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뮤지컬 ‘빨래’를 권하는 이유

추민주라는 무명의 작가가 졸업 작품으로 구상한 뮤지컬 ‘빨래’는, 달동네에 사는 몽골 출신 불법 체류 청년과 서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여직원과의 사랑과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7년전 ‘빨래’가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작품에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소재도 특별하지 않거니와 뮤지컬이라면 기대할 만한 음악이나 화려한 춤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빨래’가 11월 11일, 무려 2천 회 공연을 맞는다. 주목되는 점은 2천 회 기념 공연 무대에 서는 배우가 일본 배우라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억지로 만든 한류가 아니라, 작품성으로 이루어 낸 진정한 감동의 한류를 이룬 작품이 바로 뮤지컬 ‘빨래’다.

▲ 두 시간 동안 이어진 뮤지컬 ‘빨래’를 보면서 현실의 부조리와 억압 가운데 신음하고 힘들어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극중 인물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더불어 꿈꿔 왔던 화려한 삶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박수를 치게 되는 진정한 ‘힐링’이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명랑시어터 수박

소리 없이 강한 뮤지컬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이 작품이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가수이자 배우인 임창정의 역할이 컸다. 작품에 반한 임창정이 전격적으로 소극장 뮤지컬에 출연할 것을 결정했으나, 제작진은 임창정 같은 스타에게 출연료를 지급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이에 임 씨는 자기 몫의 출연료를 받지 않기로 했고, 다른 출연자들도 이에 동참해 출연료를 낮춰가며 지난 2007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이라는 제법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이 때 임 씨와 함께 주인공 역할로 더블 캐스팅 된 배우가 현재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손꼽히는 홍광호였다. 온 몸으로 열연했던 그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아는 사람만 알던 소극장 뮤지컬은 서서히 ‘국민 뮤지컬’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몽골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인 솔롱고(원래 이름은 ‘무지개’라는 뜻의 ‘솔롱고스’인데 한국 사람들처럼 세 글자로 불리우게 된다)는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서울 달동네 옥탑방에서 필리핀 친구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솔롱고의 이웃집에 서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서나영이 이사를 오게 된다. 옥상에서 빨래를 널면서 서로 알게 된 두 사람이 서로의 힘든 사정을 함께 나누면서 교제하게 된다는 것이 줄기가 되는 스토리이며, 이들을 둘러싸고 자취집 주인과 세입자들, 서점 직원들의 삶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뮤지컬은 전 출연자가 함께 부르는 ‘서울살이 어떤가요’라는 노래로 시작된다. 나름의 꿈을 안고 찾아온 서울,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비정하고 냉혹하다.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암울한 현실을 견디는 주인공들의 삶은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삶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관객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극중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동화 된다.

그렇다면 ‘빨래’란 어떤 의미일까? 극중 배우들은 빨래를 하면서 삶의 애환들을 풀어낸다. 여주인공 나영이가 부르는 ‘빨래’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를 인용해 본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특히 나영이가 사는 자취집의 주인 할머니의 사연은 기구하기 그지없다. 자꾸만 바람을 피우는 서방 때문에 홧김에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 아이가 사지가 없는 장애인이어서 40년 동안 기저귀를 갈며 돌봐왔다.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 그렇게 속 썩이던 영감도 말년에 중풍으로 쓰러져 병수발을 해야만 했다. 인천에 사는 아들도 평소에는 외면하더니만 사업이 실패하고 나서야 찾아온다. 주인 할머니는 셋방에서 받는 약간의 월세와 길에서 폐지를 모아서 버는 돈으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 간다. 할머니에게 빨래란 마음에 담아 둘 수 없는 삶의 시름과 고통들을 털어내는 일종의 ‘살풀이’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나영이가 부당하게 해고된 선배 편에 서서 사장과 맞서 싸우다가 창고로 발령이 나고 회식 후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는 대목이다.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영이가 처절하게 부르짖는 소리에 전율이 느껴졌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을 보면서 현실의 부조리와 억압 가운데 신음하고 힘들어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극중 인물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더불어 꿈꿔 왔던 화려한 삶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박수를 치게 되는 진정한 ‘힐링’이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

▲ 뮤지컬 ‘빨래’를 보면서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면 절망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으로 똘똘 뭉친 폐쇄적이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군집일 뿐이다.

뮤지컬 ‘빨래’를 보면서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 불리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분이셨다. 병자들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들에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힘써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셨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이 잘 해서 축복으로 주어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보다 못한 형편의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녀교육이나 재테크, 승진과 출세 같은 삶의 전 영역에서 조금의 손해조차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면 절망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으로 똘똘 뭉친 폐쇄적이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군집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영광을 내려놓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치고 죄인들의 친구로 사시다가 결국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분 아닌가? 그런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살아오셨던 삶의 방향과 전혀 다른 ‘성공과 번영의 길’ 만을 추구하게 된 것이 오늘날 기독교가 이처럼 욕을 먹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다들 아프다. 다들 고통스럽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는 자리가 바로 ‘성도’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다.

입장료가 십 만원이 훌쩍 넘는 초호화 버라이어티 공연들이 즐비한 가운데, 뮤지컬 ‘빨래’는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든지 가서 만날 수 있는 마음 편한 옛 친구와 같은 느낌으로 맞아준다. 그래서 더더욱 권하게 되는 작품이다.

김영훈 제자들교회 집사. 독서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교회에서 USB(Use Self Brain)라는 독서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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