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심은 나무

겨자씨 2020. 봄(Vol40) – 시냇가에 심은 나무

봄날에 심은 나무

글 성춘복(시인, 前한국문인협회장)

사진 박해준

그 봄날, 나는 홍천의 남의 땅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왕이면 하고 가슴 한가운데 ‘입춘방(立春傍)’이라는 이름까지 내 글씨로 써 붙였다. 그 뜻은 ‘봄맞이의 표시’라고 할까. 내 나이쯤 되니 ‘봄’이란 관용어가 따라붙게 된 모양이다. 이왕이면 흠씬 키도 잘 자라고 잎도 무성하여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한결같이 제대로 된 모습을 지닌 나무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까지 곁들어진 소망이었다.

생각해 보라, 찬바람이 이는 늦은 가을의 한때에 얼른 갈아입은 낙엽수의 옷매무새를! 마을 어귀를 지키던 느티나무의 날렵한 패션 감각이 아무래도 스스로 나를 매료시켰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 나무가 주위의 여러 나무와는 아주 다르게 단박에 키가 우뚝 솟고 살도 제대로 붙어 단연 돋보이게 되리란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이 내 소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야윌 대로 야윈 나무의 몰골이라니, 내 어리석음과 더불어 나를 닮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양새였다.

내가 써 붙인 그 명패를 간직한 채 그다음 해 봄엔 아주 어엿한, 그리고 그다음 해는 더욱 봄과 여름의 근사한 몸체를 거느릴 것을! 그런 것들을 나는 얼마나 속으로 빌었는지 모른다.
나중에 다른 여타의 나무와는 달리 높이를 세우고 숱한 녹색의 그림자도 주위에 드리우며 아주 많이 나무들의 부러움을 사는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 혼자의 뚱딴지같은 믿음까지 갖고 있었다.

물론 애시당초 이 낙엽수가 한 해 동안 자라나 유난히 훌륭하게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 시작은 여느 나무와 다를 바 없이 그저 작은 종묘나 씨앗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아주 잘 고른 좋은 토양에다 씨앗이나 종묘를 묻으면 뿌리가 자리 잡아 움을 틔우고 크게 눈을 뜨면 여름의 무성한 잎까지 거느리게 되는 것을.

그리고 여름을 넘기면 노랗게 잎을 물들여 자신이 태어난 토양으로 과감하게 되돌리기를 할 것임을 짐작했다. 애초의 씨앗이 흙을 믿고 자신을 묻게 되면 다부진 봄기운에 힘을 불리고 물기도 얻어 자신을 철저히 삭히는 작업부터 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이렇듯 종자는 여건만 갖추어지면 썩고 삭히고 짓이겨지기 마련 아닌가. 드디어 봄날의 훈기로부터 잠을 깨고 보면 세포 분열을 하여 움이 되고 싹이 된다. 짐승도 사람도 든든한 뿌리와 함께 고난의 드난살이로 추위와 햇살, 바람과 비에 흔들리고 다져져서 제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때로는 해충의 공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여름이면 짙푸른 색깔의 그늘을 만들고 또 얼마는 꽃과 향기로 나비와 벌들을 부추겨 종자 생산의 결실까지 하게 된다.

그해 나는 몸살을 하는 느티를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흙으로 뿌리를 돋우어 주고, 막걸리를 사다가 퍼 먹이고, 물을 한도 없이 쏟아 붓고, 그 앞에서 내 키를 무작정 낮추고… 이런저런 일로 나 자신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방법도 강구했었다.

나무를 위한 내 나름의 정성과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몇 번의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그 성장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봄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한 그루의 느티나무에게서 자연의 신비를 배운다.

사진 박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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