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오브갓(2014) Vs. 노아(2014)

지난 10일에 개봉된 영화 선오브갓(2014)은 그동안 노아(2014)를 용서할 수 없었던 기독교인들이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찼던 러셀 크로우와는 다른, 확실히 사랑의 교회 장로님이나 순복음 교회 장로님 같은 노아도 영화 도입부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노아 이야기는 이내 그리스도의 탄생 플롯으로 급전한다.

플롯이란 무엇인가? 
과거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몇 편 만들어진 적 있다. 1977년에 <나자렛 예수>라는 작품이 있었고 2년 뒤인 1979년에 한 편이 더 있었다. 화제작 <패션오브크라이스트>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25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과 같은, 역시 기독교인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플롯(plot)이란 말을 직역해보면 ‘음모’라는 뜻이다. 유서 깊은 작시(作詩) 기술들에 따르면 플롯은 극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플롯이 없다면 단지 잇따라 나오는 진술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대목은 명백하게 플롯이다.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겠다고 작심한 베드로에게 그것은 음모와도 같은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모(plot)는 베드로의 소명을 확실하게 드러내는데 기능하며 그것을 우리 시대가 ‘영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79년작 <예수>는 명백한 다큐멘터리에 그쳤고, 장장 382분짜리 미니 시리즈로 제작된 1977년작은 우리의 로망이던 ‘올리비아 핫세’가 나왔다는 사실 빼고는 그야말로 잇따라 나오는 나열식 역사 진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주님의 살덩이에 능욕을 가했던 <패션오브크라이스트>가 우리를 가장 많이 울게 만든 작품이지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영화에 어떤 ‘플롯’이 장착되었다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그렇게 따지면 오로지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원작인 <최후의 유혹>만이 플롯을 가졌던 셈이다. 1988년에 제작된 이 영화가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상영될 때 기독교인들의 격렬한 저지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지나치게 상상하고 강조한 나머지 신성모독이 되어버렸던 <최후의 유혹>이 지녔던 플롯을 감안하면, 우리는 노아(2014)를 너무 막 대한 일면이 있다. 그는 정말이지 하나님의 의(義)와 은혜의 플롯을 아주 잘 드러냈는데도 말이다.

*참고: 노아(2014)를 기독교인이 감상하는 법:
http://www.mimoonchurch.net/2014/03/2014.html
노아(2014)가 발견한 은혜: http://www.mimoonchurch.net/2014/03/2014_30.html

그렇다면 선오브갓(2014)은 어떤 플롯을 구사하고 있을까?  
국내 상영을 앞둔 영화의 스포일러를 괜스레 담아 기다리고 있던 기독교인들의 감상을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다들 고대하고 원하시던 ‘성경적’인 영화 한 편이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려드릴 수 있다. 느닷없이 수세 장면, 느닷없이 호산나 연호 장면, 그야말로 성경을 읽는 것만 같다. 전형적인 미국식 백인 커플처럼 보이는 요셉과 마리아의 과도한 표정 연기와 몸동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바람에 독서를 약간 방해한 것만 빼고는 다 괜찮은 편이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양학과 교수, www.facebook.com/pentalo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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