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진정한 성도의 본분을 말하다

항아리 속에 게 한 마리가 있으면 자신의 힘 있는 집게발을 사용하여 어렵지 않게 빠져 나온다. 하지만 서너 마리가 있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먼저 한 마리가 올라가면 아래에 있던 다른 놈이 집게발로 뒷다리를 잡아 끌어내려서 결국 한 마리도 항아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만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관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네 삶에 있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실패와 절망에 빠진 나를 격려하고 힘을 주는 존재들이기보다는,  보잘것없는 작은 성취와 장점조차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사갈시하는 그야말로 ‘가시 같은 이웃’이 대부분이다.

거룩한 무리, ‘성도’의 삶

그렇다면 ‘거룩한 무리’라는 의미인 ‘성도’들은 어떠한가? 찢기고 상한 사람들과 세상에 다리가 되기는커녕, 시기와 질투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분오열되는 교회를 도리어 세상이 걱정을 해 주는 형편이다.

너무나도 인간을 잘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서로 사랑하라’는 오직 한 가지 당부를 하셨다. 사도 바울 또한 우리에게 산을 옮길 만한 믿음과 자신의 몸을 불사를 정도의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인물인 ‘돈키호테’를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The Man of La Mancha)를 통해 이 땅에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1605년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에 의해 쓰여진 명작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를 ‘극중극’이라는 형식으로 각색하여 스페인 풍의 경쾌하고 화려한 노래들로 꾸며서 1965년에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05년부터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받은 공연이 상연되기 시작했는데, 돈키호테(세르반테스) 역에 류정한, 김성기, 조승우, 정성화, 홍광호가, 알돈자(둘시네아) 역에 강효성, 이혜경, 김선영, 윤공주, 조정은 등 최고의 배우들이 열연하여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어두컴컴한 감옥에 세르반테스가 그의 시종과 함께 들어온다. 글을 쓰며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곧 종교재판에 회부될 예정이다. 죄수들은 즉석 재판을 열고 이상주의자 세르반테스를 회부한다. 유죄로 결정된다면 그가 쓴 작품은 불에 태워질 판이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공연을 펼치겠다고 제안하고, 제안이 인정되면서 돈키호테의 모험담이 감옥에서 펼쳐진다. 이때부터 무대 위에선 죄수들에 의해 세트가 세워지기도 하고 각종 잡동사니들이 소품과 의상으로 사용되면서 극중극이 펼쳐진다.

이후의 내용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의 내용과 유사하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향해 뛰어들고, 이발사의 세숫대야를 전설 속의 황금투구라고 우기면서 탈취하며, 여관 집 주인을 영주라 하며 기사 책봉을 주청하고, 여관에서 일하는 창녀 알돈자를 꿈 속에서 그리던 자신의 레이디 ‘둘시네아’(Dulcinea)라 호칭한다. 알돈자는 이러한 돈키호테의 언행을 미친 짓이라 치부하면서도, 난생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조금씩 바뀌어간다.

그러나 현실은 비정했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집시들에게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알돈자는 치료해 주고자 다친 노새몰이 꾼들을 방문했다가 몹쓸 짓을 당하고 만다. 알돈자는 돈키호테에게 왜 자신에게 꿈을 꾸게 만들었냐고 원망하고, 돈키호테는 거울의 기사들을 통해 자신은 기사가 아닌 한낱 무력한 영감일 뿐임을 절감하면서 정신을 잃는다. 병석의 키하나 노인에게 산초와 알돈자가 찾아와서 다시 힘을 내보지만 곧 숨을 거두고 만다. 극중 공연이 끝날 즈음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불려가는 세르반테스에게 죄수들은 격려를 보내면서 공연의 막이 내린다.

정숙한 여인도 아닌 자기에게 왜 이렇게 잘 대해주냐며 오히려 타박하는 알돈자에게 부르는 노래에는 그녀 마음 속에 있는 숙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돈키호테의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댈 꿈꿔왔소
나의 마음은 언제나 그댈 알고 있었소
기도로 노래로
볼 순 없어도 마음은 언제나 하나였소

둘시네아 둘시네아
하늘에서 내린 여인, 둘시네아
천사의 속삭임 같은 그대 이름
둘시네아 둘시네아

그대의 머릿결,
손을 뻗어서 탐함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것이 꿈인지
정녕 현실인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니

둘시네아 둘시네아
그댈 위해 살아왔네 둘시네아
그대 만남은 기다림 끝의 영광
둘시네아 둘시네아

– 돈키호테의 노래 <둘시네아>

<동영상 보기 ‘둘시네아’> : http://www.youtube.com/watch?v=mXcXZeqkZf0

알돈자는 어릴 적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채 여관에서 부엌데기 노릇을 하고 밤에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였다. 아무런 꿈도 꿀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냉소만 가득했던 여인이다. 그런 그녀에게 돈키호테는 ‘고귀한 여인, 나의 레이디’라는 터무니없는 칭송을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욕했지만, 어떠한 비웃음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을 존중해주는 돈키호테를 통해 알돈자의 마음은 점차 바뀌어 간다. 비록 처절한 고통을 겪어 이 모든 것을 부정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죽음을 앞둔 키아나 노인에게 바로 돈키호테 당신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일깨워 준다.

성도라는 사람들이 먼저 자기 자신과 서로를 향해서, 나아가 짓밟힌 채 꿈도 희망도 꾸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의 수많은 알돈자들에게 해야 할 소명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고귀한 형상은 망가졌지만, 성도들은 믿음의 눈으로 망가진 사람들에게서조차 여전히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불량품일 뿐인 나와 이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자신의 목숨을 주시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의 가치는 ‘예수님짜리’이다.

왜 이기지도 못하면서 무모한 짓을 계속하냐는 알돈자의 힐문에 돈키호테는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길’을 갈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본분, 아니 특권이요!”

▲ 돈키호테와 산초.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

이 세상은 1퍼센트 사람들을 위해 나머지 99퍼센트를 희생시키는 곳이다. 그러나 성도는 99 퍼센트 망가진 가운데 남아있는 1 퍼센트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 자신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피조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도의 임무이자 본분, 아니 특권이다!

미디안 십 만 군사를 물리친 기드온의 3백 용사, 거인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 850명 거짓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엘리야, 오천 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신 예수님 등 성경은 이 땅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진정한 생명력과 영광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소재로 한 이 뮤지컬의 장르는 ‘코미디’이지만, 주옥 같은 대사들이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저 허풍선이, 미치광이 정도로만 알고 있던 돈키호테. 그러나 그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며 전하는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로 고소된 세르반테스는 자신에게는 이상 없이 살 수 있는 용기가 없다고 말한다.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오.”

사람들이 절망하며 죽어가는 이 시대에,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삶은 가장 고귀한 인생이다.

<무엇이 성공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돈키호테를 모두가 미쳤다고 해도 그로 인해 삶이 바뀐 알돈자만은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돈키호테가 보인 대부분의 행동들은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그는 사람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런 삶의 태도 아닐까? 왜곡된 나 자신과 상대방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비록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비전을 꿈꾸면서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 오늘도 나는 뮤지컬로, 아니 주님으로 인해 꿈을 꾼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 돈키호테의 노래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
<동영상 보기 ‘이룰 수 없는 꿈’>  : http://www.youtube.com/watch?v=19lnzQ82J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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