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리얼다큐에서 포르노로

영화로딴죽걸기(1) 거부하거나 살아남거나 ‘배틀로얄’

요새 대한민국에서는 학교폭력이 문제래. 매일 같이. 어디 잔혹 스릴러 영화의 소재만큼이나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들이 올라와. 나름 고어. 퇴폐. 유의 장르를 섭렵한 나라도 소름이 끼칠 정도야. 동네에 어슬렁거리는. 하는 행동이라고는 모두가 어설프기 짝이 없는. 꼬맹이들이 그런 짓들을 했대. 애들 돈 뺏는 건 양반이야. 요새 같아서는 폭력에도 못 껴. 물리폭력이나 정신폭력은 기본사양이고. 와이파이. 소액결제를 이용한 스마트한 삥뜯음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일진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뿐이지.

여기에 무궁무진한 옵션들이 많이 붙어. 무슨 옵션들인지는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거야. 그냥 걔네들 포르노. 고어. 영화 찍고 있다고 하면 돼. 대신 카메라. 대본. 리허설. 편집. 이런 거 없어. 100프로 실시간 리얼 다큐멘터리야. 하는 짓들 보면. 정말 링에서처럼 브라운관에 갇힌 목 꺾인 사다코가 현실로 기어 나오는 현장을 목격한 기분이야. 어느 시대나 있었던 일인데. 심지어 우리 모두가 체험했던 일인데. 지금은 굉장히 심각해. 난리야. 여기저기서 죽어나간대. 근데 가해자는 반성도 없대. 누구는 슬퍼하고. 누구는 은폐하고. 누구는 관심 없고. 누구는 분노하고. 반응도 가지각색이야.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는 점점 아프고. 혼돈스러워져. 이건 뭐. 굉장히 포스트모던한. 또 아방가르드한 상황이야. 왜냐하면. 어떤 사태를 분석하려면 뭔가 단서가 있어야지. 뭔가 생각을 치고 들어갈 입구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이건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어. 일단. 학교라는 곳에서. 폭력이 일어났대. 뭔가 잘못된 일이 벌어 진거야. 그러니까 해결을 해야지. 해결을 하려면 원인을 찾아야 해. 그렇다면 원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 부러진 건 없어. 정말이야. 뭐든 하나 생각해봐. 담기에는 그릇이 작아. 가정불화. 윤리교육의 부재. 핵가족 시대의 부작용. 현 사회구조의 한계. 너무 많고 광범위해. 아마 다 합치면 조금은 원인분석이 될지 몰라.

해결책은 안 나와. 그냥 종말이야. 말세고. 지옥이지. 답답한 마음에선지 이런 내용의 신문기사도 있더라. 학교폭력 문제는 다각적이고 복합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적확한 표현이야. 다르게 표현하면 이런 말이야. 한마디로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이거야. 폭력은 폭력이니까. 가해자가 있을 것이고. 반대로 피해자가 있을 거야. 가해자 쪽에서 접근하면. 이건 뭐 무한한 윤리적 분노의 대상들이야. 근데 여기에 가정문제. 사회문제. 교육문제 등등이 덧붙여지면. 한숨 나오고. 답 안 나와. 걔네도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게 생각하다가도 끓어오는 분노는 참을 수 없고.

피해자쪽에서 접근해 보면 더욱 복잡해지지. 그들에게 무관심했던 학교나 정부. 일가족들에게 화도 나지만. 그들 탓만 할 수도 없잖아. 학교 교사도 왕따 시키는 애들인데. 교권이란 말이 아직도 쓰이는지 긴가민가한 시대인데. 교사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것도 무책임하잖아. 또 요새 살기 좀 힘들어. 숨만 쉬고 맞벌이해도 사람답게 살기 힘든데. 자녀한테 무관심했다고 욕하기에는 뭔가 꺼림직 하잖아. 남는 건 국가고. 정부인데. 이놈의 빌어먹을 정부하고. 욕하고 흘러가는 게 우리 인생이지. 학교폭력에 대해 이해하고. 해결책을 내 놓기란 어려워. 꼬맹이들이 다른 한 꼬맹이를 조직적으로 괴롭혔어. 당한 꼬맹이는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을 했어. 학교폭력의 내러티브는 거의 이런 거야. 단순해. 근데 들여다보면. 이건 뭐. 21세기형 실시간 리얼 아방가르드 다큐멘터리야. 어려워.

<방황하는 칼날>이나 <고백> 같은 영화를 보면 미성년 형사처벌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 어느 가해 학생이 이런 말을 했대. 어차피 미성년자라 처벌 받지는 않는다고. 대신 피해 학생의 아버지에게 칼을 맞거나. 어머니에게 에이즈 감염 혈액이 혼합된 우유를 선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소름 돋게 영악한. 치를 떨게 만드는 무개념 현실 인식임은 확실해.

이창동의 <시>를 보면 한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중학생 꼬맹이가 나와. 어떻게 보면 이 꼬맹이가 더 대단해. 지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아예 관심도 없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고. 돌아와 티비를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고 있지. 걔는 왜 다른 사람들이 난리치는지 의아해 했을걸. 학교폭력을 전면적 소재로 삼았다는 <불량써클>이나 <뚝방전설> 같은 영화는 이야기 할 필요도 없고. 그냥 미화야. 재미고. 그런 것에 재미를 느낀다는 게 안타깝지만. 모든 영화가 현실주의일 필요는 없으니까.

반면. <파수꾼>이나.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나름 현실적인 시선이 있어. 논리로는 이해가 안 되니까. 그냥 보여주는 거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근데 너무 멜랑꼴리해. 뭉클한 건 있는데. 과연 이것이 폭력의 문제를 제대로 담고 있는가. 의문은 들어. 다들 좋은데. 무언가. 때로는 편파적이고. 때로는 말 같지도 않고. 때로는 감성적이야. 현실이란 게 그렇지 않은데. 현실은 그냥 뭐 <동물의 세계> 수준이고. 지옥이 있다면 딱 이 정도 아닐까 싶은 정돈데. 말이 바른 말이지. 걔네들의 상황을 잘 생각해봐. 가해자나 피해자나. 그 주변인들. 얼마나 더러운 심정이겠어. 걔네들 눈에는 이 세상이 그냥 지옥처럼 보이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까. 딱 떠오르는 영화가 있더라고. 진정으로 학교폭력이란 무엇인지. 확실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야. 걸작이야. 모든 문제를 다 담아 보여줘. 그리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딱 말해줘. 한마디로 완성형이지.

학교폭력에 연루된 모든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들에게 진심으로 권하고 싶어. 그건 바로 <배틀로얄>이야. 그냥 이거 하나면 돼.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에 정식개봉 된 영화인데. 기타노 다케시 라던가. 후지와라 타츠야 같은 익숙한 사람들도 나와. 만화로도 있어. 영화는 조금 야하고. 조금 잔인해. 근데 만화는 많이 야하고. 많이 잔인하지. 이 영화가 학교폭력의 문제를 보여주고. 동시에 해결책까지 제시해주고 있다고 믿어. 영화의 설정은 참신하기도 하고. 좀 말도 안 되기도 하고 그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에로틱 하드고어 액션 스릴러물로는 시간 죽이기 좋지. 사실 이 영화가 굉장히 깊은 의미를 스스로 발현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자면 낯 뜨겁지.

▲ 배틀로얄

그냥 이 영화가 위대한 점은 말이야. 어떤 형식으로 만들든. 혹은 아무리 형편없이 만들든. 소재가 너무 좋아. 그 자체로 그냥 먹고 들어가는 거야. 내러티브는 간단해. 가까운 미래. 한 학급의 학생들이 외딴섬에 놓여져. 개목걸이 같은 게 채워져서 말이야. 그리곤 어제까지 학생들에게 왕따 취급당하던 선생이 무소불위의 심사자가 돼서 아이들에게 게임의 룰을 말해줘. 72시간 안에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대. 대단하지 않아. 학교 선생을 왕따하는 얘들이나. 그렇다고 제자들을 배틀로얄에 집어넣고. 대단한 권력이라도 얻은 듯 떠드는 선생이나. 여하튼 자세한 줄거리는 영화를 그냥 직접 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어쨌든 어제까지 친구였던. 혹은 그냥 같은 반 학생이었던 꼬맹이들은.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서로 죽이기 시작해.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그 학생들이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 지야.

어떤 놈은 좋은 머리를 무기 삼아. 어떤 놈은 섹시한 몸을 무기 삼아. 어떤 놈은 강한 육체를 무기 삼아. 하여튼 별의 별 놈들이. 자기들 생겨 먹은 대로 살아남으려하고. 자기들 하고 똑같이 생겨 먹은 무기를 이용해서 남들을 죽여. 결국 끝내. 살아남는 것은 어떻게든 우리 서로 죽이지 말고. 믿음을 갖고. 합심을 해서. 다 같이 살아보자고 외친 주인공 남녀지만. 진부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지만. 이게 말 같지 않은 영화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잘 들여다봐 바. 이 모든 요소요소들이 요새 들려오는 이야기들하고 뭐가 달라. 이게 이 영화의 미덕이야. 철학 없어. 감성 없어. 관찰 없어. 의미 없어. 감독은 다 넣으려고 했는데. 실패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연출력이 떨어져도 상관없고. 소재 자체가 이런 것들 다 필요 없게 만들어버려. 특별히 진지할 필요도 없고. 멜랑꼴리할 필요도 없다니까. 그냥 살려고 쳐 죽이고. 뭐 그냥 아우성 거리는 거야. 그게 배틀로얄이고. 거기서 우리의 현실이 보여. 감성이고. 논리고. 이해고. 분석이고. 관찰이고. 이런 것은 현실이랑 안 맞아. 여기는 지옥이야. 배틀로얄이라고.

▲ 배틀로얄

그래. 여기는 배틀로얄이야. 살기 위한 전쟁터라고. 이제 더 이상 학교는 안전지대가 아니야. 바이러스가 거기까지 퍼진 거야. 우리가 학교폭력에 광분하는 건. 그러한 폭력의 양태가 새로운 것이어서가 아니야. 이미 우리에게 있는데. 그것이 학교라는. 학교는 그나마 우리 사회의 순수함과 순결성의 토양이라고 믿었던 곳인데. 그 성지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에 대한 분노라고. 그러니까 다시 말해. 학교폭력에 대한 분노는. 폭력이라는 거대한 악의 축이 성역의 마지노선을 짓밟고 들어간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학교폭력은 절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배틀로얄의 영화적 설정이 결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직접적으로 사람 머리에 칼을 쑤셔 넣지 않을 뿐이야. 배틀로얄의 해결책은 의외로 영화 초반부에 나와. 배틀로얄의 룰이 공표되자. 모두가 겁에 질려 할 말을 잃어. 그 때 무명의 여학생이 자신은 배틀로얄의 법을 거부한다고 말해. 물론 본보기로. 어제까지 담임선생님 이었던 사람에게 칼 맞아 죽지만. 어쩜 이것도 현실하고 똑같은지. 우리의 삶과 현실이 배틀로얄과 다르지 않다면. 동시에 그것이 싫다면.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의외로 쉬어. 그냥 배틀로얄의 룰을 따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배틀로얄 룰의 본질은 이거야. 오직 한 사람만 살 수 있어. 예외는 없어. 그리고 나머지는 다 죽어야 해.

▲ 배틀로얄

이게 다야. 영화에서 이 룰을 거부한 여학생은 바로 칼 맞고 죽었어. 그렇다면 현실은. 어쨌든 우리는 배틀로얄 속에 살고 있어. 학교폭력의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 역시 나와 같은 배틀로얄의 피해자야. 걔네 하나하나에 분노하고 동정할 만큼 당신의 현실도 낙관적이지 않아. 결국 영화에서는 배틀로얄의 룰을 거부하고. 함께 살기를 결심한 주인공들이 끝내는 살아남아.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룰에 충실히 살며. 몇 시간이나마 생명연장의 혜택을 누리는 것들보다는. 결말이 아주 조금은 아름다울 것 같기는 해.
이규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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