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영화’ 또 한 편, 성공할까

‘예수 영화’ 또 한 편, 성공할까

미국 TV 미니시리즈가 영화로 개봉된다. 어떻게 다를까?

영화 <선 오브 갓>Son of God을 보는 것은 마치 당신이 지금까지 들은 베스트 40곡을 솜씨 좋은 트리뷰트 밴드[특정 뮤지션이나 밴드에 대한 헌정이나 추종을 위해 음악과 이미지를 완벽히 재현해 보여주는 밴드]의 연주로 듣는 것과 다소 비슷하다. 연주도 나쁘지 않고, 선곡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 밴드는 당신이 이미 좋아하고 있는 노래들을 다시 떠올려 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비교가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선 오브 갓>을 관람하는 것을 잘 편집된 다른 사람의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 것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이 비디오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당신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결혼식을 요약한 것이지 다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덧붙이자면, 비디오를 보면서 당신이 들러리 한 명이 짝짝이 신발을 신고 있다는 둥, 오르간 연주자가 예식 순서지에 없는 곡을 연주한다는 등 토를 달면 주인은 기분이 상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비는, 내게 영화 <선 오브 갓>은, 끔찍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가 특별히 우리의 영성을 고양시키거나 재미를 주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복음 내러티브는 어차피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니 재미가 좀 없어도 눈감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우리의 영성을 고양시켜주지 못하는 것도 메시지 때문이라기보다는 미디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커뮤니케이션북스 역간]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공식을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매클루언의 이 생각을 20년 후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종교가 방송이 거의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텔레비전을 성화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말로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포스트먼의 결론은 DVD와 스트리밍 비디오의 시대에서는 설득력이 좀 약해진 것 같다.
하지만 영화관은 얘기가 다르다. 문을 닫는 독립 영화관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영화의 다양성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영화관은 아이맥스 스크린과 3D 프로젝터에 투자하고 이를 핑계로 관람료를 올리는 식으로 현금을 돌리고 있다. “돈을 제대로 쓰지 않으려면 집에 있어라”가 영화관의 신조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선 오브 갓>의 성패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 영화는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방송된 것을 편집(일부 삭제된 장면들을 추가)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극장에 갈 이유보다 가지 않아도 될 변명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가령 <반지의 제왕 3부작>같은, 어떤 내러티브 영화가 디렉터스컷director’s cut[처음 개봉했을 때는 삭제했던 부분을 다시 편집해 넣어 발표하는 영화]을 개봉하거나 추가 장면을 넣은 DVD를 출시한다면, 그 목적은 가치를 부가하여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시 돈을 지불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니면, DVD나 디지털 영화를 사서 언제든 보면서 경험을 되살려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선 오브 갓>의 경우, 영화 관객들은 DVD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그들이 실제로 구매하는 것은 이것을 영화관에서 본다는 경험이다.
그래서 <선 오브 갓>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영화 자체에 대한 비평만큼이나 이것을 영화관에 직접 가서 보는 사람들에 대한 논평이 필요하다.

영화관 관람의 메리트

DVD나 디지털 다운로드 버전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이 중요하다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내 영화사랑은 1980년대에 마침내 영화관 대형 스크린으로 <아라비아 로렌스>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됐다. (스크린에 투사해서 본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는 영화를 보던 우리 세대에게 영화관에서 스크린으로(상영 중간중간 나오는 광고와 조정된 화면 비율을 포함하여) 본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희미한 프로젝터 불빛과 휴대 전화 문자, 시끄러운 잡담 때문에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관에서 보는 것보다 심미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도 있다. <선 오브 갓>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려는 것은 꼭 영화관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텔레비전 화면을 압도했던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에 대한 과거의 잔상 때문이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면 작품성이 오히려 반감될 수도 있다. 원래가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프로그램으로 기획, 편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은 중간 광고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오는 미니 클라이맥스처럼 보인다. 영화관에서 볼 때 일부 장면의 친밀도와 현장감이, 예를 들어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을 먹이시는 장면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미니시리즈에서 돋보였던 특수효과도 이 영화에서는 <폼페이>에서 베수비어스 산이 폭발하는 장관만큼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종교적 목적?

영화관은 대중이 모여 있는 공간이고, 예배는 성도들이 함께하는 경험이다. 10년 전, 내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혹평하자, 한 동료가 그 영화를 “영화처럼” 접근한다며 나를 점잖게 책망했다. <선 오브 갓>을 어떻게 접근했는지 그 친구에게 묻자, 그녀는 “예배처럼”이라고 말했다.
내 안의 낙관주의자는 <선 오브 갓>이 모든 곳에서 상영되도록 영화관들을 사들이자는 캠페인은 이 영화를 신자들과 함께 보면서 관람 경험을 영적으로 고양시키자는 진정한 목적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내 안의 냉소주의는 이것은 관객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들려는 코즈 마케팅Cause-marketing[명분을 내세운 영리 활동]전략이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경건생활의 도구로서, 말하자면 동영상 성경으로서, 이 영화의 명료함은 아마도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자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마태가 말한 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기적을 만드는 사람>The Miracle Maker처럼 스토리를 낯설게 풀어 갈 예술적 능력이 없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새로운 것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피투성이 감상주의여서도 안 되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종잡을 수 없는 신학이어서도 안 된다.
미니시리즈에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과 빼닮은 사탄은 영화에서 삭제되고,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13번째 제자가 되는 장면은 그대로 둔 것은 아마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하려는 편집진의 선택일 것이다.
이 영화는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선고하는 과정에서 빌라도와 가야바가 한 역할을 모호하게 처리한다. 이 영화의 결정적 대사는 “그들의 제국, 그의 왕국”이다. 이 대사는 사회정치 현실을 강조하려는 것이지만, 마치 로마인들이 통치자가 아니라 경찰로 건너오기라도 한 것처럼 묘사될 정도로, [예수와] 유대 지배세력인 장로들 사이의 갈등을 강조한다. 밧모 섬의 요한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이면서도, 장면 순서와 십자가 처형 이후의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요한복음이 아니라] 누가복음에서 이야기를 끌어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런 사소한 불만들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 때문에, 이 영화의 타깃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제작자 마크 버넷은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더 바이블>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신성을 최초로 그리고 최고로 드러낸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했다. 이런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예수 영화라면, 그 미디어가 영화든 텔레비전이든, 누가 쉽게 비판할 수 있겠는가?

케네스 모어필드Kenneth R. Morefield 캠벨 대학교Cambell University의 영어학 부교수이다. 「세계 영화 거장들의 믿음과 영성」Faith and Spirituality in Masters of Wordl Cinema 1, 2권의 편집자이자, 영화 블로그, 1More Film Blog의 운영자이다.

Kenneth R. Morefield, “Son of God” CT 온라인 Moview Review 2014_2_27 김혜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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