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몬에 맞서는 스님·목사·신부의 '경제 귀신' 퇴마록

응답하라 1991, 헐크호건과 워리어의 더블팀을 꿈꾼다

내 어릴 적 영웅은 단연 ‘헐크호건’이었다. 내가 매주 마주하는 십자가와 동일한 십자가 목걸이를 한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사각의 링 안에서 그가 펼치는 드라마는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상대의 강력한 공격에 혼수상태에 빠졌다가도, 다시 놀라우리만치 강해지는 그 극적 반전에 묘한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그 힘이 십자가 목걸이에서 나옴은 두 말의 여지가 없었다.

헐크 호건의 강력한 라이벌은 ‘울티메티 워리어’였다.(본명을 모름을 이해하시라. 그때의 나는 초등학생이었으니) 그는 인디언이었다. 우상 숭배의 원흉이었다. 그도 헐크호건처럼 극적 반전을 일으켰는데, 로프를 흔들며 인디언들에게 힘을 달라는 주술 행위였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에겐 힘이 솟구쳤다. 그의 몸에 주렁주렁 달린 귀신들이 여간 거슬렸던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헐크호건의 십자가 목걸이가 무당 워리어를 눌러주길 바랐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세월의 흐름 앞에 헐크 호건은 워리어에게 무릎을 꿇었다(헐크호건의 나이가 많았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헐크호건의 모습에 얼마나 큰 절망을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인디언의 주술 앞에 무릎 꿇는 기독교인의 모습이란…. 그 즈음이었다. ‘언더데이커’라는 신흥 악의 세력이 등장하였는데, 그는 역대 모든 강자들의 펀치에도 끄떡없는 신체를 자랑했다. 그의 콘셉은 ‘저승사자’였는데, 워리어도 헐크호건도 2미터의 언더데이커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뜬금없이 언더데이커가 떠오른 것은 사실 이틀 전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지켜보면서다. ‘독재자의 딸’이라니…. 유권자의 50% 이상이 독재자 박정희를 다시 불러들였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관(棺)과 화장가루를 들고 다니던 언더데이커의 모습이 겹쳐졌다. 말로만 듣던 ‘경제 귀신’인가? <한국일보>는 “박근혜,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는 기사를 냈고, 이것은 박정희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 앞에 가서 감사의 참배를 올렸다.

외신들은 이 사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봤다.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 소식을 알리면서 “독재자의 딸(A former dictator’s daughter)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인들은 부유한 나라가 된 것이 박정희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장기간 억압해온 데 대해서는 비판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많은 외신들이 한국인은 결국 민주주의 보다는 ‘경제’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외신 기사들의 행간을 읽으면 결국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코노믹 애니멀’이었다”는 말이다. 완곡히 에둘러 표현했을 뿐이다. 학살자의 딸이어도 괜찮다, 경제만 살려다오. 아우성치는 한국인들을 향한 조소(嘲笑)다.(사실은 자기네들도 마찬가지이면서,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 스님 목사 신부의 대화 다섯마당, 잡설 ⓒ꽃자리

이틀 전, 정치에 대한 희망도, 사람에 대한 희망도 절망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종교로 도피하고 싶었다. 다른 쪽을 택한 국민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어쩌면 ‘경제 귀신’에 홀린 거라 생각했다. 그래, 결국 희망은 신앙이구나, 하였다. 그때 떠오른 책이 <스님, 목사, 신부의 대화, 잡설>(꽃자리 펴냄)이었다. 종교계의 거장들이 뭉치면 한반도를 유린하는 경제 귀신을 몰아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었다. 경제 귀신을 대하는 이들의 힘은 꽤 강하다. 도법 스님, 김민웅 목사, 김인국 신부. 각 종교계의 내로라하는 이들이 뭉치면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책을 펼치었다.(좀 길지만 이들 드림팀의 진가를 한 번 맛보라)

도법 스님 : 나는 사실 민주주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단순 소박한 생각이죠. 4대강 문제를 보면 보존론과 개발론, 찬성론과 반대론 충돌이잖아요. 그렇게 가면 싸움밖에 안 되는 거예요. 양쪽이 같이 고민하고 같이 생각할 공통분모가 없어요. 나는 이게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제가 화쟁위원을 맡아서 4대강 문제를 화쟁적으로 바라보자고 해서 양쪽 진영과 이야기 했거든요. 그때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정직하게 이 문제를 놓고 보면 보존론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고, 개발론자의 얘기를 들으면 그것도 맞는 것 같아요. 내가 환경전문가도, 기술전문가도, 경제전문가도 아니거든요. 그렇잖아요. 그럼 뭐냐. 보통은 환경문제 때문에 4대강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는데 내 관심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서로 분열하고 불신하고 갈등하는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데 있어요. 합의만 된다면 같이 죽어도 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합의해서 죽겠다는 데 무슨 문제가 있어.(일동 웃음)

김민웅 목사 : 양자가 공평한 위치에 서로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대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미 힘의 균형 자체가 굉장히 틀어진 상태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잖아요.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힘의 균형 자체를 조정해주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도법 스님 : 저는 회색분자니까 무조건 절충주의를 찾는 거야.(웃음)

김인국 신부 : 스님, 회색 내려놓으시구요.(웃음) 그렇게 말씀하실 때 저는 좀 불편해요. 새만금이든, 4대강이든, 용산, 평택이든 들어가서 보면 자본과 인간의 싸움인데 양보나 절충의 여지가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본 쪽에서는 대화 따위는 아예 몰라요. 4대강사업이 한창이던 2010년, 여주 이포보에 갔더니 “이천 문제에 왜 타지 사람이 간섭이냐!”는 펼침막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식이예요.

김민웅 목사 : 누가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김인국 신부 : 누구겠어요. 이천의 이권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이겠지요. 2006년 평택에서도 그랬어요. 미군기지가 확장되면 상권도 확장되고 장사도 잘 될 텐데 왜 타지 사람들이 와서 훼방을 놓느냐고 하더군요. 4대강 하면 이천 땅값 올라가는데 왜 난리냐고 말하는 것과 똑같지요. 이렇게 돈의 욕망과 사람의 생명이 격돌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우리 한번 차분하게 상식적인 답을 찾아보자? 글쎄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자본의 탐욕을 야단치고 혼을 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법 스님 :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 사정도 해야 되지만 소리도 달라야 되는 것이죠.

김인국 신부 : 스님께서 누구든 열고 들어갈 마음의 문을 갖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차에서 하는 짓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웃음) 김진숙 씨가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니까 어떻게 했어요? 한진중공업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싹 씻고 약속을 지키지 않잖아요.

도법 스님 : 쌍용자동차는 제가 잘 모르지만 새만금은 제가 좀 알거든요. (중략) 그런데 새만금 문제를 푸는 데 열고 들어갈 문을 제대로 안 찾은 거예요. 그동안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억압받고 소외받아 왔는데 이제 전북도 좀 잘 살아보자는 요구가 있었던 거예요. 전북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경제 활성화라고 보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새만금을 간 거예요. 운동진영이 전북의 아픔을 읽었어야 했어요. (중략) 그래서 새만금 안 하고도 경제 활성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정부로부터 이 문제의 해답을 만들어내자. 그 대신 새만금은 시대정신에 맞게 자연 생태적 가치를 중심에 놓고 가자고 했으면 결국 새만금 운동 하는 진영과 전북인들이 함께 갈 수 있는 지점이 나오게 되고, 함께 가면 상황이 달라졌겠죠.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것을 못 읽었어요.

김민웅 목사 : 새만금의 경우, 시작은 농지 확대였잖아요. 매립지 만들어서 농지를 크게 키우겠다는 거였죠. 그런데 새만금 주도 세력들은 농지 확대가 목적이 아니었잖아요. 게다가 농산물 협약이니 뭐니 해서 쌀농사 자체가 점점 의미를 잃게 되었죠. 새만금 주도 세력들은 결국 거기에 빌딩을 세우고 다른 것을 열고자 한 거죠. 정리가 되니까 자기들의 본심을 드러냈구요. 문제가 뭐냐면 전북 사람들은 새만금의 농지를 확보하면 토지가 확대되고 그것을 통해 전북 경제의 활로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기만당하는 측면이 있었잖아요. 실제로 거기에는 거대 자본이 들어서서 자기 것을 만들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전북 사람들은 새만금을 통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 중 일부는 잘 살 수 있었겠죠. 이게 이명박을 선택했던 환상의 논리와 모순과 동일한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전북의 아픔에는 전북의 환상도 함께 담겨 있다는 점을 좀 짚을 필요가 있다는 거죠.

김인국 신부 : 저는 4대강 사업 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솔직히 말해보렴. 너희들 돈이 필요해서 그러지? 그럼 22조를 그냥 주마. 너희는 돈을 갖고, 대신 우리는 강을 가지마. 댐을 쌓고 바닥을 긁어야 강이 산다고? 웃기지마. 그냥 돈을 달라고 그래!” (중략) 이런 점에서는 자연을 인질로 잡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힐링 전에 먼저 무섭게 혼을 내줘야 합니다.

도법 스님 : 혼이 나야 말이!(웃음)

김민웅 목사 : (그런데) 관리 당사자가 여러 주체예요. 이명박은 그것을 통해서 치적을 올리고 싶은 것이고. 이렇게 여러 이해가 엇갈려 있잖아요.

도법 스님 : 제가 간디를 보면서 눈여겨보는 부분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상만 보면 약자편에 서있어요. 그런데 내용을 잘 짚어보면 누구 편도 아니에요. 약자편도, 강자편도 아니에요. 종교적 표현으로 하자면 간디는 ‘진리의 편’에 서있어요. (중략) 대부분 열 개 중에서 예닐곱 개는 약자 편에 유익해요. 나머지 두세 개 정도는 강자쪽도 인정을 하게 되죠. 이런 결과로 나타나더라고요. 그렇게 다루어야 하니까 간디는 양쪽을 신뢰를 갖고 만나는 거예요.

– ‘둘째 마당, 자본이 만들어 낸 환상과 폭력’ 中에서
각기 자기의 영역에서 경제 귀신을 꿰뚫어 보는 이들 앞에서 나는 다시 희망을 본다. 문을 열려는 스님, 때로는 단호해져야 한다는 신부님, 이 과정에서 복잡한 과정을 풀어보려는 목사님. 서로 견제하고, 보태주고, 섞이면서 점점 진리에 가까워져 간다. 이런 팀이라면, 이들 종교의 ‘큰 어른’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이코노믹 애니멀이 ‘사람’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 프로레슬링이 ‘쇼’이자 엔터테이먼트임을 안 것은 이로부터 10여년 뒤였다. 언더데이커는 우리의 ‘현실’ 앞에 와있는데 더블팀은 추억 속 허구로만 남았다. 이들이 더블팀을 이뤘던 1991년의 그 경기(보기)를 현실에서 다시 보고싶다.

쓰러질 것 같지 않았던 언더데이커를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헐크호건과 워리어였다. 라이벌이었던 이들이 ‘절대악’을 잠재우기 위해 힘을 합쳤다. 이날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헐크호건이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워리어는 헐크호건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관객들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헐크호건 역시 워리어가 처한 난관을 함께 극복하여 나갔다. 원, 투, 쓰리! 헐크호건과 워리어의 주제가가 번갈아 울려 퍼지던 그날의 감격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사람 사는 세상’은 동물이 사람이 되는 날이리라. 나는 언제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래야 ‘기독교人’이든 ‘예수쟁이’든 될 수 있을 텐데. 내 안의 언더데이커는 좀처럼 헛점을 보이지 않는다.

/이범진 유코리아뉴스(www.ukoreanews.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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