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

‘남영동 1985’를 보고 ‘그때’와 ‘지금’의 이야기를 나누다

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859월 어느 날, 민주화 운동가였던 고 김근태 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현 인권센터)에 끌려가 22일 동안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남영동 1985’가 지난달 개봉했다. 고 김 의원은 풀려난 후에 보건복지부 장관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서 활동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났다. 고 김 의원을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는 수감 중에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씨는 김 의원의 죽음 후에도 지난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미화하면서 일관된 자세를 유지해오다 올해 초 면직당했다. 현 정권 말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런 영화가 나온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남영동’이 우리의 아픈 역사의 한 갈래임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아픔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 시대를 맞이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겨울 바람 스산한 오후, 김홍일 신부(대한성공회·52), 김근주 목사(푸른뜻교회·46), 김형욱 간사(기독연구원 느헤미야·30)와 함께 남영동 1985’를 봤다. 영화 속 잔혹한 장면들보다 더 눅진한 아픔으로 남은 역사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시대를 지탱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한 세상에서 한국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얘기를 나눴다.

▲ 영화 ‘남영동 1985’를 보고난 후, 김홍일 신부(좌), 김근주 목사(우)와 함께 ‘그때’와 ‘지금’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5년은 어떤 시대였나?

김홍일 신부(이하 김 신부): 1980년대는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때는 대통령의 영구집권이 충분히 가능했다. 이를 반대하고 반정부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그때 당시 인천에서 공장생활을 하면서, 고문을 받고 나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에게서 대바늘로 손끝을 찌른다’ ‘입을 오랫동안 틀어막아서 침을 나오게 한다’는 등 끔찍한 고문 얘기를 들으면서 세상이 옳지 못함을 깨달았고,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고민을 하는 가운데 목회자, 수녀들이 민주화 운동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종교인이 되어 사회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이후 성공회에서 성직을 시작했고, 그때 성공회 나눔의 집이란 단체가 조직되어 그 단체를 통해 빈민사역에 동참했다. 그런 사역을 하면서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조금씩 냈다.

김근주 목사(이하 김 목사): 그때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에 나섰다. 공부를 그만두고 노동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많이 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죄책감에 빠졌다. 그들은 공부를 해서 이 사회를 옳게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자신만의 명분을 갖고 공부 했다. 그들이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유일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있었던 것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옳다는 명분이었다. 나서서 데모는 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는 복음을 따라 살 것이라는 나만의 논리가 있었다. 그런 논리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때 당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헌신하고 자기 몸을 던진 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것은 고귀한 경험이다. 평생 정의를 위해 고민하며 괴로워할 수 있는 것은 복이고 은혜다.

영화를 보면, 고 김 의원이 배후 인물로 함세웅 신부와 권호경 목사를 언급한다. 그 시대에 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 김홍일 신부

김 신부: 그때 당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교회였다. 교회에서 운동하는 이들을 많이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 교회가 이 일에 참석했다고 할 수는 없다. 주로 소수의 민중교회가 참석했다. 국내보다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지원이 컸다. 그때 당시 인권과 민주화는 국제적인 이슈였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87년 이후 민주화가 이뤄지고, 다른 정치적 이슈들이 생기면서 개신교 일부가 정치권으로 진입한 것이다. 예언자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교회는 점점 더 보수화되어버렸다.

김 목사: 목사들 일부가 민주화운동에 나섰지만, 주류교회 대부분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독재 정부의 비호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그때 당시 교회 대학부들은 장로들과 많이 싸웠다.장로들은 교회에서 무슨 데모냐’ ‘예수 믿는 사람은 데모하면 안 된다며 청년들의 민주화 운동을 반대했고, 학생들은 정의를 외쳤다. 학생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사회문제 앞에서 교회는 아무런 답을 줄 수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학생들 나름대로는 참여하고 싸웠다. 그렇게 고민하고 싸웠던 그들이 지금 복음주의권의 핵심이 되었다.

영화는 고 김 의원의 고문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후반 부에 그의 정치활동이 조금 묘사된다.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 김근주 목사

김 목사: 김 의원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쉽지는 않았다. 너무 참혹해서 오히려 담담하기도 했다. 고문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안타까웠다. 보이지 않는 공권력이라는게 멀쩡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김 의원이 고문을 받고 옥살이한 후에도 신념이 바뀌지 않고 후에 정치 활동을 한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동료의 이름을 말함에 따라, 그들이 잡히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심했을텐데도 그는 그것을 다 이겨냈다.

김 신부: 김 의원과 같이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우리의 역사는 아프고도 슬픈 역사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그때 당시 세계의 모습이 어떠한지 말해준다. 작은 예수의 탄생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고 약하지만, 그 안에 사람들이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힘, 저력이 있다. 김 의원은 무기력하게 고문을 받았지만, 그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세상은 힘 있는 이들의 권력으로도 움직이지만, 약하고 힘없는 이들 또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형욱 간사(이하 김 간사) : 김 의원이 고문을 받는 장면의 이미지는 너무 강렬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에는 감정이 무뎌졌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그의 비명 너머로 들리는 야구 중계는 대공분실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비상식의 공간인지 잘 보여줬다. 국가 권력의 무서움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영화 후반부에서 국가보안법(보안법)을 없애려고 했는데 없애지 못한 것은 고문만큼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마지막에 고 김 의원이 정면을 응시하는 것이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젊은 세대들은 교육과정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지 못했다. 현 정권 말기에 이런 영화가 나온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있을 수도 있지만, 그때를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역사를 바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끔찍한 투쟁의 역사는 끝났지만, ‘정의를 이루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에 대해 말해 달라.

▲ 김형욱 간사

김 목사: 세상이 말하는 정의는 하나님의 정의에 비하면 너무 낮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정의의 핵심은 옳은 일에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다. 정의는 불의한 것에 맞설 때도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마음은 우리가 예수님이 매달려 돌아가신 십자가를 보며 같은 마음을 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의가 반드시 이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의가 이겨서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의 힘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더욱이 믿는 자들은 헛된 것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협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

김 신부: 민주화 운동 당시 불렀던 훌라송을 보면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는 가사가 나온다. 김 의원은 이 가사가 삶에 와 닿았을 것이다.그런 고민을 우리도 해야 한다. 미가서 6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씀이 나온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데서 나오는 실천이 바로 정의.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교회에서 말하는 정의는 자비와 함께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 간사: 정의는 복잡한 문제다. 그런 문제는 시간의 연장선에서 어떻게 풀어나갈까를 고민해야 한다.김 의원의 당시 선택을 정의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때 살아서 계속 삶을 이뤄나갔다는데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85년의 사건 때문에 2004년에 정의를 이뤄낸 것이 아닐까.정의의 문제는 시대와 상황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현재와 미래, 과거를 생각하면서 다뤄야 한다. 정의의 문제는 가볍지 않다.

민주화를 이뤘고, 21세기를 맞이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어떤 모습인가?

김 신부: 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정의가 너무나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자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사회적 이슈가 없는 것은 아닌데 국민이 그런 문제에 대해 예전처럼 민감하지 않다. 무력함에 빠져 있다. 민주화가 이뤄지고 진전됐음에도 다시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촛불시위가 일어났었다. 많은 국민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정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시각이 필요하다.

김 목사: 87년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민주화와 같은 사회구조를 움직이는 거대한 것이었다.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지고 동구권이 붕괴된 이후 그런 움직임은 가라앉았다. 그다음부터는 각론이 진행됐다. 사회를 이뤄가는 환경, 교육, 복지, 경제 등에 대한 논의가 저변에서 이뤄졌다. 거대한 이야기에서 세부적인 이야기들로 옮겨진 것이다. 그때 당시 운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고민하며 마음 아파 했던 이런 논의를 통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 시대는 그런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 영화 ‘남영동 1985’중 한 장면.

한국교회는 정의, 인권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김 목사: 영화에서 이근안 씨가 김 의원을 고문할 때 휘파람으로 클레멘타인을 흥얼거렸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분명 이근안 씨가 휘파람을 안 불고 있는데도 어디선가 클레멘타인 소리가 들린다. 이는 그 사람은 변화됐을지 모르지만, 그 역할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건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회개가 때로는 무기력하다. 교회의 잘못된 구조가 바뀔 때, 옳은 일에 대하여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다.

김 신부: 공장에서 일할 때 세상은 나를 존엄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해 줬다. 그 이후 신앙을 갖게 됐다. 교회는 사람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내가 존엄한 것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이 존엄한 것을 알 수 있다. 김 의원이 이근안 씨를 다시 찾아갔던 것은, 내 삶이 존엄하니까 그 사람도 존엄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김 간사: 김 의원이 정치인으로 재기한 데는 동료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직접 정의의 문제에 나서지 못한다고 해도,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을 따뜻하게 지지할 수 있는 우정, 연대가 필요하다. 투쟁의 민주화는 끝났지만, 시민단체를 통해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교회들이 그런 사람들을 지지해 주는 마음을 갖고 사랑의 연대를 쌓아갔으면 좋겠다.

교회가 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김 목사: 교회가 그동안 사회복지 관련 일들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교회가 사회복지를 하는 목적은 대부분이 전도다. 전도만이 목적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들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 일이 성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일들로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김 신부: 교회는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흑인해방운동에 힘썼던 마틴 루터 킹은 나는 계속해서 저항할 것이다. 동시에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보여줬던 길이다. 옳지 못한 것에 사랑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와 일반 시민단체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교회가 사회에 선한 힘을 심어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해달라

김 목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계속 죄를 범했고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이후 그들이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데, 아름답게 돌아보지 않는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상 숭배했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되돌아본다. 우리도 역사를 그렇게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의 선배들 대부분이 신사참배를 했고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 한국교회가 그런 죄의 역사를 바로 돌아봐야 한다. 과거를 덮지 말고 끄집어내야지 더 나은 미래가 있다

김 신부: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역사는 후퇴한다. 시민의식이 성장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결코 지켜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신앙인들을 건강한 시민으로 키워내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는 입시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교회만이 그런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너무 교회 중심적이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삶에서 사제적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크리스천은 사회에서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럴 때에 세상도 변한다.

김 간사: 우리는 지금 김 의원처럼 투쟁하다 고통받고,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이처럼 자신의 것을 내어줄 때 그것이 바로 새로운 뭔가를 위한 씨앗이 된다. 우리가 바라는 진보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 희생은 예수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희생을 누군가가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 김근주 목사는 “신앙의 선배들 대부분이 신사참배를 했고 끔찍한 죄를 저질렀으며 한국교회가 그런 죄의 역사, 과거를 덮지 말고 바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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