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인 길들이기

배지영의 ‘소설로 신앙하기’ – ①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

배지영의 ‘소설로 신앙하기’ 코너를 연재합니다. 첫 소설은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입니다. 소설이 주는 진실의 힘을 같은 소설가의 글쓰기를 통해 맛볼 수 있습니다.

▲ 책 <요노스케 이야기> 표지

‘착한 사마리아인’ 실험이 있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한 실험이다. 한 대학의 신학과 학생들에게 강연을 부탁했다. 한 부류에겐 자유로운 주제로, 또 다른 부류엔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시간차를 두고 한 명씩 다른 건물로 이동시켰다. 그때 누군가에겐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갈 것을 요구하고 또 어떤 이에겐 여유 있게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건물 사이에 아파 보이는 사람을 누워있게 했다.

과연 누가 이 사람을 도와줄까?

짐작하자면, 착한 사마리아인 강연을 준비하는 신학생이라 추측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들 신학생들 가운데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보인 이들은, 본인의 강연 주제와는 상관없이, 그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신학생들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즉 (강연 주제와 상관없이) 강연 시간이 급하다고 전해들은 신학생들 가운데선 오직 10%만이 병자를 도왔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신학생들 가운데선 60% 넘게 병자를 도왔다.

이 실험 결과에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실험에 참여한 이들이 신앙심도 좋다는 평판의 신학생들이란 사실에, ‘고귀한’ 선행의 발로가 고작 시간적 여유라는 건가, 싶어 허무하기도 했다.

#선행의 발로가 고작 시간적 여유?

그러다 문득 얼마 전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실 이 책은 몇 년 전부터 내 서재를 채우고 있었으나, 앞에 몇 장을 읽다가 덮어뒀었다. 다소 장난스럽다고나 할까, 주인공으로 나온 요노스케의 가벼운 듯 덜렁대는 캐릭터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우연히 읽다 보니, ‘아,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군’ 하는 생각이 들어 단숨에 읽게 됐다.

대학 신입생인 요노스케는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뜻하지 않게 삼바 동아리를 들기도 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부탁을 받고 남동생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매력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 있었다. 거창한 희생정신으로 무장된 것도 아니고 사명으로 여기며 이를 악무는 인물도 아니다. 그의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라, 너무 우유부단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예컨대 그는 ‘쇼코’라는 여자친구와 바다로 놀러갔다가 우연히 베트남 난민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순시선을 피해 배에서 내려 필사적으로 해안으로 뛰어왔다. 그들을 멍하니 보고 있던 요노스케에게, 아기를 안은 한 베트남 난민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제발 아기를 안고 도망쳐 줘’라며 애원한다. 절박한 요청을 받은 요노스케는 한쪽 팔에 아기를 안고 도망을 친다. 아기를 구하고자 하는 요노스케의 무의식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결국 아기를 안고 뛰던 요노스케는 경찰에게 제지당하고 만다. 경찰은, 그에게 난민들은 임시 보호하는 시설로 보내질 것이며, 아기 역시 병원에서 잘 치료 받은 후 보호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요노스케는 아기를 경찰에게 인계하는 것을 망설인다.

이 사건은 요노스케보다, 그의 옆에 있던 여자친구 쇼코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한다. 쇼코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바란다. 부잣집 철부지 아가씨인 쇼코는 결국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국제연합에서 일하게 된다.

이 책의 본문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요노스케와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시절에 요노스케와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설은 요노스케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의 죽음은 2001년 도쿄의 한 전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 이수현 씨를 떠올리게 한다. 요노스케 역시 그와 같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요노스케의 어머니는 그의 여자친구였던 쇼코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아직도 사고를 자주 떠올립니다. 어쩌자고 그 애는 돕지도 못할 상황이었을 텐데 선로에 뛰어들었을까. 그렇지만 요즘에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 애는 틀림없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 거다. ‘틀렸어, 구할 수 없어’가 아니라, 그 순간 ‘괜찮아, 구할 수 있어’라고 믿었을 거다. 그리고 이 아줌마는 그렇게 믿었던 요노스케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 영화 <요노스케 이야기> 포스터

그 부분을 읽을 땐 정말 뭉클했다. 다소 유치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요노스케’란 인물이 진정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요노스케의 긍정 “괜찮아, 구할 수 있어”

그리고 문득 요노스케가,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 간 한국인 청년 이수현 씨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선로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 그것은 단지 실험결과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라는 것. 그건 오랜 시간 걸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착한 마음 말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실험 속에 나타난, 10퍼센트의 신학생들. 그러니까 바쁜 강연이 있음에도 아픈 병자를 도왔던 그 10퍼센트의 비율이야말로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선, 시간적 여유도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 걸쳐 형성된, 누군가를 돕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요노스케의 마음, 그러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신앙을 가진 우리가 ‘착한 이웃’이 되기 위해선 그런 습관을 지금부터 착실히 들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전도하려고 상대의 말을 끊고 내 말을 하는 것에 급급하기보다는, 먼저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는 습관, 그것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졌다.

모든 희생적인 사랑에는 그러한 작은 생활태도들이 모인다는 것. 그래서 한 순간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그런 착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배지영은 1975년에 태어났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로 등단했다. 소설집 <오란씨>(창비)와 장편소설 <링컨타운카베이비>(뿔)를 발표했다. 기독교계 매체에 영성과 소설을 소재로 한 글쓰기를 연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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