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일깨우는 뮤지컬 ‘우리 동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Shaw, George Bernard)의 묘비명이다.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탄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평론가였던 그가 위트를 섞어 붙인 문장이지만, 한 평생을 누군가의 그림자 아래에서 한숨 쉬면서 살아가는 필부(匹夫)들에게는 한(恨) 서린 말로 읽혀진다. 설령 영화와 드라마 속의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 당해야 하는 이 지긋지긋한 인생에 단 한 순간이라도 빛이 들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답답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말 그대로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우리 사회도 어느덧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라 전체에 거대한 유리천장이 덮여 있고, 바늘 구멍만한 틈으로 겨우 한 두 사람 힘겹게 비집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이라는 것을 가져 보라고 악다구니를 써댄다. 현실은 2백만 참가자 중에 단 한 사람의 슈퍼스타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프로그램과는 달리 이 사회의 슈퍼스타는 미리 정해져 있다.

너무 비관적인가? 성공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없이 어떻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 뮤지컬 ‘맨 오브 라만챠’에서 노새 끌이 꾼들에게 유린당한 알돈자가 부르짖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태어난 죄’일까?

▲ ‘우리 동네’는 우리네 삶을 이루고 있는 작은 일상들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해 주는 작품으로, 2006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이후 2011년까지 일곱 시즌에 걸쳐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는 소극장 뮤지컬이다. 사진은 ‘우리 동네’ 공식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미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손튼 와일더(Thornton Niven Wilder)의 ‘Our Town’(1938)을 아직까지 시골의 정이 남아 있는 1980년 대 파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바꾼 뮤지컬 ‘우리 동네’는 우리네 삶을 이루고 있는 작은 일상들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해 주는 작품으로, 2006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이후 2011년까지 일곱 시즌에 걸쳐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는 소극장 뮤지컬이다.

무대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소공녀 세라가 ‘그런 셈 치고’ 살듯이, 관객들은 ‘있는 셈 치고’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이끌려서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된다. 단순한 눈속임이라기보다는 화려한 무대장치에 시선을 빼앗겨서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설정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강조하는 ‘마임(mime)’의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공연은 상우와 선영 두 주인공 가정의 일상과 청춘남녀의 만남과 결혼을 그린 1막과 출산 과정에서 죽게 된 선영이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막의 신나던 무대가 쉬는 시간 후에 사뭇 달라지는 것이 무척이나 당황스럽지만, 마음을 진정하고 공연에 집중하다 보면 두 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무대가 평생동안 남게 될 감동과 전율을 줄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2막에서 선영은 과거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보게 되지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죽은 사람의 아픔만을 절감하게 된다. ‘아름다운 삶의 시간 2’라는 노래의 가사를 인용해 본다.

“안녕 정든 이 세상 안녕 우리 동네여
엄마 아빠도 안녕 이제 마지막이야
뒤뜰에 해바라기 맛있는 음식 따뜻한 커피
째깍대는 시계도 모두 안녕 자고 깨는 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 누구도 알지 못 하네
내 살아온 세상이여 안녕 안녕 모두 안녕 영원히”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소포클레스)라는 유명한 금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며 그런 내 삶을 이루는 일상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쓸모없는 것을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 똥’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에서, 자신은 아무 데도 쓸모 없는 더러운 똥일 뿐이라고 슬퍼하는 강아지 똥에게 거름덩이가 해 준 말이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전 15:10)
나를 지으시고 부르셨으며 보내신 그 분께서 나를 귀하다 하시는데, 도대체 어느 누가, 또 무엇이 나를 폄하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맨질맨질한 돌맹이 다섯 개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공깃돌’일 뿐이겠지만, 만군의 하나님 이름으로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는 다윗의 손에 들려진 ‘물맷돌’이 될 때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절망 가득한 세상 속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다.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나에게 필요하다. 그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 하시고 나와 함께 하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뮤지컬 ‘우리 동네’만의 매력 중 하나는, 극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캐릭터를 세심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 뮤지컬들이 주연과 조연, 그리고 앙상블 배우들로 철저하게 구분되는 것과 사뭇 다르다. 모든 배우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춘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젊은 시절에는 천재 음악가로 각광을 받다가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져서 폐인처럼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술을 마시고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함부로 사람들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인 그를, 마을 사람들은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아들을 사랑하고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봐 준다.

성공하여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몫이 있듯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변방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몫이 있다.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표현처럼, 인간이란 딱 자기가 겪어 본 만큼만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아파 봤기에, 은혜 받았기에 평가하고 비난하는 세상에서 상처 받고 버림받은 이들을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우리 동네’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소중한 작품이다. 자주 올라오는 공연이 아닌 만큼 다음에 공연을 하게 되면 꼭 챙겨 봐야만 할 ‘완소 머스트 해브 뮤지컬’이다.

김영훈 제자들교회 집사. 독서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교회에서 USB(Use Self Brain)라는 독서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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