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의 하수인이 된 기독교

히틀러와 기독교를 통해 본 ‘권력과 신앙'<中>

‘권력과 신앙’이라는 책 제목은 오랜 고민 끝에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독일 역사와 기독교’ 또는 ‘독일 나치시대의 기독교’, ‘현대사에 비친 기독교’ 등으로 시작했는데 원고 작업을 하면서, 이런 깨달음이 점점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유럽은 18세기 계몽주의부터 인본주의 사상이 크게 유행했다. 유럽을 대표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지성들은 교회 비판에 앞장섰다. 영국의 존 로크, 프랑스의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독일의 칸트, 레씽, 헤겔 등등은 종교비판, 기독교비판으로 유명세를 얻은 사상가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는 인격적이시며 계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53:1).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시대정신(Zeitgeist)이 바로 그랬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정신으로 돌진하던 유럽은 세속화에 무릎을 꿇게 되고, 결국 제국주의, 식민지 팽창주의에 몰두하면서 그 결과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발발하게 했다. 이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자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시니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스스로 보게 하신 것이 아닐까. 로마서 1장 28절 이하에 이 ‘내버려두다’는 의미가 극명하게 나타나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나치시대는 그런 의미에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벌인 광란의 난장(亂場)이었다고 보였다.

이런 깨달음은 나치시대와 기독교라는 상관관계가 단지 그 시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느 시대에도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Allegory)를 제공한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면 ‘권력과 신앙’에서 보여진 패러다임은 우리나라 일제식민지 시대에도, 군부독재 시절에도 존재했었던 현상이었다. 크게 보자면 ‘권력과 신앙’은 권력과 기독교의 관계를 밝히는 역사적 작업이며 알레고리의 해석 작업이었던 셈이다. 이를 통해서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는 왜곡된 역사를 수정하고 바로잡는 영원한 기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 고백교회 신앙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베를린 달렘에 있는 교회로 니묄러 목사가 시무했었다. ⓒ추태화

193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권력과 신앙’ 현상은 비극적이다. 독일인들이 독일인을 탄압하고(나치주의에 물든 독일인들이 반나치주의 자국인들을 탄압한 현상),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나치적 기독교인인 제국기독교인들이 반나치 기독교인들인 고백교회 성도들을 핍박한 현상)하였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 비극 안에는 민족주의(Nationalism)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작동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주제가 아닐 수 없는데, 당시에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극단적이었다. 균형잃은 민족주의가 어떤 파국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당시 민족주의가 열병처럼 유럽을 휩쓸었다. 나치는 극단적, 열광적 민족주의를 먹잇감으로 성장한 정당이었다. ‘위대한 독일 제국 건설’이라는 대전제 앞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기독교인들은 ‘국가가 위태할 때 종교가 나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국가가 있어야 신앙생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먼저 국가를 구해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했다. 실제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러시아의 기독교 탄압은 극에 달했고, 서방은 이를 두려워했다. 불안 심리 속에서 민족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권력이 싹트게 되었다.

제국기독교인들이 부르짖은 이론은 ‘실용적 기독교’(Positive Christianity)였다. 히틀러가 임명한 제국기독교 총주교 L.뮐러 목사는 다음과 같이 이론을 펴고 있다: “교회여 깨어나라”고 외친 그는 위기에 빠진 독일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히틀러와 나치당이 통치를 잘 하기 때문인데, 앞으로 더욱 강력한 국가와 권력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독교는 유대적 영향 속에서 왜곡되어 왔는데, 이제는 독일적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부정적인 기독교에서 긍정적인 기독교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 조국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나치주의는 민족을 위한 거대한 삶의 학교이며 독일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이상적 철학이고 독일적 경선성을 되살리는 운동”이라며 기독교도 여기에 부응해야 한다고 했다.

종교개혁의 나라 독일이 한 순간에 이단으로 변해가는 자들에게 사로잡힐 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고 입맞추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두셨듯이(왕상 19:18) 그 시대에도 불의한 권력에 환호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따르는 자들을 남겨두셨다. 바로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온갖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복음을 부인하지 않았기에 순교(P.쉬나이더, D.본회퍼 목사 등)하기도 하였고, 감옥에 갇히는 핍박을 받기도 하였다(니묄러 목사 외 다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독일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게 하셨고, 전후 독일 교계를 회복하는데 사용하셨다.

▲ 제국기독교의 휘장으로 십자가 안에 나치 상징이 들어있고, 독일 기독교의 약칭인 ‘DC’가 새겨져 있다.

한국 기독교도 ‘권력과 신앙’이라는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가 그것이다. 1938년 장로교, 감리교 등 교계는 신사참배는 종교문제가 아니라 문화문제라고 호도하면서 ‘신사참배를 해도 좋다’라는 결의를 공포하였다. 나치주의를 따르던 제국기독교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 독일 교계가 양분되었듯, 한국 교회도 신사참배 문제로 갈라지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고백교회는 양심선언을 하며 속죄하였다. 전쟁은 1945년 5월에 끝났는데, 10월 공식적인 고백을 하였다. 일명 ‘슈투트가르트 참회선언’이 그것이다. “……우리 때문에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끝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 우리는 우리가 더 용감하게 싸우지 못했으며, 더 신실하게 기도하지 못했으며, 더 기쁘게 믿음 생활하지 못했으며,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고발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계는 언제 이러한 공식적 양심선언을 하였는지 기억에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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