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컬처치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목회 패러다임의 대전환
인간 중심의 수평적 목회에서 하나님 중심의 수직적 목회로!

오늘날 교회의 이미지는 어떤가? ‘예수님’보다 사람들의 다툼과 험담 혹은 그곳에서 경험한 상처와 실망감이 먼저 떠오르지는 않는가? 교회와 성도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물들이기는커녕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세상 문화에 물들어 있다.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는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를 ‘인간 중심의 수평적 목회’로 진단하고, 거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유일한 대안을 책에 담았다.
그가 시무하는 미국 하비스트바이블교회(Harvest Bible Chapel)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살아 있는 ‘버티컬 처치’(Vertical Church, 수직적 교회)를 추구한다. 1988년, 제임스 맥도널드 부부가 18명의 동역자와 함께 기도하며 시작한 교회는 현재 시카고 광역 도시권의 일곱 개 지역에서 13,000명이 모이는 멀티사이트 교회로 성장했다. 저자는 “우리 시대 교회의 바짝 마른 땅을 다시 적실 수 있는 유일한 생수는 하나님의 임재다”라고 선포하며, 수평적인 목회 방식 대신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 집중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구할 때, 하나님은 복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셨다. 이 교회에서 성경 교육과 교회 개척, 목회자 훈련 센터, 사시사철 계속되는 캠프, 성경적 상담 센터, 구호 기관, 기독교 학교까지 다양한 사역이 가지를 뻗었다. 그 실례로, 2002년에 설립한 하비스트바이블펠로십(Harvest Bible Fellowship)을 통해 지금까지 백여 개 이상의 교회가 세계 구석구석에 세워졌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2020년까지 천 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버티컬 처치》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저자는 ‘영원’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알려 주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거기서부터 교회에 맡기신 소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신학적으로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눈에 보이는 증상을 해결하는 데 급급한 처방이 아니라, 그 병의 보이지 않는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먼저 모시지 않은 채 사람들을 데리고 오려고 수고하는 이 시대 교회와 목회자들에 약이 되는 쓴소리를 건넨다.
그러나 이는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넘어지기를 반복한 25년간의 현장을 책에서 과감히 공개했다. 이를 통해 교회가 왜 수직적이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수직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책에서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이겨 내야 했던 장애물 중 하나는 사람들의 이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목사가 자기 교회에 관한 글을 쓰면 사람들은 보나마나 성공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교회의 이야기는 성공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 중요한 수직적 원칙들을 드러내셨다고 믿지만 우리 교회가 탄탄대로만을 걸어 온 것은 절대 아니다. 실제로 지난 25년은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라고 밝혔다. 예수님을 만나고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그는 어마어마한 재정적인 어려움,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등 돌림, 본인의 전립선암 투병, 사랑하는 아들이 당한 큰 교통사고,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어머니의 죽음 등 휘몰아치는 연단을 통과했다. 이 담금질의 시간에 그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갔으며, 겸손한 사역자로 다듬어졌고, 수직적 목회에 대한 깊고 강한 확신을 얻었다.
아직 교회를 포기하지 마라!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회복하는 데서 다시 시작하라! 이 책이 그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_제임스 맥도널드(James MacDonald)
미국 하비스트바이블교회(Harvest Bible Chapel)의 담임목사다. 이 교회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살아 있는 ‘버티컬 처치’(Vertical Church, 수직적 교회)를 추구한다. 1988년, 제임스 맥도널드 부부가 18명의 동역자와 함께 기도하며 시작한 교회는 현재 시카고 광역 도시권의 일곱 개 지역에서 13,000명이 모이는 멀티사이트 교회로 성장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 시대 교회의 바짝 마른 땅을 다시 적실 수 있는 유일한 생수다”라고 선포하며, 수평적인 목회 방식 대신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 집중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구할 때, 하나님은 복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셨다. 하비스트바이블교회에서 성경 교육과 교회 개척, 목회자 훈련 센터, 사시사철 계속되는 캠프, 성경적 상담 센터, 구호 기관, 기독교 학교까지 다양한 사역이 가지를 뻗었다. 1997년에 시작한 ‘워크 인 더 워드’(Walk in the Word)는 라디오를 통해 매일 300만 명 이상의 청취자를 찾아가고,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나 성경을 가르친다. 또한 2002년에 설립한 하비스트바이블펠로십(Harvest Bible Fellowship)을 통해 지금까지 백여 개 이상의 교회가 세계 구석구석에 세워졌다. 그의 비전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2020년까지 천 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책에 밝힌 대로, 사역자로 살면서 그는 어마어마한 재정적인 어려움,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등 돌림, 본인의 전립선암 투병, 사랑하는 아들이 당한 큰 교통사고, 어머니의 루게릭병 투병 등 휘몰아치는 연단을 통과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갔으며, 더욱 겸손한 사역자로 다듬어졌다. 무엇보다 그의 곁에는 이 담금질의 시간 동안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최고의 돕는 배필 케이시가 있었다. 장성한 세 자녀를 두었으며, 며느리, 사위, 다섯 명의 예쁜 손주들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나 피닉스신학교(Phoenix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언제나 진실하심》(디모데), 《하나님이 쓰신 책》(서로사랑), 《하나님 제가 바뀔 수 있습니까》(낮은울타리) 등의 저서가 있다.

*저자 홈페이지 jamesmacdonald.com

옮긴이 _정성묵
광운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해방 UNLEASH》, 《JESUS ALL 예수로 충분합니다》, 《팬인가 제자인가》,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결혼의 신비》, 《악의 문제 바로 알기》, 《하나님에 관한 불변의 진리》, 《긍정의 힘》(이상 두란노)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 추천의 글

이 책을 읽고 나면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교회의 앞날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바뀔 것이다.
빌 하이벨스 _윌로우크릭교회 담임목사

신참이든 베테랑이든 상관없이 모든 목회자에게 꼭 필요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릭 워렌 _새들백교회 담임목사

비판자나 이론가가 쓴 흔한 책이 아니다.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목사가 쓴 책이다.
마크 드리스콜 _마스힐교회 담임목사

교회의 최우선사항이 무엇이고, 우리가 왜 존재하며, 어떻게 해야 세상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정말 기쁘다!
페리 노블 _뉴스프링교회 담임목사

하나님이 이 책을 통해 당신 안에 예수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불어넣으시리라 확신한다!
매트 챈들러 _빌리지교회 담임목사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백성들을 향한 제임스 맥도널드의 열정은 전염성이 강하다.
스티븐 퍼틱 _엘리베이션교회 담임목사

30년 넘게 목회를 하고 나니 교회에 관해 알 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참으로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며, 철저히 적용해야 할 책이다.
잭 그레이엄 _프레스톤우드침례교회 담임목사

피상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진짜 문제를 파고드는 책이다.
J. D. 그리어 _서밋교회 담임목사
* 차례
프롤로그. 이 시대 교회가 되찾아야 할 한 가지

Part 1.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버티컬 목회, 선택 사항이 아니라 생명줄이다

1. 모든 인간 속에는 ‘영원’을 향한 갈망이 꿈틀댄다
2. 이 갈망은 ‘하나님 영광’으로만 채워진다
3. 하나님은 영광의 통로로 ‘교회’를 택하셨다
4. “이가봇!” 교회에 영광이 사라졌다!

Part 2.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버티컬 처치를 떠받치는 네 기둥을 건축하라

1. ‘온 존재’로 영적 예배를 드리라
2.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변증 없이’ 설교하라
3. 복음을 팔지 말라, ‘담대하게’ 증언하라
4. 생각만 하지 말라, ‘실제로’ 기도하라

에필로그. 이제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기로 정하라
* 본문 맛보기

<56쪽 중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딜레마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인간 죄의 핵심은 수평적인 행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수평적인 행위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죄로 인해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분보다 자신을 더 높은 자리에 앉히려는 악한 성향에 빠졌다. 하지만 전도서에서 봤듯이 죄로 어두워진 상태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너머에 있는 뭔가를 의식하고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은 큰소리로 그분의 초월을 선포하고 있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면서 이 외침을 억누른다.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는 한, 우리의 우상 숭배는 점입가경으로 흐르다가 결국 우리를 파괴하고 만다.

<59-60쪽 중에서>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도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교회가 초월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찮은 것들만 주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교회가 사람들의 타고난 갈망을 채워 주지 않고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 것은 우상을 타파하기는커녕 조장하는 꼴이다. 우리 대부분은 호주머니에 목각인형 우상을 넣고 교회에 가지 않는다. 대개 우리의 우상은 우리 자신이다. 나의 성적 매력, 나의 신실한 종교성, 나의 재물, 나의 완벽한 가정, 나의 끝없는 야망. 이것들은 교회가 제거해야 할 우상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신학의 연회를 베풀고 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께 실망했다며 환멸에 빠져든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다.

<69-70쪽 중에서>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출 33:4). 하나님이 떠나가신 걸 알고도 계속해서 웃고 떠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항의 극을 달리던 그들에게도 앞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일이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 일용할 양식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떠나가셨을 때 찾아올 결과를 인식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단순히 만인과 만물 가운데 편재하심과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회막 위에 머물러 자신들을 이끄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목격했다. 그들은 야훼가 ‘바로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아무래도 이 차이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임재를 그분의 편재하심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큰 오류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활동에만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 ‘안에서’ 그분에 ‘의해’ 이루어지는 더 위대한 역사는 도외시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는가?’

<110-111쪽 중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잃은 양에게 다가가거나 교회를 세우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는 것이라고 배운 사람들은 힘든 시기에 탈선할 수밖에 없다. 수평적인 목적들은 심지어 잃은 양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필연적인 골짜기에서 복음의 열정을 지탱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수직적 교회는 성도들에게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고후 4:6)을 드러낼 기회를 찾으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고난 중에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목표다. 고난 속에서 움츠러들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를 찾아야 한다.

<139-140쪽 중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이기주의는 끝날 줄 모르고 있다. 솔직히 나도 관계나 개인적인 도움, 수입, 그리고 개인적인 일을 위한 자유 같은 측면에서 지나친 기대를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와 다른 목회자들의 이런 이기주의는 언제나 양떼에게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남들의 지적에 기꺼이 나 자신을 낮추고 복음을 위해 권리를 포기했을 때는 언제나 위에서 임하는 은혜를 맛보았다. 그러나 대게 타인의 지적 앞에서 이기주의는 회개로 이어지지 않고 잠시 숨만 고를 뿐이다. 이런 패턴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이기적인 목자를 죽여야 한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본을 따라야 한다. 그분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시다(요 10:11 참조).

<140쪽 중에서>
복음 전도를 하나님의 영광보다 중시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다. 이 한 가지 오류에서 수많은 오류가 파생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교회의 최우선사항이며 모든 교회는 인간의 의견이 아닌 순종만을 필요로 한다. 영광은 잃은 양 전도의 걸림돌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성경적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방법이다.

<148-149쪽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분의 임재를 떠나가게 만드는 행동들이 눈에 보인다면 단호히 맞설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라. 고집 센 양떼에게 당신이 타협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 주고 하나님이 차별을 경멸하신다는 점을 설명해 주라(약 2:1-7 참조). 하나님은 사람을 편애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편애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정확히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릴 수 있다.
분란이 전혀 없는 교회는 영광을 밀어 내면서까지 억지로 평화를 만들어 내는 교회일 가능성이 높다. 목회자가 치르는 대가를 모두가 이해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회자가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책망할 것은 책망해야 교회가 계속해서 복을 받고, 영광이 계속해서 내려온다. 당신의 교회는 어떤가? 성도들이 위선적으로 사는데도 지도자들이 꾸짖거나 회개를 촉구하지 않는가? 그들이 묵인을 통해 거짓 평화를 만들어 냈는가? 영광이 떠나가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지 잘 살펴보라. 엘리의 오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보다 제 자식들의 감정과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었다. 엘리는 수직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잃는 것보다 수평적 측면에서 타격을 입는 것을 더 걱정했다. 우리도 소통을 위해 초월을 버리면 이런 피상적인 예배로 흐를 수밖에 없다.

<212쪽 중에서>
설교자가 성경을 전하기 전에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성경에 ‘관한’ 설교, 그러니까 설교자가 가끔씩 성경적인 주제를 꺼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 구절을 읽되 그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설교도 성경을 전하는 게 전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성경 자체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주제를 다룰 때는 어디까지나 그 주제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전해야 한다. 성경적인 설교는 성경 구절의 핵심 내용을 ‘성경으로’ 자세히 풀어 주는 것, 즉 성경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이런 설교를 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진정으로 듣고 영광을 경험할 수 있다.

<233-234쪽 중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 내 무미건조한 설교에 생기를 불어넣어 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한 시간이 참으로 많았다. 이번 주에야말로 모든 탑이 무너질 거라는 두려움과 몇 해를 싸워 왔는지 모른다. 때로는 설교 중에도 원수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쓸모없는 짓이야. 시간낭비야. 너는 바보처럼 지루한 말만 늘어놓고 있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잖아. 아무도 듣지 않잖아.’ ‘당장 내려가. 그냥 모두를 저주하고 나가 버려. 이런 어리석은 짓을 언제까지 할 거야?’ 이때 원수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계속해서 전진할 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설교하는 이유를 되새기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기 위해 설교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 설교의 근본적인 ‘이유’다. 이 이유를 이해할 때 설교자는 설교의 소명을 평생 온전히 감당할 수 있고 성도들은 설교자를 헌신적으로 도울 수 있다.

<311쪽 중에서>
기도의 온도를 뜨겁게 유지하는 것은 교회 기둥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아무리 기도의 고삐를 바짝 조여도 몇 달만 방심하면 또다시 흐트러진 상태로 돌아간다. 우리는 틈만 나면 온 성도 앞에서 기도를 강조하고, 찬양 도중에 사람들이 제단 앞으로 나와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예배가 끝날 때마다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기 위해 앞에 일렬로 서고,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에서 주일 오후 1시까지 집중적인 기도 시간을 갖는다. 이 외에도 우리는 수만 가지 방법으로 기도를 강조한다. 기도에 관한 설교도 자주 한다. 5일 철야 기도회, 혹은 24시간 특별 금식 기도회를 마친 후 교회 전체가 모여 축하하는 식의 특별 순서도 자주 갖는다. 우리는 거의 8천 명에 달하는 소그룹 회원들을 남녀 따로 기도 그룹들로 나눠 매주 회원들의 집에서 모이게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기도가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를 담보해 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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