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그의 나라에서

겨자씨 2020. 봄(Vol40) – WE

우리 함께, 그의 나라에서

글 · 유동규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글을 나눈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귀한 일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며칠을 같은 고민을 올리니 어떤 기도를 또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의 삶 가운데 일하여 주세요. 하나님 저의 주인이 당신이 되길 소망합니다.’라는 기도만 반복해서 드렸습니다. 그러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이 생각났습니다. 성경책을 펴고 찬찬히 주기도문을 읽으며 기도를 드리는데 밀려오는 감동과 함께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가르치신 그 기도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말씀하신 그 나라를 소망하는 기도를 드린 뒤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로 이어집니다.

‘우리’였습니다. 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면서도, 제가 드린 기도의 주어는 온통 ‘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예수님은 ‘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아버지를 높이고 그 나라를 함께 소망하는 것, 이 땅에서 나의 어려움만을 기도로 간구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을 함께 간구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였습니다.

조금은 다른 ‘우리’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마음에 담아 두었던 애통함을 나누어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와 현재의 삶에서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우리’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각 사람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나아가서는 ‘올바른 것’, ‘당연한 것’으로 정의되는 것들이 하나씩 바뀌어 나가는 때입니다. 그중에는 양보할 수 없는 진리를 지켜야 할 영역도 있고, 기존에 당연하다고 정의된 것을 완전히 뒤바꾸어야 할 영역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혼란 가운데,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우리’를 만들고,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혐오의 시선과 정죄의 말을 뱉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올바름’을 주장하느라 상처받은 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숨죽여 있는 이들을 벼랑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일부 영역에서는 ‘교회’가 또 다른 ‘우리’를 만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를 이룰 수 없게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대상, ‘우리’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마 9:10)’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예수님께서 말씀에서처럼 지금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신다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제 옆에 앉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 앞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죄인이니 말입니다. 각자 죄의 모양과 이름이 다를 뿐, 우리는 동일하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그분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혹 제자로 식사에 참여했다면, 더욱이 예수님께서 식사에 초대한 손님을 자리에서 내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그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난한 자들을 부르시네, 값없이 오라시네. 길 잃은 자들을 부르시네, 영원한 집으로. 기뻐 뛰며 돌아가네, 영원한 즐거움으로. 소리치며 나아가네, 넉넉한 아버지께로’
어노인팅의 <그의 나라는>이라는 찬양의 가사입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값없는 부르심과 넉넉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저에게 그리하셨듯 여러분에게도 그리하실 것을 소망하며, 우리의 인지 너머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나운 목소리를 내기 전에 우리가 주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기억하며, ‘우리’로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영원한 주님의 집에 함께 기뻐 뛰며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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