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애인을 구합니다"

실천과 사상의 절묘한 조화「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

나한테는 돈 쓰는 게 아깝지 않다는 친구가 있었다.
똥색 교복을 입고, 봉학산 언덕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의 일이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매점에서 라면 먹던 때로 돌아가 본다. 1000원이 있으면, 800원은 컵라면 사 먹고, 200원으론 못난이 만두를 먹으면 되었는데 우리 주머니엔 꼭 800원씩만 있었다. 어쩌다 용돈이 생긴 날에야 컵라면에 만두를 넣어 먹었으니, 우리는 그때도 꽤 가난했었나 보다.

200원이 귀할 때였는데, 그때 그 친구는 우정의 척도를 이리 갈랐다.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친구’와 ‘돈 쓰기 싫은 친구’.
내가 전자에 포함되었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그에게 참 고맙다. 고3 때 내가 여자 친구에게 차였을 때도, PC방에서 거금 만원을 풀면서, ‘스타크래프트’로 위로해줬으니 그 우정의 농도를 더 말해 무엇하랴.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를 읽으며,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2때 그 친구의 꿈이 떠올랐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내추럴 아티스트할거야.”

이것저것 나에게 설명해줬지만, 결국 그는 농부가 되고 싶다는 거였다.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고 싶다 뭐 이런 거였다. 그때 태풍 ‘매미’가 왔었나? 내가 일침을 가했다.

“태풍 오면 다 끝이야, 끝! 포기해!”

공부하기 싫어서 농사짓겠다는 거겠지 싶어, 내뱉은 말이었는데 며칠 뒤 그는 정말로 그 꿈을 접었다. 그런데 그 뭔지 모르지만 ‘내추럴 아티스트’라는 거를 하고 있는 사람을 목격한 것이다.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부글 펴냄)의 저자 마크 보일이다. 그는 돈 한푼 안 쓰고 1년을 살아간 내용을 적었다.

괴짜다. 그는 돈의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프리코노미’(Freeconomy)운동을 펼치고 있다. 상상해보라, 돈 없이 살아가는 삶을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야생에서 먹을거리를 구하고, 화장실은…, 상상에 맡긴다. 처음엔 왜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하는 걸까 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설득이 되면서 고등학교 때의 친구와 그의 꿈이 떠오른 게다. 마크 보일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시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동기는 그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감정적이다. 나 자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는 사실이다. 나는 매일 같이 일어나는 환경파괴 현장을 목격하는 데도 지쳤고, 제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그 파괴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지쳤다. (…) 나는 사람들이 지구와, 그리고 거기서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종(種)들과 화합하는 것을 보길 원한다.”

돈 없이 살게 되면 이상하게 환경친화적인 삶이 된다. 나무로 직접 의자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조금 헌 거라고 내다 버리고 새 가구를 들이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생산자=소비자’가 되면 일단 낭비가 줄어들고, 자연스레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줄어든다.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관계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더 야만의 중력으로 끌려간다.

“고급 쇼핑가에 진열된 의류의 천을 무장 군인의 감시 아래 짜는 어린이들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아마 우리는 그런 의류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기는 힘들 것이다. 돼지가 도살되는 환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베이컨 샌드위치로 쉽게 손을 뻗기 어려울 것이다. 또 식수를 직접 정수해서 마셔야 한다면, 식수원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좀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마크 보일은 정말로 1년 동안 돈을 한푼도 쓰지 않는다. 이동 집을 공짜로 얻고,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 매일 9시간씩 밭에서 노동을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쓰레기통을 파헤쳐 필요한 기구를 만들기도 하고, 야생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을 구하러 다닌다. 사람들은 꼭 그래야만 하냐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돈 없는 생활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화를 낸다.

“무엇이 극단적이란 말인가? 내가 볼 때는 몇천 달러씩 주고 플라스마 스크린 TV를 구입하는 행위가 더 극단적인 것 같다. 유명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미래에 직면하게 될 기후변화와 ‘피크 오일’ 같은 문제들이 극단적일 텐데 어떻게 그 해결책들이 온건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극단적인 대안만이 필요하게 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위태로워졌는데 그 대안의 품격을 따질 때인가. 위태로운 사회, 무너지는 경제 시스템에 저마다 명품 대안들이라 내놓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는 터였다. 예를 들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당시 IMF를 겪었던 한국에서 유독 대박을 터뜨렸던 그 작가의 최근 신간이 그렇다.

<부자들의 음모>라는 책이다. 돈놀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재산을 불리고 있는지, 그들의 음모를 적나라하고 예리하게 파헤치는 책이다. 여기까지가 딱 좋았는데,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 문제였다. 부자들의 음모를 넘어서, 그들 위에 서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20쪽이 남을 때까지 낚시질하더니 결국 “금을 사라.” “책을 써라.” “월 50만 원에 세줄 집을 리모델링해서 80만 원씩 받아라.” 이러고 있다. 이는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경기 직전 “박지성처럼 뛰면 이길 수 있다”고 작전 지시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대안을 찾는 이유는 딱 하나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이다. 그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여기저기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는 돈을 쓰지 않고 살아보는 것은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하고-TV보고-돈 쓰는’ 쳇바퀴를 돌며, 어느덧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를 해방하는 방법인 것이다.

결국, 난 사람답게 살려면 자급자족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 자기가 진짜 원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 <부자들의 음모>에서 가르쳐주는 것처럼, 지폐의 가치가 떨어질 걸 귀신같이 알아채 금으로 바꾸고, 인세가 나오는 책을 써서 박지성처럼 뛸 수 있게 되었다고 치자. 석유도 고갈되고, 지폐의 가치도 떨어지고, 상품의 생산도 의미가 없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라. 금 수십 톤을 갖다 줘도 야생에서 채취한 내 밥상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금의 가치도 뚝뚝 떨어질 그날이 오면, 결국 남는 건 개인과 공동체의 자급자족능력일 것이다. 마크 보일은 그 공동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지폐나 동전, 수표나 e머니 등 돈이란 돈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식량과 우정, 재미, 모닥불, 채취, 음악, 교육, 자원 나눔, 댄스, 예술, 보살핌, 기술 나눔, 경험, 존경, 재활용이 핵심적인 가치로 자리 잡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1년 동안 돈 한푼 없이 살아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신나는 하루가 될 것 같지 않은가? 다른이들은 비현실적이라 비웃을지라도 ‘내추럴 아티스트’를 꿈꿨던 그 친구라면 해볼 만할 거란 생각이 든다. 몇 달 전 그가 돌보는 장애우들도 일할 수 있는, 닭 키우는 농장을 만들자고 밤새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다음에 만날 때는 그 이야기를 계속 하기로 했는데, 그 ‘만남’이 쉽지 않다.

만두 살 돈 200원이 없을 때에도 붙어 다녔는데, 그 수천 배 이상을 버는 요즘, 만남 자체가 어려워진 걸 보니 돈이 사람 관계를 멀어지게 하긴 하나보다.

아, 그 친구는 예전에 ‘배우자 기도’ 열심히 하는 교회 여자들이 ‘믿음 좋은 농부’는 외면하는 현실을 꼬집은 적 있었다. 마크 보일도 결국엔 돈 한푼도 안 쓰고 살다가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고 말았다. 외로움 달랠 길 없어 애인 구하는 광고를 냈는데, 그 문구가 가슴팍에 꽂힌다.

‘주말 만찬을 위해 쓰레기 음식을 찾고, 저녁에 잡초를 뽑고, 아침에 함께 태양열 샤워를 할 수 있는 여성!’

나도 요즘, 이런 애인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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