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부

하나님이 만드신
오리지널 여자의 모습을 회복하자!

나를 여자로 만드시고 아내와 엄마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기대하는 킹덤 완성의 열쇠가 여자에게 있다.

한번쯤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으며, 아내와 엄마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는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있는 모습 그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여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끊임없이 자기의 모습에 무언가를 덧입혀 살고 있다. 외모도, 능력도 있어야 된다며 공부하고 열심히 산다. 무언가로 끊임없이 치장하는 동안 하나님이 만드신 나의 원래 모습이 가려지고, 하나님이 주신 ‘여자’의 모습도 저 깊숙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애슐리 박은 공부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고,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을 가서도 오직 공부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뿐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그동안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죽는 나날을 보낸다. 자기 존재 가치를 높여 주고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결혼을 통해 그 허상을 드러내며 허물어졌다. 허물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는 동안 저 깊숙이 감추어 둔 ‘여자’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엔 남편이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해 괴로워하며 몇 해를 보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결혼생활 가운데 그녀의 우상이 공부였음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새 꿈을 심어주셨다. 바로 킹덤 패밀리로, 왕의 신부로 부르신 것이다.

왕의 신부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를 가리킴과 동시에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신부도 일컫는다. ‘일이냐, 가정이냐?’에서 고민하는 여자에게 오히려 하나님은 “너는 어떤 신부가 되겠니?”라고 물으신다. 그러나 왕의 신부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녹록지 않다. 애벌레의 모습이 죽어지고 나서야 아름다운 나비로 변화되듯이, 세상에서 자라면서 형성된 자아가 죽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오리지널 여자의 모습이 회복되어야 어느 것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 왕의 신부로 권세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 이제 하나님의 킹덤 패밀리로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할 영적싸움이 있는데, 여자에게 킹덤 완성의 열쇠를 주셨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 에스더, 한나, 드보라와 같은 여인이 바로 왕의 신부다. 당신이 바로 왕의 신부의 계보를 이을 주인공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 애슐리 박

애슐리 박은 딸 부잣집의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던 그녀는 서울대학교에서 공학석사를 마치고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1992년 국비장학생으로 미시간대학 경제학 박사 과정에 입학한다.
유학하던 중 한국계 미국인 다니엘 박을 만나 예기치 않게 결혼을 하게 되었고 부부 갈등이 심해지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은 학업이라는 마음의 우상이 드러나는 고통과, 자아를 내려놓는 아픔을 가져다주었으나 그것은 그녀를 정금같이 단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자신의 꿈이 무너지는 절망을 지나 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꿈이 시작되면서 그녀는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무소유보다 더 아름다운 자유를 소유한 킹덤 패밀리로, 왕의 신부로 살고 있다.
‘왕의 신부’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선한 싸움을 이겨 낸 자들에게 주시는 이름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 철저히 죽어지는 과정을 거치듯,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한 남자의 신부인 여자가 가정에서 온전히 복종할 때 남편도, 자녀도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게 된다. 아내의 순종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킹덤이 완성되어 가기 때문이다. 왕의 신부는 잠언의 현숙한 여인처럼 가정뿐만 아니라 나라와 열방을 하나님의 킹덤으로 만드는 자로 쓰임받을 것이다.
애슐리 박의 가족은 앤아버(Ann Arbor)의 지역 교회, 열방을 위한 24기도, JAMA, MOM 등 다양한 단체들과 함께 도시와 열방을 섬겼으며, 지금은 사랑하는 한국에 머물며 통일 한국과 열방의 부흥을 위하여 온 가족이 기도하며 헌신하고 있다.
저서로는 《킹덤 패밀리》가 있다.
[차례]

추천의 글
프롤로그

PART 1 딸, 아내 그리고 여자
01 왕을 만나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다•도대체 끝은 있나요?
추운 데서 기다리고 계신 왕•나를 지켜보고 계신 분

02 내가 계획한 인생을 꺾으시다
내 꿈을 이뤄 줄 꿈의 무대로•예상치 못한 결혼•억울한 피해자의 변명

03 아버지의 시간 속으로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아버지의 외로운 어린 딸 •40년을 되돌려 주시다

04 죽은 자가 누리는 완전한 자유
엘리야의 갈멜 산•한순간의 실수 •나사로야 나오라!
PART 1 두 킹덤
01 아버지의 이름이 회복될 때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미안하다, 딸아•상처, 나의 선택이다•수치가 변하여 팔복이 되다

02 왕의 판결
에덴동산의 첫 판결•남편과 아내의 연합•어제의 최선이 오늘의 최선이 아니다•사탄의 원수

03 하나님이 주신 오리지널 이름
과부의 영•아비 없는 세대•나그네 길에서 다시 찾은 축복•킹덤 리더십

04 선악과가 없어진 하나님의 킹덤
킹덤의 상속자들•선악의 지식•견고한 진을 사로잡아 •여자가 치르는 영적 싸움•다시 회복된 하나님의 킹덤
Part 3 왕의 신부

01 신랑과 하나됨을 이룬 신부
체스 판의 마지막 한 수•자아가 죽을 때 진짜 내가 살아난다•강력한 신부의 권세•죽음과 새로운 시작 •아내가 묶는 대로 남편이 풀린다•어메이징 슈퍼우먼•현숙한 여인 만들기

02 생명의 탄생으로 역사를 바꾼 어머니
에덴을 떠나며 새 이름을 짓다•머리들의 질서•새 역사를 시작하는 어머니•함께 부르는 승리의 노래•여호와를 찬송하는 어머니•어머니 리더십•또 다른 어머니의 운명

03 역전의 역사를 이루는 여인들
왜 한국인가요?•연약한 어머니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강함•신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었던 여인•평화의 소녀•북한의 신부들

에필로그
[추천의 글]
싱글맘 모임인 ‘다비다자매회’와 20년을 함께해 온 저는 ‘왕의 신부’라는 단어가 결코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 ‘왕의 신부’가 무엇인지 삶을 통해 보여주는 저자 덕분에 책의 행간마다 아가서의 ‘신부의 어깨를 감싸고 함께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신랑’이 숨어 있음을 알아챈 저는 진정 행복한 신부였습니다.
김혜란•목사, 다비다자매회 회장

애슐리 박, 그녀가 바로 왕의 신부입니다. 이 정체성 하나로 만족의 길을 찾아 나선 신부입니다. 다른 치장 필요 없이 이 행복한 신부의 비밀은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그녀는 새롭게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입니다. 여인을 유혹하는 세속 문화의 한복판에서 왕의 신부는 당당합니다. 그녀가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복음 안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킹덤 패밀리》에 이은 《왕의 신부》를 통해 우리는 복음의 능력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사는 여인을 만납니다. 킹덤 패밀리를 만난 킹덤 여인의 내면 여행을 따르다 보면 우리 모두 어느새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게 됩니다. 제가 킹덤 패밀리를 만나 교제하며 경험한 경이로움을 《왕의 신부》를 접하는 독자들이 또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애슐리 박의 가족을 만날 때마다 저는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벗어나 살아가는 자유 말입니다. 무소유보다 더 아름다운 자유를 소유한 킹덤 패밀리의 비밀을 아직도 이 땅의 소유에 매여 여행길이 힘겹기만 한 하늘 가족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자유의 킹덤으로 떠나는 더 많은 패밀리의 모험을 보고 싶습니다.
킹덤 패밀리 입장 그리고 왕의 신부 입장을 알립니다.
이동원•지구촌미니스트리네트워크(GMN) 대표

애슐리 박의 간증과 메시지는 저에게 늘 영성 깊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여자는 행복을 위해 결혼하지만, 우리 주님은 결혼을 통하여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는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신부로 만들어 가십니다. 주님의 손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어머니로 빚어지면서 마침내 왕중왕(king of kings) 예수님의 신부로 세워지는 애슐리 박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이 될 것입니다.
이용희•에스더기도운동 대표

아름다운 봄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길고 혹독한 겨울을 먼저 통과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진리에 뿌리를 내리는 고통이 있어야 죄 가운데 태어난 여자가 왕의 신부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그 진리가 향기를 토하는 ‘왕의 신부’라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독자들에게, 특히 《킹덤 패밀리》를 통해서 천국을 만난 독자들께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
정근두•울산교회 담임목사

[본문 속으로]

온 땅에 무언가 작은 것들이 아주 열심히 그러나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들은 한두 개가 아니다. 수많은 것들이 온 땅 위를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인가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애벌레였다.
온 땅을 아주 열심히 그러나 매우 느린 속도로 꿈틀대며 기어 가던 애벌레들이 어느 순간 하나 둘씩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더니 그들은 그렇게 정지한 채로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땅에서 무언가 ‘뾰옹~’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른 곳에서도 ‘뾰옹~’ 하더니 여기저기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아! 바로 나비들이었다. 순식간에 하늘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나비들로 뒤덮였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 애벌레는 자신의 모습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꿈틀대고 기어다니는 애벌레의 삶을 멈추고 번데기의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번데기 안에서는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해체되어 마치 액체 상태의 죽처럼 변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나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그러나 그의 존재는 이제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죽처럼 변한 형질로부터 나비의 아름다운 날개가 만들어지고, 안테나가 만들어지고, 투명하고 맑은 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애벌레 적에, 아니 그 훨씬 이전의 알이었을 적에 그 안에는 나비의 형상이 있었다. 나비의 형상이 실제로 드러나기 위해서 애벌레는 애벌레 적의 모습으로부터 죽어야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고, 결국 모든 것이 분해되고 해체되는 시간까지도 감내해야 했다. 아무런 소망도 없어 보이는 이 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나비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죽음과 같은 시간을 통과한 애벌레가 마침내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개를 저으며 하늘로 날아간다. 나비는 애벌레 적 세계와 차원이 다른 세계를 산다. 2차원의 평면 세계가 아니라 3차원이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세상을 볼 수 있다. 존재하리라고 상상도 못하던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날개를 저어 보고, 그의 눈으로 직접 보고, 발로 만지게 되었다.
이곳 저곳으로 날아다니는 동안 나비의 존재는 그가 속한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존재를 통해 아름다운 꽃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맛있는 과일들이 더 많이 생겨나게 되고, 그의 아름다운 날개짓에 홀린 사람들은 경이로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향해 감탄하게 된다. 애벌레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나비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가 겪은 죽음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비는 애벌레로서 겪었던 죽음과 같은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그의 마음은 나비로서 살아야 할 경이로운 삶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p. 21-22
여자의 사명을 향한 사탄의 공격: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여성의 존재를 억압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능력과 존귀함이 아름답게 드러나고, 여성다움이 귀히 여겨지는 이 시대에, 사탄은 쉽사리 여성의 존재를 억누를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탄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 들 것이다. 이제는 여자의 존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대신 하나님이 여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그녀를 공격하려 하지 않을까?
모든 관계의 중심에 있는 여자에게 남편을 향하여는 ‘아내’, 자녀에게는 ‘어머니’, 그리고 사탄을 향하여는 그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명이 맡겨졌다.
아내의 사명은 그녀의 남편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그의 원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는 바람에 그녀의 남편은 온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 있는 자리에서 졸지에 저주 받은 땅에서 땀 흘려 수고하는 처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아내를 통하여 그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아담의 권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되찾으신 권세가 이제 남편의 삶에서 회복되는 것이 아내인 여자의 사명이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 임신의 고통과 해산의 수고가 따르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룩한 세대를 낳는 것이 어머니의 사명이다.
여자의 또 다른 사명은 사탄의 원수다. 원수에 대해 알고 사탄을 무너뜨리는 것이 그녀의 몫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여자인 내가 도리어 사탄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내 안에 들어온 두려움은 나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남편과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자가 사탄(세상)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남편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아내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 자녀들을 거룩한 세대로 양육하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이 된다.
여자로 태어나 수많은 것들을 열심히 추구하며 사는 동안 정작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자리를 소홀히 한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소중한 가족을 뒷전으로 한 채 정신없이 달리려 하지 않았던가. 아! 내가 무언가에 속고 있었나 보다. 여자가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누구인지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p. 122-124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우리가 살던 앤아버 동네 가까이에 딸의 학교 친구가 살고 있었다. 4명의 자녀가 있는 그 집 엄마는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고 직장을 다니며 훌륭하게 가정을 꾸리는 싱글맘이었다. 주말이 되면 집집마다 아빠들이 나와 잔디를 깎고 있을 때, 그 집에서는 엄마가 마당에 나와 무거운 기계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유연하게 잔디를 깎았다.
‘와 진짜 멋있는 아줌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도 싱글맘으로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종종 ‘슈퍼싱글맘’이라고 불렀다.
남편이 사역을 하느라 집을 떠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나도 본의 아니게 싱글맘의 삶을 살게 되었다. 미시간은 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내리곤 한다. 하필 남편이 집에 없을 때 눈이 잔뜩 쌓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끙끙거리며 눈 치우는 한국 아줌마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언젠가부터 남편이 없는 동안 눈이 내리면, 우리 집 왼쪽 집에 사는 중국 아저씨와 오른쪽 집에 사는 미국 아저씨가 우리 집 앞의 눈까지 말끔하게 치워 주었다. 이들뿐 아니라 그 외에도 말없이 도와주는 손길 덕분에 슈퍼싱글맘으로 사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정에서 남자가 잔디 깎고 눈 치우는 일과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 잔디 깎고 눈 치우는 일이야 돈을 주고 해결할 수도 있고, 돈이 없으면 옆집 아저씨의 도움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이나 옆집 아저씨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각 가정의 남자에게 주셨다고 하나님은 거듭 말씀하신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5-7).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삶을 아버지가 먼저 삶에서 살아 내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자녀들이 집에서 늘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자녀들과 함께 이에 대해 강론하라고 명령하신다. 자녀들의 영적인 교육을 아버지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이것은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 지도자의 책임이 아닌 바로 아버지들의 몫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녀들이 아버지를 볼 시간이 별로 없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버느라, 때로는 사역을 하느라 아버지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아버지에게 가정은 자녀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그들을 훈계하고 양육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밖에서 일하느라 지친 심신을 쉬는 곳이 되어 버렸다.
p. 146-148
창조의 맨 마지막에 만들어진 여자는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있는 모습 그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여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나의 모습에 무언가를 덧입혀 왔다. 지식이 더 많아야 되지 않을까? 능력도 있어야 돼! 지식으로 치장하고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능력으로 또다시 치장했다. 높은 지위도 필요해! 그래서 공부하고 열심히 살았다.
무언가로 끊임없이 치장하는 동안 하나님이 만드신 나의 원래 모습이 가려지고, 하나님이 주신 ‘여자’의 모습도 저 깊숙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전혀 불편함을 몰랐다.
그런데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치장된 나의 모습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불편으로 인한 갈등은 그동안 나를 멋있게 꾸미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지위도 능력도 없는 민낯의 나를 인정할 수 없었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렵기만 했다.
무장해제! 나의 존재 가치를 높여 주고 나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결혼을 통해 하나하나 그 허상을 드러내며 허물어지고 있었다. 허물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는 동안 내가 저 깊숙이 감추어 둔 ‘여자’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내가 여자로서 단장하기 원하셨다. 신랑 앞에 서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단장이었지 치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떤 단장을 해야 하는 걸까? 왕후가 되기 위해 자신을 단장하던 에스더가 생각났다.
p. 192-193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로 부르신 것을 깨닫기 시작한 드보라는 이제 온 민족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나안의 위력에 눌려 두려움에 떨며 숨어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고 그들의 숫자는 한 지파 두 지파 늘어나더니 결국 온 민족이 한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이 연합에는 이스라엘 민족만 참가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땅에 함께 살던 이방인들도 이스라엘의 전쟁에 기꺼이 참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의 마음은 이스라엘 땅에 함께 거하는 이방인의 작고 작은 자, 한 아낙네에게로 향했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삿 5:24).

이스라엘의 전쟁에 등장한 이방 여인 야엘은 이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을 행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장막에 몸을 피하여 잠을 자고 있는 적장의 머리를 향해 손을 올려 든 것이다(삿 5:26). 그녀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대했다. 어쩌면 이스라엘에서 작은 자 중의 가장 작은 자였을 야엘은 이로써 가나안 전쟁에서 가장 큰 승리의 영광을 얻게 된다.
야엘의 장막은 한 이방 여인에게는 삶의 전부인 그저 평범한 곳이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던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의 눈을 그 장막으로 향하게 하신다. 깃발을 앞세우고 적과 싸우는 전쟁터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여인의 장막에서 하나님은 전쟁의 클라이맥스를 펼쳐 보이신다.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는 수평적으로는 지파들의 연합을, 수직적으로는 높은 자부터 가장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연합을 이루어 냈다. 이 가나안 전쟁에 온 민족이 참여하였고 그 승리의 기쁨을 모두가 누렸다. 한 여인이 민족의 어머니로서 깨어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끊임없이 선포하고 노래할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다.
p. 24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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