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을 담아내는 위대한 숫자 ‘스물여덟’

땅바닥에 쓴 똘복이의 한글은 곧 그의 마음

세종을 원수로 여기고 암살하고자 젊음을 바쳐온 똘복이였다. 그 똘복이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을 향해 힐난한다. 양반들의 세상과 다른 평민들의 세상을 말한다. 그리고 그깟 글자가 무에 그리 대수냐고 쏘아붙인다.
“그 글자가 나오면 백성들이 정말 글자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양반님들이야 공부가 일이시니까 오 만 자나 되는 한자를 줄줄 외우시겠지요? 네, 저도 한 천 자쯤은 압니다. 그런데 제가 그거 배우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십니까? 제가 머리가 나빠서요?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그게 백성들의 삶입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아침에 동 트기 전에 일어나서 해질 때까지 일만 해야 되는데 언제 글자를 배운다 이 말입니까?”

광평대군도 지지 않을 기세다.
“아직 해보지도 않지 않았느냐. 할 수 있다.”
“오 만 자 중에 천 자 배우는 데도 그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배워요? 도대체 전하의 글자는 몇 자나 됩니까? 오천 자요? 아니면 삼천 자? 아니면 천 자요?”
“스물여덟 자.”
“천스물여덟 자요?”
“아니 그냥 스물여덟 자.”
“그게 말이 됩니까? 이 헛간 안에 있는 물건만도 스물여덟 개는 넘습니다. 그런데 글자는 천하를 다 담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고작 스물여덟 자로 만 가지 이만 가지 다 담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 가지 이만 가지가 아니다. 십만 가지 백만 가지도 담을 수 있다.”

똘복이의 어릴 적 사랑 다미는 치마를 찢는다. 그리고 스물여덟 글자를 쓴다. 그리고 말한다.
“이거야. 이것만 외우면 돼. 이 스물여덟 자만 알면 한자로 쓰지 못하는 우리 이름, 오라버니가 잘 하는 욕, 사투리, 우리 마음, 바람소리, 새소리, 이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다 담을 수 있어.”

대사가 흐르는 동안 갑자기 먹먹해졌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인데, 내 나라 글자의 수 ‘스물여덟’의 위대함을 비로소 깨달아서였다. 더 많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글자라면 당연히 세상에 존재하는 천하만물의 숫자만큼 되어야 한다는 흔들리지 않는 생각을 깨어버리고, 스물여덟 글자로써 모든 말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그 위대한 깨달음, 거기다가 동 트기 전에 일어나 해질 때까지 일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백성들을 위해, 그들이 글자를 깨치기 위해선 절대 넘어선 안 될 스물여덟이란 숫자의 의미, 나는 그걸 몰랐다.

그렇다면 한글은 한 군주가 백성을 제 피붙이처럼 사랑한, 완전한 성군의 결정체였다. 그랬다. 똘복이는 반나절 만에 한글을 깨쳤다. 세종의 한글을 깨친 첫 백성이었다. 똘복이는 쓰면서도 놀란다.
“이게 정말 가능한 거야?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건가?”

땅바닥에 쓴 똘복이의 한글은 곧 똘복이의 마음이다.
아부지 똘복이 걸상 다미…. 다미가 똘복이가 쓴 글씨를 읽는다. 놀랍다.
“지금 내가 쓴 걸 읽은 거야?”

나는 다미를 만났다 아부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그 마음이 똘복이의 마음이다. 한자로 아무리 그려내더라도 다 담을 수 없는 똘복이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그는 세종의 한글에 담았다. 마음,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 그 보고 싶음을 고스란히 담아준 글자다.
“이게 맞아? 진짜 이게 맞아?”

똘복이가 다미를 향하여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읽어낸다. 이게 내 마음이지? 정말 내 마음이 글자가 된 거지? 그렇게 말하는 똘복이의 눈빛을 본다.

광화문이 멀지 않다면 달려가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라도 소리를 치고 싶다. 고맙다고, 애쓰셨다고, 사랑한다고….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늘 인문학을 기술과 더불어 공부했다. 인문학과 테크놀로지의 교차점에서 그의 ‘애플’은 탄생했다. 무엇보다 세종의 ‘업적’들이 그러하였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밑받침을 이루었다.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체제를 옹호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들과 싸웠다. 거기 첨단의 테크놀로지가 가미되었다.

그리고 훈민정음 곧 한글은 결정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글, 유일한 글, 그 글이 한글인 까닭이다. 1446년, 세종 28년, 우리 민족은 비로소 눈을 떴다.

박명철 <CCC편지> <기독신문> <뉴스엔조이> <기독교사상> <아름다운동행>에서 기자 또는 편집장을 지냈으며, 단행본 <사람의 향기 신앙의 향기> <세상에는 이런 주일학교도 있다> 등을 펴냈다. CBS 라디오를 통해 신간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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