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 저자 윌리엄 케네디는 기자 시절 주로 노동자와 알코올중독자, 노숙자들에 대한 기사를 다루었다고 한다. 그는 밑바닥 인생을 훤히 꿰뚫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서도 미국 대공황 시기에 빈민굴을 전전하던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교보문고

책 표지 한 번 본 적 없는데, 라디오에서 던진 말 몇 마디에 혹해 부리나케 책 구입에 열을 올린 건 이 책이 처음이고 마지막일 것이다. 저자와 역자의 이름 모두 내겐 생소했으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의 얄팍한 상식만으로 근 10년 넘게 취미가 독서인 삶을 꾸려왔으니 크게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런데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발췌해 읽은 책 속의 글 몇 줄이 아, 사람을 그렇게 부끄럽게, 또 아프게 만들 줄이야! , 거두절미하고 여기 문제의 대목을 풀어 옮겨본다.

차가운 겨울밤, 반평생 거리에서 부랑 생활을 한 주인공 프랜시스가 부상을 입은 동료 루디를 둘러업고 허겁지겁 병원에 들어선다. 하지만 술 냄새 진동하는 부랑자 따위에게 간호사는 관심이 없다. 프랜시스가 다시 간호사를 불러보지만 루디는 이미 눈을 감은 뒤다. 간호사는 으레 그래 왔다는 듯 서류를 집어 들고 죽은 이의 이름을 묻는다. 프랜시스는 이렇게 답한다. “루디 뉴턴이오. 은하수가 어디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소.”

손을 들어 은하수가 어딘지를 가리킬 수 있는 한 노숙자가 세상을 떠났다. 물론 귀한 영혼 하나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가슴을 꽉 움켜잡아 답답하게 만드는 이 아픔의 근원은 슬픔만이 아닌 것 같다. 일종의 죄책감이다. 루디 뉴턴을 거리로 내몰고 무관심 속에 생을 마감하게 한 장본인이 나 자신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부랑자들이 닳고 닳아 누더기가 된 삶을 살게 된 데는 당신의 책임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고개를 돌려 피할 수 있는 죄책감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원죄에 가까운 죄책감은 어떤가?

저자 윌리엄 케네디는 기자 시절 주로 노동자와 알코올중독자, 노숙자들에 대한 기사를 다루었다고 한다. 그는 밑바닥 인생을 훤히 꿰뚫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서도 미국 대공황 시기에 빈민굴을 전전하던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주인공 프랜시스는 뭔가 사연을 들려주기에는 너무 과묵하다. 대신 낡은 구두를 이끌고 이리저리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인다. 그중에서 그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경유지는 바로 ‘(교회) 전도관이다.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전도관에 들어서지 못한 한 부랑자가 밖에서 덜덜 떨 때 그는 누더기를 찾아다 덮어주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다.자신보다 더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뭐라도 얻어다 먹이고 싶지만, 수프 한 그릇을 기다리는 부랑자들에게 목사의 기도와 찬송은 너무 길다. 그렇다고 그는 자신의 내몰린 인생에 대해 완전히 입을 다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변명이 아니라 자기 인정에 가까워 더욱 참담한 지경이다. 구제받지 못할 영혼과 면죄 받지 못할 자신의 구린내를 자학하는 사람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한순간의 실수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진 프랜시스는 오늘도 하룻밤 눈 붙일 곳을 찾아 차가운 도시를 헤맨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집도 생각만큼 따뜻하고 행복한 곳은 아니다. 일은 꼬이고 서로 오해하고 모함하느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어둠은 만연하다. 누구도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랜시스의 축 처진 발걸음을 따르다 보면 어쩌면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을 죄책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죄책감이 깊어져 어느 순간 불행해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으로 변하게 되고, 그래서 영영 누리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죄책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행복이 빛을 내며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삶. 조금만 용기를 내어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 삶 말이다.

죽어 버리고 싶어. 자꾸 그러고 싶어요. 이젠 막판이라고요.” 길거리에 널브러진 루디를 일으켜 세우며 프랜시스가 말한다. “일어나, 자넨 죽을 만큼 똑똑하지도 못해. 싸워야 돼. 질겨야 된다고! 가지, 바람 안 부는 곳으로.” 프랜시스의 짧지만 뭉툭한 대사에 밑줄을 그어가며 희망을 본다. 그래, 결국 이 책은 자유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은 모진 일들에 대해 너무 마음 쓰지 말기를….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겪게 되는 것이니!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남긴 상처 때문에 충분히 미안해하고 힘들었다면 2, 3차의 고통을 스스로 떠안으며 살지 말자. 우리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숨 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옥죄고 있는 괴로움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 저작권자 © 크로스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더 많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