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20년 전의 죄가 떠오르다니. 정확하게 6학년 2학기 때의 일이다. 꿈에도 그리던 반장 당선. 성적이 어중간했던 탓에 6년간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다가 마침내 마지막 학기에 졸업을 앞두고 반장이 되었다. 정확하게 내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는 이 책에서 거짓말하는 인간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나름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실험 결과가 하나하나 밝혀질수록 내 안의 수치심도 차곡차곡 쌓인다.

▲ 댄 애리얼리 지음 |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펴냄

거짓말에 대해 그가 주목한 것 중 하나는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자신이 10개의 문제 중 8개를 맞혔다고 속인 사람은, 나중에 정말 자신의 능력이 8개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실험이었다. 실제 능력은 5~6개만 맞히는 사람임에도 말이다.

20년 간 나를 감쪽같이 속인 건 바로 나였다. 6학년 1학기 때 그 교실, 시험 현장에서 나는 쪽지를 주고받았다. 친구의 정답이 통째로 적힌 큰 지우개도 받았다. 내 능력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고, 난생 처음 반장 후보가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일이 그동안 내 기억에서 송두리째 빠져 있었던 데에는 일종의 자기기만 과정 때문이다.
‘커닝을 하지 않았더라도 후보가 될 수 있었을 거야. 얼마 바꾸지도 않았잖아?’
‘내가 반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커닝 때문이 아니라 반 학생들이 투표해주었기 때문이잖아?’
‘잘해냈어. 학급을 위해 노력한 대가로 충분히 참회의 시간을 보낸 거야.’

그리고 이런 작은 거짓말과 합리화의 과정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소한 잘못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간다. 사소한 잘못은 그 자체만으로는(상대적으로 볼 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쌓이고 모이면 잘못된 행동을 대대적으로 해도 괜찮다는 어떤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내는 효과가 단 하나의 부정직한 행동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사소한 거짓말이 사회 전체로 보면 윤리적 건전성이 꾸준하게 잠식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책과 더불어 최근에 출판된 <이웃집 사기꾼>은 이에 대해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을 진단한다. 두 책이 공통적으로 다룬 인물 매릴리 존스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학장이었다. <Less Stress, More Success>라는 책을 지은 그녀는 입학문제 전문가로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지원 학생들에게 자신의 타고난 강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성실성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속임수의 유혹은 크지만 사람이란 자기가 세상에 내놓은 것은 늘 되돌려 받는 법”이라며 진실한 면접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본인이 졸업장을 위조한 사실이 밝혀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사기’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차이나의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재벌그룹 ‘신화두’의 탕준 회장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일본의 나고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주장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의 주소만 있는 대학에서 돈을 주고 학위를 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책 <누구나 내 성공을 따라할 수 있다>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였다. 탕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능력의 징표요, 성공의 상징”이라고 응수했다. 지혜로운 대처(?) 덕분인지 그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이 스캔들이 알려진 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1%가 그를 용서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대중의 도덕성이 파괴되었다는 방증이다. 다시, 댄 애리얼리의 생각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본다고 치자. 그러면 그 행동에 대한 어떤 작은 인상이 우리에게 남고, 그로 인해 우리는 예전보다 아주 조금 더 부패한 상태로 변한다. 그리고 이후에 우리가 다시 어떤 비윤리적 행동을 목격한다면 우리의 도덕성은 조금 더 훼손되고, 비도덕적인 바이러스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타락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어쩌면 한국사회는 아직 건강한지도 모르겠다. 새 정부의 일꾼으로 몇몇 요직 후보에 올랐던 사람들이 ‘도덕성’ 시험에 철퇴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대중의 도덕성 기준이 아슬아슬할지언정 아직 파괴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대중을 기만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허태열 씨는 전체 13쪽 분량의 원문 중 6쪽을 그대로 ‘카피’하고도 “시간이 부족해서 실수를 좀 했다”며 “학자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이런 유형의 설명을 댄 애리얼리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방식이라고 표현하며 경고한다.

그러나 한 번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나면 이후에는 도덕적 기준이 느슨해지면서 또 다른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농후해진다. 만약 가짜 박사 학위를 가진 어떤 중역이 이 가짜 학위를 편지지 윗부분의 인쇄 문구나 명함, 이력서, 웹사이트 등에 계속 사용함으로써 이런 사실을 스스로 끊임없이 상기하게 된다면 이 사람은 엄부 추진비를 과다하게 보고하거나, 근무시간을 부풀리거나, 기업 자금을 엉뚱한 데다 쓰는 따위의 부정행위 역시 별다른 갈등 없이 저지를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불행하게도 허 내정자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도 최근 논문 표절 논란으로 곤혹이다. 주목받는 교회였던 만큼 큰 이슈였는데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관련 기사에 달린 몇몇 교인들의 댓글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탈탈 털어 이정도면 깨끗한 것 아니냐’는 내용이 그랬다. 다른 목사들은 헌금 횡령이나 성폭행을 하고도 버젓이 목회를 하는데 논문 각주 ‘몇 개’ 빠뜨린 게 무슨 큰 죄냐, 주장했다(이것이 교인들의 평균 인식이 아니길 바란다).

이는 두세 문제 더 맞혔다고 속여, 돈을 조금 더 받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합리화했던 실험 대상자들과 같다. 애리얼리는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테스트 하면서 20문제 중 20문제를 다 맞혔다고 주장한 사람을 몇 명 만났다. 돈을 최대한 챙기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소수였고, 이들이 부당하게 가져간 돈은 모두 합쳐 몇 백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겨우 ‘몇 문제’ 부풀렸던 사람들이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한편 우리는 ‘겨우’ 몇 문제만을 부풀리는 사람은 수만 명이나 봤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나머지 우리가 이들에게 빼앗긴 돈을 모두 합하면 수천 달러 규모에 이르렀다. 우리가 이들에게 빼앗긴 돈은 적극적인 부정행위자들에게 빼앗긴 돈보다 훨씬 더 많았다.

우리의 도덕성 기준점 바로 아래에서, 그러니까 ‘이정도면 괜찮다’고 내어준 곳부터 오염이 시작된다. 그리고 들불처럼 번진다. 한때 유행어처럼 번졌던 교회의 ‘자정능력’ 여부도 여기에서 갈린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결벽에 가까운 도덕성을 겸비하고 있는가가 교회의 건강함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어딘가에는 맑은 물이 솟아야 탁한 물이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교인들이 많이 모인 교회일수록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들의 부정행위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물 근원이 맑아 더러운 물도 깨끗하게 되는 곳이 교회이지 않은가.

개인이 도덕성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애리얼리는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라고 권한다. 감시자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부정행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방법이다.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하나님 앞(Coram Deo)에 서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꿰뚫어 응시하는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실제로 에리얼리는 십계명을 외우는 방법이 효과적임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섰다. 읽는 내내 생각지도 못했던 죄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합리화하며 지낸 게 벌써 10년이다. 얽히고설킨 채무관계 탓에 나는 전혀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왔다. 매주 ‘참회의 기도’ 시간에도 떳떳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책을 읽어가며 점점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섰다. 그분 앞에선 도저히 ‘합리화’와 ‘변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10년 만에 300만원을 갚았다. 자기 자신의 실체와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아울러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겨우 이정도로’라는 말을 자주 쓰는 교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학원복음화협의회 <물근원을 맑게> 101호에도 실렸습니다.

/이범진 유코리아뉴스(www.ukoreanews.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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