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빽태클’이었던 여자들을 떠올리다

현대에 다시 부활하는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

어느 신문기사에서 “예쁜 여자가 주변에 있으면 남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시각적으로 기분은 좋을지언정, 속으로는 긴장상태가 유지되어 결국 그게 스트레스로 온다는 것이다. 순간 철학에 조예가 깊은 한 후배 녀석이 “아름다움이 악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입버릇처럼 말했던 게 떠올랐다. 어찌 그리 생각하게 되었나, 물으니 다윗을 예로 들었다.

▲ 램브란트의_Bathing Bathsheba

이야기는 이렇다. 다윗왕은 부하들이 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동안, ‘나른하게’ 왕궁을 거닐었다. 그러다 부하 중 하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목욕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그녀를 범하고(이 과정이 어찌 그리 쉬웠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어쨌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까지 죽인 다윗. 후배 녀석은 이 상황이 나른함 가운데 아름다움(美)이 악(惡)으로 들어온 거라고 말했다. 그럴듯하였다. 왕쯤이나 되는 사람이 웬만큼 예쁜 사람이 아니고서야 ‘손’을 댔겠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2세기 교부 터툴리안은 여자를 ‘the Devil’s gateway’라 표현했나 보다. 남성을 유혹하여 타락으로 이끄는 ‘악마의 문’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운 밧세바가 잘나가는 영웅 다윗의 탄탄대로 위에 태클을 건 셈이다. 여자들은 종종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미인계’라는 전략도 있는 것 아닌가. 보통은 페이스(안정적인 흐름)를 깨뜨릴 때 여자들이 불쑥 등장해 판을 깨놓기 일수다.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거룩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여자들로 가득하다. 책 속 다윗의 이야기다.

다윗은 법궤 옮기는 일을 전략적으로 요란한 국가 행사로 치른다. 법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씩 옮길 때마다 온 백성의 행렬도 동시에 멈추고, 소와 살진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종교의식을 거행하도록 진두지휘한다. 나팔 소리가 우렁찬 가운데, 온 백성이 춤추고 환호하면서 법궤를 옮기는 장면은 장엄한 축제였을 것이다.

▲ 언약궤 앞에서 춤 추는 다윗왕을 바라보는 미갈 (Francesco Salviati,1553)

흥미로운 것은 다윗의 행동이다. 그는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온 힘을 다해 힘차게 춤을 추었다.(사무엘기하 6:14) 그 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이 축제의 시간에 이 모습을 지켜보는 왕비 미갈의 눈은 곱지 않다.
주님의 궤가 ‘다윗의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밖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주님 앞에서 뛰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다.(사무엘기하 6:16)

너그러운 다윗은 마지막으로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주려고 궁전으로 들어간다. 이때 미갈이 다윗을 맞으러 나와서 던지는 한 마디가 제대로 찬물이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이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다 알다시피 이 일을 계기로 미갈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임신하지 못했다 한다. 거룩하고 웅장한 이야기의 페이스(흐름)를 깨고 불쑥 등장해 성경의 감동을 망쳐버린 죄라 한다.

페이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페이스 메이커>(2012)는 42.195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 이야기다. 특별히 실제로 존재하는 페이스 메이커라는 ‘포지션’에 대해 조명한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멘탈 조절에 실패해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선수를 위해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선수를 말한다. 툭툭 건드리며 도발하는 선수를 막아주고, 앞뒤 간격, 시간 조절 등을 도맡아 해주다가 정작 본인은 30킬로미터 구간 즈음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역할이다. 적어도 남자들이 생각하는 돕는 배필상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인 것 같다.

정반대의 영화 <The Cooler>(2003)를 언급해야, 현실 속 여자들이 설명될 것 같다. 한국말로는 ‘러브 인 카지노’라 번역되었다. 주인공의 직업이 쿨러(The Cooler)다. ‘찬물 끼얹는 사람’이라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나, 미국에서는 전문직이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한 마디로, 카지노 안에서 안정된 흐름으로 돈을 따가는 사람 옆에 다가가 페이스를 깨뜨리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도 미인계는 빠지지 않는다. 손님으로 가장한 여인이 그이의 옆에서 요염하고 전문적인 움직임을 한두 번 보이면, 고도의 집중력은 곧 ‘악마의 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여담이다. 내 인생에도 세 명의 쿨러가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찾아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던 내 삶에 찬물을 끼얹은 여인들이다. 수능시험 공부에 열을 올릴 때 찾아와 나를 괴롭힌 여인, 봉사활동 현장에서 집중력을 흩어뜨린 여인, 직장 선택에 있어 왈가왈부 말이 많았던 여인, 하나같은 ‘미갈’들이었다.

▲ 구미정 저, 옥당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악독한 쿨러들을 두둔하고 나선다. 사실 미갈은 다윗을 가장 잘 아는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충고는 비록 ‘찬물’일지언정 다윗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거라는 설명이다.

원래 희생제사를 집례하는 것은 제사장의 업무다. 과거에 사울 왕도 직접 번제를 주관했다가 사무엘한테 호된 야단을 맞은 일이 있다.(사무엘기상 13:7-14) 그렇다면 미갈의 업신여김은 한낱 군인 출신의 집권자에 불과한 다윗이 스스로 제사장처럼 구는 것에 대한 비난일 가능성이 있다. 엄연히 제사장이 따로 있는데, 왕이 에봇까지 걸치고 제사장 노릇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비판이다.

저자는 ‘에봇’을 입은 다윗의 모습을 파헤친다.

그런데 에봇을 입었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에봇은 군인이나 왕의 옷이 아니다. 제사장이 제의 때 입는 거룩한 옷이다. 출애굽기 28장을 보면, 제사장의 예복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제사장은 우선 속바지를 입고, 그 위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형의 하얀색 긴 팔 세마포 속옷을 입는다. 그리고 청색의 에봇 받침 겉옷을 입은 뒤에야 에봇을 입을 수 있다.

에봇은 금실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을 더해 가늘게 꼰 모시실로 정교하게 감을 짜서 만든 조끼 같은 옷이다. 이 에봇의 양쪽 멜빵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각각 여섯 개씩 새겨진 두 개의 홍옥수 보석이 박혀있다. 거기에 허리띠를 매고 가슴받이를 두르고 관을 써야 정식 제사장의 복식이 완성된다. 그 에봇을 다윗이 입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든 복잡한 순서를 다 생략한 채, 달랑 에봇 하나만 걸쳤다고 한다.

이스라엘 율법은 사제들이 성소에서 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을 금지한다. 다윗이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추고, 알몸을 드러낸 것은 전형적인 가나안의 풍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찬물을 끼얹은 미갈은 ‘해야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어찌 보면 다윗에게는 꼭 필요한 배필이었다.

이외에도 이 책은 수많은 ‘쿨러’들의 모습을 담았다. 빼어난 미모로 알려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사라, 가나안에서 창녀로 살다 예수의 족보에 오른 라합, 향수를 바르고 보아스의 침실을 습격한 룻, 민족을 살린 얼짱 고아 소녀 에스더 등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을 소환해낸다. 저자는 어쩌면 그때 그 시절의 여인들을 소환해 이 세상에 찬물을 끼얹고 싶었던 것이다.

언니들이 희망인 것은 적어도 언니들의 리더십이 오빠들과는 다르다는 확신에 기인할 터이다. 권력을 잡으면 독재자로 돌변하는 오빠들을 무섭게 많이 보았다. 돈에 눈이 어두워 무수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오빠들도 질리게 많이 보았다. 명예욕에 사로잡혀 ‘장長’이라는 ‘장’ 자리는 다 차지하고도 성에 안 차하는 오빠들도 지겹게 많이 보았다.

본래 권력과 재물, 명예의 속성이 사람을 사로잡는 법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언니들만큼은 그것들로부터 자유롭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고 사람들을 살리는 데 쏟아붓는 진짜 ‘살림꾼’이기를 바란다.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생명수를 얻어온 ‘바리데기’ 언니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를 찾아왔던 쿨러들은 모두 나에겐 ‘미갈’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은 에봇을 입고 설치는 내 꼴이 우스워 직언해주었다. 오만한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 이들이요, 활활 타올라 재만 남게 될까 걱정되어 찬물을 끼얹던 지혜로운 ‘살림꾼’이었다. 문제는 모든 게 지난 다음에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깨닫지 못했다면, 평생 세 명의 여인을 미워하며 살 뻔했다. 곧 올 네 번째 쿨러에게도 버럭 화를 낼 뻔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이 고맙다.
이범진 유코리아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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