푸르스름해지고 혈관이 튀어나와 보기가 상당히 거북하고, 죽어가는 과정도 고통스럽지요. 그런 것을 가지고 ‘아름답게 죽었다, 아니다’, ‘천국에 갔다, 아니다’ 하는 것은 너무나 비기독교적인 것이고 너그럽지 못한 생각이지요.”

그 선을 넘어야
한밤중에도 환자의 곁으로 달려가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한 삼십여 년. 헤진 신발에 단 벌을 면치 못했지만 병실만 가면 전도가 되는 기쁨에 팔 년을 사례비도 없이 사역했던 중대용산병원. 온누리교회에서 파송 받은 지금은 좀 더 안정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품고, 신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삼성서울병원을 생명의 텃밭으로 일구고 있는 충직한 일꾼!
그 누구보다도 많은 환자와 죽음을 마주했던 김정숙 원목이 결코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병을 선고 받고 생의 가장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고난을 통해 성숙해지고 담대해지지요. 고난은 겪어내야 할 과정이에요. 단번에 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단번에 고통이 없어지지도 않지요. 성령 안에서 힘을 얻고, 말씀 안에서 위로 받고, 기도 속에서 깨닫고, 예배를 통해서 자신을 다스려가다 보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요. 이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 가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취재 전영의 기자

더 많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