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육지 것들은 제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오멸 감독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

크로스로랑 영화보기 세 번째 영화는 1949년에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이다. 제주 사람 오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4개 부문 수상을 비롯해 올해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극영화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는 등 심상치 않은 이력을 써내려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3월 1일 제주에서 개봉했고 지난달 30일에는 13만 관객을 넘어서며, 독립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지슬>의 배우들은 제주 방언으로 대사를 발음한다. ‘육지 것’을 위한 배려인지 영화에는 자막이 삽입돼 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대사도 있었지만 자막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들을 보고 들은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제주가 앞으로는 ‘환상의 섬’이 아니라 ‘살상의 섬’이었던 곳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을. 영화는 조희선 목사(학복협 물근원을맑게 편집장)와 조제호 사무처장(기독교윤리실천운동), 김대훈 기획이사(도미니 커뮤니케이션)와 함께 봤다. <지슬> 홍보 포스터에 쓰인 글귀처럼 ‘대한민국의 봉인된 시간’을 경험한 참석자들은 역사 속에 묻혀져 있던 <지슬>을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영화 이야기와 더불어 가족과 교회,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뿌리처럼 뻗어나갔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처음 든 생각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는 거였다. 김대훈 이사는 제주에서 오랫동안 사셨는데 영화가 어떻게 다가왔나?

김대훈: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제주도에서 살았다. 내 입장에서는 사투리가 과한 느낌이 있었다. 제주에서도 세대마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빈도나 농도가 다르다. 물론 과거를 배경으로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영화에 몰입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 것 같다. 대사를 들으니까 제주도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오신 배우들도 섞여 있었는데, 그 정도 대사를 하기 위해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겠다 싶다. 그리고 영화가 흑백이어서 좋았다.

조희선: 엄청난 학살이 있었는데, 동굴에 숨어있던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면밀하게 다룸으로써, 관객이 집중해서 봐야 할 것들을 보여준 것 같다. 집단 속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라지거나 흩어지지 않게 연출했다.

누군가 그러더라. 유대인이 6백만 명 죽었다고 말하기 보다 한 사람이 죽은 일이 6백만번 일어났다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영화에서는 한 사람이나 한 가족이 겪은 경험들이겠지만, 저런 일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났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조희선: 영화를 보기 전에 <순이삼촌>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역사 앞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와 엄마, 아버지로부터 피난 갔던 이야기, 빨갱이 이야기를 듣고 살아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자랐다. 알아야 할 것에 공감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일들 앞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도 미안한 마음으로 봤다. 나의 부모님 세대들이 빨갱이에 대한 경험을 했지만, 교육을 통해서라도 눈이 열렸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그런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눈이 열리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마주함으로써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 부모님들 역시 역사를 왜곡시키려고 하는 사람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덕을 보는 사람이 있고, 그들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면, 4.3항쟁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낀다.

조제호 사무처장님은 <지슬>을 두 번째 보셨는데, 첫 번째 볼 때와 다른 점이 있었는지?

조제호: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느리게 갈지, 빨리 갈지 궁금했었는데 처음보다 더 빨리 갔다. 마지막 부분에 희생자들의 모습이 거꾸로 나오는 장면도 그렇고, 처음에 정길이의 얼굴을 못봤던 것 같은데 오늘 두 번 정도 보여주는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상표와 만철이가 달리는 장면에서 산의 능선이 여인의 몸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 크로스로랑 영화보기 세 번째 영화는 1949년에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이다.영화는 조희선 목사(학복협 물근원을맑게 편집장)와 조제호 사무처장(기독교윤리실천운동), 김대훈 기획이사(도미니 커뮤니케이션)와 함께 봤다. ⓒ크로스로

영화가 제사 용어를 쓰면서 이어지는데, 마지막에 지방 태우는 장면도 그렇고 4.3희생자들을 위한 한 편의 제사처럼 느껴졌다.

김대훈: 지방을 태우는 장면이 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제주도에서 그런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자랐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나온 반작용일 수도 있는데, 제주도에는 서울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기독교인이 적다. 내 주변에도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살 때와는 달리 제사 등 무속문화가 일반적이어서 전도도 힘들다. 반면에 제사 관련한 용어나 지방 태우는 장면을 보면서 제주 사람들의 정서를 잘 반영했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원 선생님이 4.3 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제사라도 지내줘야 한다고 하셨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자라면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혼령을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제주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제주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의미있게 다가가겠구나 생각했다. 육지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 감정을 얘기하곤 하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나도 육지 것의 대접을 받으며 오래 살았는데, 제주도가 아니면 다 육지 것이다. 육지 것이 와서 제주도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줬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복음이 아무리 좋아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육지 것이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조제호: 그렇게 본다면 제주 사람의 정서를 잘 반영한 영화다. 이 영화가 상징적으로 3월 1일에 개봉하고 제주도에서도 초반에 만 명 이상 관람했다고 들었다.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육지 것이 됐든 제주 사람이 됐든 역사를 정당하게 보고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제주 사람들의 관점을 반영한 영화가 있다는 것은 의미도 있다. 당시 제주 사람 10분의 1이 죽었다. 내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당하지 않은 제주 사람은 없었을 거다. 이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어쩌면 더 피해를 받은 분은 지금 남아있는 사람이라고 봤을 때, 4.3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와서 육지 것들이 제주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아픔이 있는 땅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제주의 역사라든지 무속 문화라든지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제주 선교를 한다는 건 겉핥기고 말도 되지 않는다. 영화를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절제된 화면이나 이야기들도 잘 선택한 것 같다. 만약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거대하게 포장하고 투박하게 던졌더라면 보는 사람들은 불편했을 거 같다. 그런데 선교라는 게 그렇다. 정말 투박하다. 일단 좋은 얘기 하니까 들어보라고 한다. 들을 사람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면, 제주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경우엔 우리 집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나 혼자 중학교 때부터 믿었다. 나에겐 제사 문화가 너무 익숙해서인지 제사에 대한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조희선: 예수 믿으면 당장 절하지 않는 게 대단한 순교인양 여겨졌는데 나는 그것이 꼭 옳은 방법만은 아니라고 본다.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지역의 비기독교적인 문화에 대한 접근 방식이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파악할 필요가 있는데, 무조건적인 문화적 우월감으로 다가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사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복음의 관점에서 풀어가면 좋은데,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선도해야 한다는 의식이 기독교 안에 있는 것 같다. 제주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들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과 경험들을 감싸안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공감할 수 없을 것 같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육지 것이 구별되는 현실에서, 복음에 대해 열리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가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다가가고 단죄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비약되는 감도 있지만, 성숙한 교회라면 여와 야, 진보와 보수가 싸울 때 감싸고 중재하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본다.

4.3뿐만 아니라 끔찍하고 잔인한 한국의 근현대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노근리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국민의 희생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슬프다. 영화 속 대사처럼 도대체 ‘빨갱이가 뭐길래’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해야 하는 건가?

김대훈: 우리 집의 경우 아버지는 군대를 가지 않으셨는데, 나보고 빨갱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저는 속초에서 제일 힘든 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했는데 왜 빨갱이라고 그러시느냐’고 했다. 난 애국심도 있고, 국방을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내가 음악을 전공했는데 군 복무 중에 부상을 당했다. 기성 세대는 빨갱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빨갱이가 도대체 뭐냐고 묻고 싶다. 내가 지금 3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빨갱이 논란이 반복되는걸 보면 아버지 세대에게 반감이 생긴다. 난 후배들이나 20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살 뿐이다.

조희선: 군대가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또 하나는 인간이 한 지점에 고착되게 하는 상흔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빨갱이란 말도 반공과 관련해 사람을 어떤 곳에 머물러서 움직일 수 없게 고착시킨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런 고착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 보면 악랄한 사람들마저도 군대 안에서 꼼짝달싹 못하지 않나. 우리의 역사를 봐도 인간이 절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사건들이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다.

조제호: 후반부에 정길이가 김 상사를 죽이면서 ‘이제 그만 죽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성이라고 말하면 슬프겠지만, 우리는 실수하면 요즘 말로 쿨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교계에서 최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전병욱, 오정현 목사의 예를 들 수 있겠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될텐데 그러지 못하니까 구설에 오른다. 4.3 항쟁도 그렇고 잘못된 권력 남용이 있었다면 후대 사람들이라도 인정하면 좋은데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선거 유세 때 약속한 말을 결국 실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정길이의 시선이 제주 사람의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잘못을 끊어서 새로운 출발을 하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그런데 왜 정길이는 김 상사한테 형이라고 불렀을까? 정체가 제일 불분명한 캐릭터같다.

조희선: 정길이가 김 상사를 형이라고 하면서 죽이는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끝내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말씀하셨듯이 국가적, 개인적으로 잘못했다는 고백을 왜 하지 못할까에 대해 생각해보면 자기 잘못을 인식하고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단은 잘못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내면에 힘이 있다는 것이고 고백한다는 것은 한 단계 뛰어넘은 힘이다. 역대 정권을 돌아볼 때, 권력을 잡은 사람이 독립적이고 주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은 허약한데 권력으로 자기를 포장했던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나라가 식민지 상황을 벗어나면서 누군가를 억압했던 일들에 대해 정리하지 못했고, 그 체제를 분석하거나 바꿀만한 기초도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권력을 잡았던 거다.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있다고 하지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존감은 허약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보면 왕정이 무너지고 신분제가 타파되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짧았다. 그리고 곧바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만큼 개인의 자존감이 세워지고 고유한 특성을 계발하는 것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자존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는 특히나 외국의 시선에 좌우되고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하다 못해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 대한 외국 언론이 어떤 내용의 기사를 썼는지 앞 다투어 보도한다. 해외 반응이 이렇다 저렇다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잣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조희선: 개인이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건강한 공동체는 한 개인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각각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우리’여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독립된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개인이 뭉쳐 ‘집단주의’로 나타난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세계 최초만을 강조하는 게 자신의 고유한 것을 갖지 못해서라고 본다. 개인주의가 성립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집단주의가 도드라지는 거다.

김대훈: 그렇게 된 건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왕정이 무너진 후, 다른 나라가 수백년 걸려 이뤄낸 걸 우리는 너무 짧은 시간에 이뤘다. 그래서 역기능이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문광부에서 주최하는 한류아카데미를 수강했는데 그 곳에서 ‘양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나는 그동안 성악이라는 말을 써왔지, ‘양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류아카데미에서 어떤 대가의 음악을 듣는데 음정이 맞지 않는 거다. 국악 방송 PD랑 그 부분에 대해 얘기했더니 멘탈이 달라야 한다고 했다. 기계적인 결합과 정확한 배음에 의한 음악이 서양 음악이면 동양 음악은 화학적 결합에 의해 구성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했는데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 음악과 서양의 음악은 토대 자체가 다른 거였다. 어떻게 보면 잘못한 걸 즉시 잘못했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도, 화학적 결합을 중시하는 오랜 환경과 토대 안에서 나온 좋지 않은 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면 영화 캐릭터 중에 누가 나와 제일 가까운 지를 보는데 이번엔 나랑 몸매도 제일 비슷한…….

김상사였나?

김대훈: 아니, 정길이였다. 혹시 물허벅이라고 들어봤나? 정길이가 메고 가는 물통이 물허벅인데 제주도를 상징하는 거다. 물허벅은 생존을 위해 여인이 먼 곳에서 물을 길어올 때 사용하는 물동이다. 그런데 정길이가 물허벅을 메고 오는데 숙련되지 않아서인지 물을 다 쏟는다. 군모를 깊게 눌러쓰고 물허벅을 메고 오는데 상의가 다 젖어 있다. 군화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걸음이 부자연스럽다. 아마 신병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장면이 한 번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나온다. 카메라가 정길이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는걸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정길이한테 군모나 군화가 어울리지 않았듯이, 자신에게 맞지 않은 물허벅을 메고 가면서 김상사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뭔가 맞지도 않고 비효율적인 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군화를 신고 가는 걸음걸이까지는 못봤지만 나중에 나온 물허벅 장면에서는 정길이가 몹시 지쳐보였다.

조희선: 정길이를 보면 끊임없이 관찰자 역할을 한다. 어딘가 어색하고 현실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끊임없이 관찰하고 어느 관점을 갖고 해석한다. 김 상사를 죽인 것도 그를 원수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모순을 다 표현할 순 없지만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국가는 국민이고 국민은 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체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의 화학적 결합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거다.

김대훈: 독극물도 화학적 결합의 산물이니까 결과는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조희선: 우리의 역사 안에서 나타났던 치부든, 개인의 약점을 우리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동안은 주류에 속한 사람들은 그걸 감추려고 했고 비주류, 즉 약자들에게 뒤집어 씌었던 것 같다.

조제호: 영화에 나온 사람들이 다 피해자고 아픔을 겪었는데, 그 중 더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가족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가족이 죽는 모습을 봐야 하는 사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했다. 그 중 한명이 돼지 아빠였다. 가족이 없으니까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리고 군인 중에는 정길이였다. 다른 군인들은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인데 정길이는 아니었다. 정길이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오욕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걸 절감했을 때 그 일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나 피해자 같은 당사자가 아닌 제 3자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봤다.

▲ 왼쪽부터 김대훈 도미니 커뮤니케이션 기획이사, 조제호 기윤실 사무처장, 조희선 물근원을 맑게 편집장.ⓒ크로스로

정길이도 인상적이었지만 무동이네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무동이의 아내가 미리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보라며 남편을 설득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두고 차마 동굴을 떠나지 못하고. 그런 장면을 보면 가족을 대입하게 되는데, 역사 속 잔혹한 일들은 가족만 갈라놓은게 아니라 사람의 가슴도, 땅도 찢어 놓았다. 그런 일들이 우리 민족사에서 반복돼 왔다. 최근에는 김정은이 미사일을 쏜다고 그러면 아이가 생각난다. 두고 갈 수도, 데려 갈 수도 없을 것 같고 그저 같이 죽을 수밖에 없지 않나.

조제호: 사실 핵을 쏘거나 전쟁이 발발하면 피난도 가지 못한다. 전쟁 나면 자동차 도로는 군사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걸어가야 한다. 지금 아내가 셋째를 임신 중인데, 무동이의 경우처럼 두 아이는 바깥에 있고 임신한 아내가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조희선: 나는 지금 어린 애가 없는데, 처음 믿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가 아니라, 진리를 선택한 자가 맞이할 순교를 생각했다. 솔직히 순교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도 믿음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생각했다. 그 때 첫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를 임신하기 전이었는데, 아이가 있다는 게 신앙생활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언젠가 죽음을 각오할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전쟁이 나면 가장 무서운 게 가족들의 행방을 모른 채 죽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사람은 가족으로부터 절대 헤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맞다. 교회 세습도 다 가족 때문에 일어나니까.

조제호: 그래서 영화에서 누가 가장 불쌍한 지를 생각했는데 무동이네였다. 무동이는 자기 어머니가 죽은 모습을 봤고, 나중에는 임신한 아내와 떨어져야 했다. 또 하나는 무동이의 어머니가 감자를 품에 안고 있어서 다 타버리지 않았는데, 그 감자를 동굴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갖고 온다. 나라면 가져오지 못했을 거다.

김대훈: 감자는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무동이보고 가져가라고 했는데 처음엔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감자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고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 거라고 본다.

조희선: 갑자기 도시락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내 형제자매가 다섯인데, 자식을 전부 공부시키려고 하니까 부모님이 무척 힘들어 하셨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았는데 내 친구들은 거의 어느 정도 사는 집 아이들이여서 도시락 반찬도 스팸을 싸왔다. 그런데 내 반찬은 어묵볶음이랑 김치였다. 언젠가는 맨날 어묵볶음만 싸 준다고 엄마한테 짜증을 내고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까 드는 생각이, 자식은 그냥 땡깡 부리는 거지만 엄마는 그런 자식으로 인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그 아픔이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게 된다. 무동이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무동이가 그 감자를 가져가야 하는 거다. 내 새끼가 한 끼라도 먹고 배를 채워야 되는 거다.

또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구인가?

조제호: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왔지만 고 중사도 자기 어머니가 빨갱이한테 당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고 중사는 다른 사람을 죽이며 복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길이가 김 상사를 죽인 것은 자기 손으로 매듭 짓고 싶었던 것 같다.

김대훈: 그 장면의 앵글이 좋았다고 느낀 게 고 중사가 무동이의 어머니와 얘기할 때 고 중사는 무동이의 어머니를 쳐다보지 못한다. 무동이의 어머니와 말을 하지만 고 중사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지 절대 쳐다보지 못하고 방백인지 독백인지 모를 말을 한다. 고 중사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한 이야기는 결국 악에 받힌 변명이 아닐까 한다.

조희선: 고 중사는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른다. 마치 체질화된 것처럼. 고 중사를 위한 변명을 해본다면 계속 악하게 뻗어나가는 자신을 똑바로 직면하지 못하고 ‘나는 원래 그런 놈이야’라고 치부하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서 일말의 양심을 찾을 수 있다면 죽어가는 노인 앞에서 혼자 변명하듯 말했던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사람이 실질적으로 혼자가 됐을 때 악한 것을 선택한 자신에 대해 그동안은 발설하지 못했던 양심의 고백을 한 건 아니었을까 한다. 영화가 인간 한 명 한 명의 내면을 풍성하게 담아낸 것 같다. 소수의 캐릭터에 집중시키면서 전체의 역사적인 기억을 들춰냈다. 반공의 망령이나 독립적인 개인으로 서지 못했던 기억, 국민들의 내면에 고착화된 상처와 그 상처를 이용하는 세력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비추면서 잘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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