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자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기는 자로 부르신다!

천국은 비겁한 자, 비굴한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두려움조차 정복하지 못하는 자,
자신의 배고픔을 뛰어넘지 못하는 자,
자신의 욕심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
이런 자들에게 천국은 허락되지 않는다.

천국은 ‘이기신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한 자들의 유업이다!
그분과 참으로 연합하였다면,
그는 이기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세상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주님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는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오늘 다스리지 못하면, 그날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오늘 정복하지 못하면, 그날에도 정복하지 못할 것이며,
오늘 ‘이기는 자’로서 살아내지 못하면,
나는 주님과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기는 자여! 함께 일어나자!
하나님의 방법대로 싸우면
하나님이 승리를 책임지신다!
[저자 소개]
다니엘 김(Daniel Kim)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 편이 아닌 예수 진영의 정예 군사가 되어, 삶의 어떤 영역에서 세상과 승부하더라도 예수의 능력으로 거뜬히 이기는 법을 훈련한 철인(鐵人) 전도자. 그는 또한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살면서, 말씀이 가르치는 믿음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자고 호소하는 열정의 설교자다.
그가 말하는 ‘이기는 자’란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그 영광스러운 복음을 추적하는 자, 영원한 믿음의 선두주자인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끝까지 견디는 자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그의 인생의 보화로 삼아 살면서, 주님 때문에 순결하고, 주님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주님 때문에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는 이 책에서 죄와 세상과의 끊임없는 싸움에서 탈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본질을 붙들고 최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돌진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재일교포 2세인 아버지의 고향 일본으로 갔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떠난 한 선교사님과의 필리핀 전도여행 중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이후, 5년 동안 매주 후쿠오카 시내에서 복음을 전했다. 국제학교 졸업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찰스턴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The Citadel)에 입학, 숱한 차별을 이겨내고 4학년 때 전교생의 신앙을 지도하는 종교대장이 됐다. 사관학교 졸업 후, 시카고 트리니티신학대학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M.Div.)을 다니며 한인교회 전도사로 사역했고, 2006년에 선교사 파송을 받았으며, 2007년 2월 미국 남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0년 한국, 10년 일본, 10년 미국이라는 다국적 성장 과정이 준 국제 경험과 언어 능력을 도구 삼아 오늘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선교사 모집, 훈련, 동원’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적 복음유통사역에 힘쓰고 있다. 또한 ‘복음, 선교, 다시 오심’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온전한 예배자를 길러내는 예수세대운동(JGM:Jesus Generation Movement)의 대표를 맡고 있다.
[프롤로그]
이기는 자로 부르시다

(전략)
이기는 자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
성경에서 ‘이긴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떠한 경쟁 영역에서 성공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더욱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쟁의 영역이 언제나 단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승리’는 동시에 다른 영역에서의 패배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가정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고,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를 놓치는 경우가 있으며, 명성을 얻기 위하여 도덕적으로 타락해버리는 경우처럼, 한 영역의 승리가 모든 영역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승리’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인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이기는 자’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이라는 단어에서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가볍게 종교 용어로 단정짓는다. 하지만 원래 ‘복음’이라는 단어는 정치 용어로써 고대 왕들의 행적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한 왕의 통치로 인해 그 백성들이 받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기록을 남길 때 사용되었던 단어인 것이다. ‘누가 왕이 되느냐, 누가 보좌에 앉느냐, 누가 다스리느냐’에 따라 그 통치권 아래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운명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왕이었던 아우구스투스 시저(Augustus Caesar)의 자서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아우구스투스 시저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가 왕이 되고, 보좌에 앉아 다스림으로써 그 통치권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 어떠한 축복을 누렸는가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마가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막을 연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심으로써 그분께 속한 백성들이 어떠한 축복의 대상이 되었는가를 기록한 내용이라는 소개이다. 그렇다! 복음의 본질은 통치이다. 단순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정도로 복음을 단정짓는 것은 불충분하다.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에게 어떠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전해주는 좋은 소식인 것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좋은 소식(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복음)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복음의 메시지는 ‘통치’이다.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통치’는 한 영역에서의 성공이 아닌 본질적으로 ‘모든 영역을 초월한 승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창조자의 눈과 코와 입이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본질을 피조물이 공유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통치자의 형상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하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통치자의 본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창 1:28 참조)
즉 “통치하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질이요, 잃어버린 정체(正體)이다!

(하략)
다니엘 김

[차례]
프롤로그

PART 1 이기는 자는 ‘충격적인 복음을 만난 자’다
chapter 1 복음으로 세상과 승부한다
chapter 2 믿음의 선두주자를 따라간다
chapter 3 자신을 쳐서 주님의 뜻에 굴복한다

PART 2 이기는 자는 ‘끝을 알고 가는 자’다
chapter 4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chapter 5 죄를 회개하며 돌이킨다
chapter 6 오직 주님께만 충성한다

PART 3 이기는 자는 ‘본질에 충실한 자’다
chapter 7 팔복의 비밀을 누린다
chapter 8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린다
chapter 9 이 세대를 제자 삼는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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