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맞잡은 손, 교회 역사의 惡手였다"

히틀러와 기독교를 통해 본 ‘권력과 신앙'<上>

12월 19일,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철이 가까이 오면 기독교는 물론 각 종단 지도자들과 회동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신문, 방송에 오르내린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교회와 정치, 권력과 신앙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최근 추태화 교수(안양대)는 나치 정권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고찰한 ‘권력과 신앙’을 출간했다. 추 교수는 책에서 불의한 정권과 야합한 교회, 불의한 권력에 저항한 교회의 모습을 다뤘다. 정치와 권력에 대한 화두가 달궈지고 있는 이 때, 추 교수의 글을 통해 ‘권력과 신앙’의 상관 관계가 무엇인지, 기독교인은 정치에 어떤 태도로 참여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추태화 교수

우선 내가 ‘권력과 신앙’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히고 싶다.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속죄의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197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녔다. 당시는 군부 독재에 대한 항거, 민주화운동, 시민-학생 자유화 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졌던 때였다. 198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결정했을 때, 시위에 함께 참여했던 친구들이 나에게 “어떻게 이런 처절한 현실을 두고 조국을 떠날 수 있느냐”며 반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비행기가 김포공항 위로 떠오를 때 정말 내 자신이 도피하는 것처럼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역사의 어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은 나 자신을 누르고 있던 죄책감을 폭로하고 참회하는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카)이며, 도전과 응전(토인비)이라는 등 명확한 정의도 있지만, 역사는 잊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우주와 인간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그 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재연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자연을 통해 인간을 가르치시지만, 보이지 않는 삶의 흔적인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역사를 기억하면서 성찰하고 참회하고 희망을 갖고 비전을 세울 수 있을 때 미래는 이미 건설되고 있다. 이 점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달란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의 한 인문학자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역사”라고 말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나름대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처음에는 엄청난 학업의 중압감에 눌려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다짐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내가 왜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가 하는 자성이 들면서, 고향에서 겪은 경험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70년대 한국 사회는 억압과 자유, 권력의 만용과 해방의 열정, 독재와 민주화, 군부와 시민, 공권력과 개인의 인권 등으로 뚜렷이 이분화 되어 있었다. 권력이 폭력으로 돌변해 괴물처럼 사람들을 위협했다.

독일에서 문학과 역사, 신학 등 기독교 문예학을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1970년대에 최대한 접근해 볼 수 있는 주제가 어떤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때 등장한 것이 나치 시대였다. 나치 시대를 연구하면, 우리나라의 상황까지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치 시대는 실제 역사이면서, 권력과 신앙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알레고리로 다가왔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를 보면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반지가 사람들을 유혹해 파멸로 몰아가듯, 권력이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뒤 나치 시대를 통해 이 주제를 파헤치고자 한 것이 나의 숙제가 됐다.

▲ 권력과 신앙의 표지 사진은 히틀러와 독일 개신교 총회장 뮐러 목사가 악수하는 모습. 그들의 악수는 결국 독일 역사는 물론 교회사에 惡手로 기록됐다.

나치 시대는 히틀러가 나치당의 당수가 되면서 독일을 지배하던 1933~45년 사이의 역사다. 정치 권력은 전제주의, 독재 권력, 절대 권력, 결국 악의 권력이 되었다. 조국의 재건과 위대한 독일 제국 건설이라는 명분하에, 기독교도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이 시기 일부 교계 지도자들은 앞장서서 ‘교회가 히틀러의 정책에 찬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뮐러(Ludwig Miller) 목사를 개신교 총주교에 임명하고, 교계 지도자들을 친나치 성향의 목사, 신자들로 교체했다. 그들을 일컬어 제국교회, 제국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제국교회의 주장은 비성경적, 반성경적이었다. 심지어 구약은 유대인의 책일 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예수님은 유대인이 아니라 아리안족이라는 억지를 부렸다. 성경과 기독교를 왜곡하여 정치 이데올로기 밑에 두려한 것이다. 이들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도 침묵하거나 찬성하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여기에 반기를 들며 저항한 신앙인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니묄러(Martin Niemöller), 바르트(Karl Barth),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슈나이더(Paul Schneider) 목사 같은 분들이 앞장섰는데, 이 분들은 하나같이 권력에 의해 고초를 겪었다. 이 시기 성경을 따르며 신앙을 지키려 했던 교인들을 고백교회, 고백교회 교인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나치 시대의 기독교는 철저하게 이분화 되는 비극을 맞았다. 기독교인은 본질적으로 나치 사상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반인륜적, 반성경적 사상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앙이 권력에 협력하고 악수할 때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역사 증거라 하겠다. 제국 기독교인들은 정치 권력과 손을 잡으면 선교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권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한국 교회도 이 점을 확실히 해야 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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