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진 진실에 대하여

토머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더 헌트>

‘크로스로랑 영화보자’가 고른 두 번째 영화는 <더 헌트>(토머스 빈터베르그 감독)다. 영화보기를 준비하면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베를린>이 극장가를 장악한 탓에 결국 <더 헌트>를 보기로 했다. 어느 수요일 오후, 김성수 목사(예드림교회·작은도서관 호모북커스 대표), 김진형 출판기획자, 박진영 간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와 기자는 필름포럼에 모여, 때로는 숨죽이며 때로는 터져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진실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악당과 악인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지만, 거짓이 진실을 압도해가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 왜곡되고 묻혀지는 진실은 우리네 삶 어딘가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일상과 맞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위안도 들었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하고 냉혹하다는 점에서 겨울의 혹한보다 차가운 삶의 냉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본 네 사람은 상영 내내 힘겨웠던 감정을 그러모은 채 인근 카페에 자리를 잡고 ‘불편한 진실’에 대한 조각보를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 글에는 무지막지한 스크롤 압박과 더불어 <더 헌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다.

▲ 주인공 루카스 역을 연기한 매즈 미켈슨.

영화 줄거리: 아내와 이혼 하고 재직했던 학교가 문을 닫아 직장을 잃은 루카스는 고향에 내려와 유치원 교사로 일하게 된다. 같은 유치원 동료를 사귀게 되고 아들 마커스와 함께 하는 삶을 꿈꾸지만, 제일 친한 친구인 테오의 딸 클라라 때문에 평온했던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클라라는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루카스를 유치원 선생님이 아닌 한 남자로 보게 되고 마음을 담은 선물을 건네지만, 루카스는 이를 사양한다. 마음이 상한 클라라는 루카스가 자신을 성추행 했다고 유치원 원장 선생님께 말하고, 클라라의 거짓말은 정말‘거짓말처럼’루카스의 일상을 앗아가 버린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루카스는 친한 친구들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불신과 폭력에 둘러싸인다.

기자: 영화를 보면서 나쁜 사람이 적이 되는 게 아니라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 그것도 나의 친한 친구가 하루 아침에 적대시해야 할 대상이 돼버릴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한 마을, 한 공동체에서 자행되는 편 가르기의 과정이 설득력 있게 묘사됐다. 아버지가 딸의 말을 믿고 친한 친구에게 등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객관적 사실과 예리한 판단력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들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영화 결말이 충격적이라서 마음이 힘들다.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말해 달라.

박진영 : 처음부터 영화가 누가 거짓을 말했는지 전제하고 이어지니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쉽게 오류를 범하는지, 참과 거짓의 판단력이 모호해지는 부분을 잘 묘사한 것 같다. 영화에서 루카스의 아들이 아버지 친구들에게 “한번 더 생각해달라”고 외쳤던 말이 중요하게 들렸다.

김진형: 내 아이를 영화 속 상황에 대입해 본다면, 나도 그런 일을 겪으면 나와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테오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다. 대선을 겪으면서 48 대 52로 구분되는 모습을 보지 않았나. 48에 속한 사람은 이번 대선을 정의가 불의에 대항하는 구도로 몰고 갔다. 그런데 52에 속한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처럼 48과 한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다가가려는 노력보다 나와 우리는 정의의 편에 서있고, 상대방은 불의와 결탁한 악마적인 사람이라고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런 진영논리는 폭력적으로 표출된다. 진영논리를 펼치는 사람들도 한 진영에서 벌어지는 거짓과 위선은 쉽게 용납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일어난다. 일례로 복음주의권 안에서만 봐도 자기 조직과 자기가 속해있는 그룹 안에서 일어난 위선과 불의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가는 때가 많다.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굉장한 비판을 하면서도 말이다.

김성수: 마녀 사냥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많이 믿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둘째 아이가 거짓말을 아주 세련되게 하는 걸 보면서 실망했던 일이 생각났다.

김진형: 아이들의 말에는 상상력과 거짓말이 교차한다. 아이는 거짓말을 했다기보다 상상한 것들을 말한 것뿐이다. 클라라도 마찬가지다. 영화 후반쯤 클라라의 부모는 클라라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알았던 거 같다. 하지만 그 상황을 뒤집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묻어버린다. 이미 폭력이 발생하는 등 상황을 뒤집을 수 없는 데까지 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김성수 목사ⓒ크로스로

김성수: <더 헌트>대해 살펴보다가 몇 년 전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다우트>(Doubt)라는 영화인데 메릴 스트립이 원장 수녀로 나오는데, 새로 부임한 젊은 신부와의 갈등에 대해 그린 영화다. 원장 수녀는 규율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이고, 젊은 신부는 신앙에 회의를 갖거나 의문을 가질 수 있다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두 사람은 자주 갈등을 빚는다. 마침 젊은 신부와 어린 소년간의 동성애 루머가 퍼지는데, 원장은 이 루머가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고 추궁한다. 이런 와중에 젊은 신부가 말씀을 전한다. 한 여인이 신부에게 “다른 사람을 험담한 것이 죄인가요?”라고 묻자 신부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자 여인은 용서를 빌었는데 신부가 여인에게 말한다. “자매님은 옥상에 올라가 베개를 찢고 오세요.” 여자는 그대로 했고, 신부가 여인에게 “베개를 찢으니 어떻게 됐냐?”고 묻는다. 여인이 “사방에 깃털이 날렸다”고 말하자 신부가 바람에 날린 깃털을 담아오라고 한다. “불가능하다”는 여인의 말에 신부는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결국 영화는 사람이 의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건강한 질문과 의문을 갖는 건 좋지만 의심했을 때 얼마나 크게 번질 수 있는지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의심은 쉽게 갖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박진영: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냐를 떠나서 내가 믿고 싶은 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거들을 뒷받침해 나간다. 주인공 루카스가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강아지를 묻고 나서 완전히 혼자가 됐을 때 교회에 가는 장면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교회에서 우는데 인간이 결국엔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신과 나만이 아는 진실이 있고, 자기가 진짜 혼자 됐을 때 신이라는 존재를 찾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인간이 가장 진실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 신이 나를 알아주는 공간이 교회라고 설정한 게 좋았고, 시기도 크리스마스여서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런데 루카스가 교회에 왔을 때, 공동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유심히 봤는데, 예상했던 대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피하고 수군거리는 모습이었다. 루카스가 테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루카스의 눈빛은 정말 진실하게 다가왔다. 주관적인 느낌이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마치 “너는 나의 진심을 알고 있지?”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 루카스의 눈빛을 통해 테오도 루카스의 결백을 확신했던 것 같았다. 별다른 대사 없이 흐른 장면이었지만 내겐 굉장히 임팩트있게 다가왔다.

김진형: 예전에 겪었던 일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감정이입이 컸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하지 않았던 일임에도 사람들이 왜 저런 일을 했을까하고 오해해서 많이 억울했었다. 영화에서 ‘일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장면 전환이 됐을 때 처음에는 주인공의 상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1년 새 오해가 풀렸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오해가 풀리고 진실이 밝혀졌다고 여겼다가, 마지막 장면을 보고 이건 상상도 아니고 진실이 밝혀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진실은 있지만, 그 진실이 언제나 다 밝혀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쉽게 오해하거나 오만을 갖게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진실은 다 밝혀진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나는 그 진실을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데 내가 믿는 게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향해 폭력적으로 나타낸다. 나는 그런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생각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도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끝까지 진실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인정할 때 나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대선 얘기도 나왔지만 52에 속한 사람이 이 나라를 말아먹을 사람들도, 불의의 편에 서있는 사람들도 아니라는 거다. 한 가지 위로되는 지점이 있다면 진실이 끝까지 밝혀지지 않을 수는 있는데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은 있다는 것이다. 루카스의 여자친구도 잠깐 의심은 했지만 결국 돌아왔고, 친구이자 아들의 대부인 브룬도 옆에 있어줬다.

▲ 크로스로랑 영화보자 두 번째 시간에는 김성수 목사(예드림교회, 호모북커스 대표), 김진형 출판기획자, 박진영 간사(기윤실)가 함께 했다. ⓒ크로스로

기자 : 거짓인지 아닌지 확실히 모르고 확신도 없는데 왜 거짓의 확산에 동참하게 되는 걸까.

김진형: 이 영화에서는 아이의 문제를 건드리니까 더 민감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건드렸으니까.

김성수: 그 생각도 해봤다. 내 자녀가 그런 얘기를 했으면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내 가족과 나 자신을 먼저 품고 감싸는 과정이 당연하게 작동하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 중에, 루카스의 아들이 테오를 찾아가 자신의 집 열쇠가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테오는 없다고 말한다. 영화 말미에 밝혀지지만 사실 테오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나쁜 짓을 하고 살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특별히 더 거짓말 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그걸 통해 자기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우리도 얼마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이 책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청림출판)에도 나온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거짓말도 아니고 적당한 수준에서 눈에 안 뜨일 정도의 거짓말을 하고 사는 거다. 우리가 그런 존재인데 착각을 하고 산다.

김진형: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사건이 전개되고 일년 후 루카스와 친구들,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클라라가 마루에 그려진 무늬 때문에 마루 위를 지나가지 못하고 있었을 때 루카스가 클라라를 안고 옮겨 준다. 나라면 도저히 못했을 행동이다.

박진영: 클라라로 인해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지만, 루카스는 클라라가 바닥의 무늬를 따라 걸어야만 하는 강박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다. 차라리 클라라의 아빠를 불러오는 게 나았을텐데 용기있거나 어쩌면 무모한 행동이었던거 같다. 최근에 죄와벌을 읽었는데 뭐가 죄고 뭐가 벌인지에 대한 관점으로 얘기를 하는데 살인을 저지른 로쟈에게 최고의 벌은 양심의 가책이었다. 영화에서 루카스가 교회에 갔을 때 맨 앞으로 걸어가 앉았던 용기는 자신이 결백하고 죄가 없고 그래서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김진형: 실제로 그런 일을 겪으면 주인공처럼 당당하게 행동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성범죄자들이 이사 오면 알려주던데, 그런 걸 보면 성범죄자들이 과오를 씻고 잘 정착할 수 있겠나 의문이 든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시도하고 상호 치료를 받게 하는 회복적 정의를 이룰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그 죄는 용서하기 힘들지만, 결국 사회로부터 이들을 격리시키는 것 아닌가. 루카스가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어딜 가든 통보받으면서 살았을 거다.

기자: 아마 클라라도 그 동네에서 살지 못했을 거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범죄자는 범죄자대로 낙인을 찍는다. 최근에 거짓말을 한 적이 있나? 있다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공개해 달라.

박진영: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저녁 먹었냐고 물어보시는데 안먹어도 먹었다고 말한다. 나쁜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아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말이 길어지니까.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령 옷을 사러 갔을 때 옷 잘 어울리냐고 물어볼 때 아닌 것 같아도 ‘잘 어울린다’고 얘기한다. 이런 식의 사소한 거짓말이 결정적일 때 드러난다. 영화 이야기 하고는 결이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내 삶을 들여다보면 거짓말의 일상성이 있는 것 같다. 매순간 진실만 말하는 건 어려운거 같다. 설명이 길어지니까.

김진형: 거짓말이 다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않는다. 악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 역시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 많은 거짓말을 했었다. 지금이라도 그럴 것 같다. 진영논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의 거짓말을 용납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는 폭력적인 게 될 수 있는데, 나는 이 사람이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누군가는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가령 진영논리를 놓고 본다면, 자기 진영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관대한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굉장히 비판적이다.

김성수: 최근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랑의교회와 관련해 후배의 주장을 듣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내가 딴죽을 걸면, 누구 편드는 거냐고 하는 얘기가 나온다. 객관적인 얘기를 드러내놓고 하기가 어렵다. 그런 일들이 SNS에서는 무수히 일어난다.

김진형 : 자기 진영 안에 있는 사람들은 결속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거기에 대고 다른 입장을 얘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자기 진영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관대하다. 내가 서평 쓰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일반 도서와 같은 경우 쓴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기독교 안에서 서평을 쓸 때 좋지 않은 말을 쓰면 힘든 일들이 생긴다(웃음).

기자: 그렇게 사실이나 자기의 입장을 묻어두고 침묵하면 결국 동참하거나 동조하게 되는 거 아닌가?

김성수: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얼마든지 자폐나 광기로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

김진형: 실제로 광기로 치닫는 사람들은 핵심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주변에 있는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핵심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박진영: 특히나 한국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데 한국교회는 더 민감하다. 비판적 얘기는 못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광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어렵거나 민감한 문제는 지혜롭게 풀자고 하는데 어떤 게 지혜로운 것인지 모르겠다. 교회는 정의를 세우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 때에 은혜와 지혜로 덮고 넘어가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다. 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성수: 김영민 선생님이 풍신자(風信者), 바람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신 적이 있다. 한국사회에 대한 얘기였지만 한국교회를 향한 일침이기도 하다. 풍신자가 무엇이냐면 사람들이 에너지를 투자해서 진실을 제대로 알고자 하기보다는 에너지를 안들이고 들려오는 정보나 소리에 일희일비 한다는 거다. 또 <당신들의 기독교>라는 책에 나오는 글에는 한국교회나 주변 그리스도인 가운데 성경의 텍스트를 가지고 진지한 고민과 질문을 치열하게 해서 기독교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진지한 고민을 통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 손에 이끌리거나, 집회의 분위기 등 정서적인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작용한다는 거다. 제대로 된 진실, 진리에 대해서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받았다’는 말을 쉽게 하거나 은혜를 너무 쉽게 받는다고 지적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하니까 제자들이 어렵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진짜 떡은 나다, 나를 먹는 것, 나를 수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제자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부담스러워 하고 저항을 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저 정도가 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진실이 부담스럽고 불편한거다.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리고 가는 게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기자: 우리의 믿음을 가장 위협하는 건 무엇일까?

김성수: 두려움 아닐까. 자기가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방어를 하게 만드니까.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는 작동할 수 있는 거라 본다. 영화 보면서 더 실감한다. 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인 거고. 영화에서도 브룬이 루카스의 아들에게 총을 건네줄 때 잘 다루라고 하는 대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총을 잘못 사용하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 신조가 말보다 침묵인데, 말을 잘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게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로 오해를 푼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우리는 말로 진실을 드러내려고 하지만 진실은 그 말 때문에 가려지기도 한다.

박진영: 예방적 차원에서는 침묵이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진형: 그럴 때에는 침묵하는 게 비겁한 거라 본다.

▲ 박진영 간사ⓒ크로스로

박진영: 바람이 아니라 바위 같으려면 개개인의 막대한 시간과 열정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너무 바쁘다. 시간도 재정도. 많은 것들이 충분히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진실을 찾기 위해서 에너지를 쏟기가 쉽지 않다. 영화 말미에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루카스의 친구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었다면 결과는 루카스가 비록 그런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우린 친구니까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게 아닐까.

김성수: 시간만 지나면 진실이 밝혀지는가? 그건 아니다.

기자: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흔들릴 때는 무엇을 기준 삼고, 어떤 것을 근거로 진실에 다가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초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어떤 얘기를 할 때 확신의 근거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였다. “뉴스에 그렇게 나왔어”라고 하면 내 말의 신빙성이 확보되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뉴스나 신문도 조작되고 왜곡된다는 걸 알았겠지만 그땐 그랬다.

김진형: 대학 갔을 때 받았던 충격이, 그동안 배웠던 역사가 거짓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동아리에서 현대사를 다시 공부했다. 나의 조직, 나의 생각에 대해서 물음표를 가져야 한다. 잘못 하면 회의주의자나 시니컬한 사람이 되겠지만. 베뢰아 교인들은 사도 바울한테 말씀을 들었지만, ‘이것이 그러한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날마다 상고했다고 한다. 말씀과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대개 보면 우리는 존경하는 어떤 분이 얘기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어버린다.

김성수: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인이 너무 쉽게 믿는데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건강한 의문이 있어야 하고, 속도 조절이나 수위 조절을 할 수 있는 지적이 필요한 것 같다. 나 역시 언젠가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읽고는 한 대 얻어맞는 충격을 느꼈다. 사실 나는 리영희,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빨갱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거 보면 진실을 알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난다 해도 다 알지 못하는 진실도 있기 마련이고.

김진형: 현대인들은 종교가 없으면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어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든 안하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의 자산 가치를 얼마나 높여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은 달라야 하는데 실상 그렇지 않다. 진실보다 중요한 건 내가 더 편히, 잘 살 수 있는가다.

박진영: 얼마 전 신문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1억을 얻고 그 대가로 1년간 감옥에 가야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는데 대다수의 학생들이 가겠다고 답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나마 경찰 소방관 등 공공성에 기반을 둔 직업 선택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건 쳐다보지도 않는다. 지금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에게 사회와 세상에서 노출되는 것들이 돈과 성공이라 하더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기자: 진실이나 정의에 접근하는 게 개인의 힘으로 가능할까?

김진형: 노력해야겠지만 접근할 수 없는 진실이 있는 것 같다. 그건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밝혀지지 않는 진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포기하면 안된다.

김성수: <가끔은 제정신>이라는 책을 보면 많은 경우 착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나는데 자기는 착각 안하고 자기가 제대로 보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얼마 전 주일에 설교하고, 느낀 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날 내가 그렇게 설교하지 않았는데 아내는 분명히 들었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진실이라고,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굴절된 시선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박진영: 바람에 떠다니는 말에 편승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록 밝혀지지 않는 진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은 순간순간 필요한 것 같다.

기자: 진실을 붙잡으려던 사람들의 희생을 역사 속에서 무수히 봐왔다. 어떤 사실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희생한 대가는 사회로부터 매장당하는 거였다. 우리 주변의 내부고발자들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김진형: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 씨의 경우,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 삶이 다 망가졌다. 갑상선 암에 걸리고 우울증 치료 받고, 자살 시도도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 분이 한 라디오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하는 말이 “나도 힘들었지만, 청취자 분들이 힘내시길 바란다”고 하면서 시를 낭독했다. 그 방송을 듣고 정말 감격했다. 이런 분이 우리를 위로한다는 게 감동이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 사람의 희망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 그러고보니 전 경찰대 교수인 표창원 선생도 생각난다. 믿는 분은 아니지만 “한국교회가 진실을 알리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얘기했다. 지금의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훈계를 받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다.

김성수: 교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가 이미 진리의 진영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거다. 우리는 옳은 진영에 발딛고 서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얘기를 듣지 않는다.

기자: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고 섬찟했다. 다들 어떻게 느꼈나?

김진형 : 그 장면, 나는 감사했다. 솔직히 결말을 너무 쉽게 끝내는 게 아니었나 생각했는데 현실을 일깨워 준 감독의 배려로 다가왔다. 현실을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니까 진실을 붙잡는 게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핍박 받은 이유도 그거 아닐까. 영화랑 다른 맥락일수도 있지만, 내가 불편한 진실에 접근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거나 등 돌릴 수도 있는데 그 상황에서 내가 진실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박진영: 영화에서 보면 보면 브룬 만이 루카스를 믿어줬다. 클라라의 집에서 친구들이 많이 모여있는 장면에서 브룬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브룬은 루카스를 위해서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건데, 과연 루카스를 위해서였을까, 진실을 위해서 였을까 궁금했다.

김성수: 브룬처럼 행동했다면 한국사회에서는 같이 왕따 당할거다. 그래서 친구를 위한 일도, 진실을 위한 일에도 쉽게 나서지 않고 편들지 않게 된다. 어찌됐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실을 붙잡고 가는 거에 대해서는 힘겹고 쓸쓸하지만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하지 않겠나 싶다.

▲ 김진형 출판기획자 ⓒ크로스로

김진형: 밝혀지지 않은 정의가 많은 것 같고, 루카스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침묵하고 참으면 정의가 세워지고 진실이 드러나서 내가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묻고 싶다. 그러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고 본다. 그럼에도 성경은 진실을 붙잡으라고 얘기한다. 신약에서는 핍박받을 거라고, 억울할 거라고 얘기한다. 최근에 브레넌 매닝의 책을 읽었는데,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내가 하나님께 소원하는 한 가지는 나의 억울함을 보응해 주시거나 원수를 갚는 게 아니라 왜 그때 침묵하셨는지 알려주시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는 것’이다. 그 대목을 읽고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천국에 가면 알려주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김성수: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든다(웃음). 좀 화끈하게 보여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의를 회복해가는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기자 : 주제가 무겁다 보니 어두운 얘기들을 많이 한 것 같다. 진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김성수: 결국 거짓 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진실 쪽에는 소수만이 간다. 내가 루카스였다면 삶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루카스 옆에 있어준 친구처럼,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친한 벗 한 명 갖기도 어려운 것 같다. 함석헌 씨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싯귀처럼 한 사람만 소유해도 인생은 성공한 거 같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데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박진영: 희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다짐을 하게 된다. 클라라가 아닌 루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정직하게 살아야 겠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라고, 하나님만은 아시고 이해하신다는 그런 믿음이 내 안에 있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 대화를 통해 절감한 건 진실을 알아가는 일을 쉽게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어렵고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순간이 다 의미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삶을 정돈하고 싶다.

김진형: 나는 우선 주인공이 고마웠다. 그런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고 목숨을 버릴 수도 있었는데 버텨준 것 자체가 고마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통해 현실을 일깨워 준 감독의 배려가 고마웠다. 괜한 낭만적인 기대감으로 정의의 편에 서는 일에 대한 허상을 깨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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