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세주, 이제야 우린 만났군요”

‘창작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마리아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특징은 한 마디로 ‘무기력함’이다. 성도로서의 아무런 존재가치 없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흔적 없이 살아간다. 물론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성도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의 험난한 삶이기에 힘들고 고단한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의 현실이 과거보다 주님을 믿기가 훨씬 어려운 시대여서 이토록 무력한 것일까? 주님을 믿기 좋았던 시대란 아무 때도 없었다.

오히려 성경과 역사 속 선진들의 믿음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고 살다가, 돌짝 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쳐서 결국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믿음도 아니면서 너무 일찍 스스로를 대단한 신앙인인 양 의제(擬制)하고 불굴의 신앙인으로 비약시킨 결과는 참혹하다. 고난을 당해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함부로 자신의 잣대로 정죄를 하고, 정작 자기 자신이 고난 당할 때에는 버틸 힘이 없어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것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된 삶을 통한 체험으로 알아가고 굳건해지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자신의 손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에 손가락을 직접 넣어 보고, 믿지 못하는 자가 아닌 믿는 자가 되라고 권고하셨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사야 7장의 아하스 왕과 같이 살아간다.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침략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이 두려워하던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구원의 말씀을 전하고 표적을 구하라고 하자 아무런 표적도 구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표적이 없어도 믿겠다는 대단한 신앙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어떠한 표적이 보이더라도 믿지 못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실상의 불신앙이었던 것이다.

회심을 통해 인격적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떠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생략하고 마치 구약 시대의 축복처럼 세상의 부귀 영화로 복음의 영광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치 싸구려 유사품으로 대체하려는 것과 같다.

2003년에 초연된 후 2012년 연말에 10주년을 맞은 창작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를 통해 자신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만남으로써 완전히 변화된 한 여인을 만날 수 있다.

▲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10주년 기념 포스터 ⓒ함박우슴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는 2003년에 소극장 뮤지컬로 공연을 시작해 탄탄한 작품성과 강효성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장기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2006년에는 한국 및 비영어권 뮤지컬 최초로 뉴욕 뮤지컬 페스티벌(NY Musical Theatre Festival)에 공식 초청되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마리아 마리아>에는 강효성, 김선영, 소냐 등 최고의 여배우들과 박완규, 김종서, 플라워 고유진, K2 김성면 등 실력파 가수들의 열연으로 처음에는 단출한 소극장 뮤지컬로 시작하여 지금은 예술의 전당과 국립중앙박물관 공연관에서 상연하는 대작이 되었다. 특히 2004년부터는 60년 넘게 공연무대를 지켜온 한국 뮤지컬 계의 대모 윤복희 선생이 계속 출연하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점점 늘어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제사장들은 마리아라는 이름의 창녀를 이용하여 예수를 제거하려 든다. 예수님을 유혹하여 동침하면 그녀가 사랑하는 안티파스 장군과 함께 로마로 보내주겠다는 그럴 듯한 제안에 넘어간 마리아는, 매우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유혹하려 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한편, 예수님의 제자들은 백성을 억압하는 로마의 지배로부터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바랬으나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언행에 실망한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이 성전을 뒤엎는 사건이 일어나자, 대제사장은 더 이상 예수님을 놔둘 수 없어 바리새인을 다그치고, 바리새인은 마리아를 협박하여 예수님을 유혹하는 일을 재차 시도하지만 역시 실패한다. 마리아의 이용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바리새인은 마리아를 죽음에 이르도록 하나, 예수님께서 나서서 마리아를 살려 준다. (1막)

마리아는 자신을 살려 준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고, 예수님은 이를 만류하는 제자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마리아의 집으로 간다. 예수님이 창녀 집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펴지게 되자, 절망감에 사로잡힌 마리아는 환각 상태에 빠져 든다. 유년 시절 고향 막달라에서 로마 군인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고통스러운 순간이 되살아나서 의식이 분열되는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은 마리아를 찾아와 깊은 상처로부터 구원해 준다. 제자들에게조차 외면을 당하고 홀로 재판 받고 십자가형에 처한 예수님을 마리아는 홀로 끝까지 지켜본다. (2막)

막달라 마리아는 과연 누구인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1970년작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 슈퍼스타>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신 예수님의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위로하는 연인으로, 댄 브라운은 2003년에 출간되어 3년 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던 <다빈치 코드>에서 예수님과 부부 사이였다고 설정했다. 얼마 전에는 ‘예수님의 아내’라는 표현이 나오는 2세기의 그리스어 기록을 4세기에 콥트어로 옮겨 쓴 파피루스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설명된 단 한 가지 사실은 ‘일곱 귀신 들렸다가 치유함 받은 여인’이라는 한 문장뿐이다(막 16:9).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끝까지 따라갔던 여인 중 한 사람이었고(마 27:56, 요 19:25),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었다(눅 23:55, 요 20:14). 혹자들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죄 사함을 받은 여인과 동일인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가서 머무를 곳이 없어 떠돌던 중 집이 청소되고 수리 된 채 비어있는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마 12:43~45). 주지하다시피 성경에서 일곱이란 완전 수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에게 완전히 장악되었다가 주님으로 인해 놓임 받은 여인이었던 것이다.

▲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이러한 성경이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에 가장 근접한 예술작품이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 도나텔로(Donatello)의 ‘막달라 마리아’라는 목각상으로, 뭇 남성들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창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귀신들에 의해 시달려서 완전히 초췌해진 몰골을 보여 준다.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에는 마리아가 마치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참회 기도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서는 작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일곱 귀신이 막달라 마리아의 음란으로 드러났고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 이야기로 연결한다. 마리아를 돌로 치려는 사람들 앞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면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보고, 마리아는 자신이 평생 기다려 온 분이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게 된다. 이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가 ‘당신이었군요’라는 곡이다.

당신이었군요
찢어진 내 몸 위해 눈물 흘린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피 흘리는 나의 상처 닦아준 사람이

내가 공허한 어둠 속을 헤맬 때
날 향해 있었던 눈길
내 영혼이 죽어가고 있을 때
날 위해 기도하고 계셨군요

당신이었군요
찢어진 내 몸 위해 눈물 흘린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피 흘리는 나의 상처 닦아준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긴 어둠 속을 빠져 나와
이제야 우린 만났군요

▲ 마치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참회 기도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전시돼 있는 마리아의 목각상. ⓒsuperstock

모든 오해와 위협을 무릅쓰고 한 창녀를 찾아오신 예수님과 그를 통해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여인의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의 파급효과는 매우 컸다. 이 작품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뮤지컬 배우 강효성은 인터뷰에서 8년 동안 마리아 역을 맡아오던 가운데 가장 큰 감동을 받았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자살을 결심하고 생의 마지막으로 본 공연을 통해 창녀의 삶이 이처럼 변화되었다면 자신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돌이켰다는 이의 메일을 받은 것이다. 주님께서는 절망에 사로잡혀 스스로조차 포기한 인생을 찾아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2천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의 한 여관 마구간에서 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활의 능력을 힘입지 못한 사람은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고전 15:19)일 뿐이다. 삶 속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다면 과연 나는 주님의 부활 생명이 내 속에서 역사하며, 나는 늘 주님과 연합되어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야만 한다.

오직 중심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인격이신 주님을 만나는 사람만이 완전히 변한다.

“예수님이 신뢰하기 힘든 어리버리한 제자들을 겁 없는 전도자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셨다는 사실,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열한 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맹세하며 순교자의 무덤으로 갔다는 사실, 이 소수의 증인들이 먼저는 예루살렘에서의 격렬한 반대와 로마에서의 핍박을 극복할 만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사실. 이 놀라운 일련의 변화들이야말로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다. 겁 많고 믿을 수 없었던 자들에게 일어난 이 칼날 같은 변화를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 필립 얀시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나의 구세주를 만나야만 한다. 주님 손의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에 직접 손가락을 넣음으로써 나의 모든 생활 속에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해야만 한다. 그리할 때 ‘리얼 크리스천’(Real Chritain)으로의 존재 혁명이 일어나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부활의 능력으로 늘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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