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2020. 봄(Vol40)-명수필 산책

봄!봄!봄!

글 · 최서해(소설가, 1901-1932)

봄, 봄은 또 찾아듭니다.

사진 박해준

해마다 찾아드는 봄은 늘 그 봄이나, 그를 맞는 사람의 가슴은 늘 같지 않습니다. 가슴만 달라질 뿐이 아닙니다. 새봄을 맞는 때마다 달라지는 형모는(形貌)는 차마 볼 수 없이 괴롭습니다. 이것이 세월이 주고 가는 선물인지, 생활이 주고 가는 선물인지, 내게 있어서는 분간하기 어려운 자취지만 어쩐지 봄을 맞을 때마다 애틋한 괴롬이 가슴의 문을 소리 없이 두드려서 견딜 수 없습니다.
생활이란 그처럼 사람을 볶으며, 세월이란 그처럼 사람을 틀어 놓는지는 이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도 아니건만, 어렸을 때에 기쁘던 봄이 어른 된 오늘에 이처럼 괴로울 줄은 나뿐이 아니라 누구나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악(北岳) 머리를 싸고 흐르는 엷은 아지랑이나 마당 한 귀퉁이에서 뾰족뾰족 터 오르는 새싹은 모두 새봄의 새 빛과 새 힘을 보여주는 것이로되 내게 있어서는 어느 것이나 괴롬 아닌 것이 없고 슬픔 아닌 것이 없고 추억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남은 다시 피어나는 희열에 방긋거리는데 나는 그것을 괴롬으로 보고, 슬픔으로 보고, 추억으로 보니, 나는 벌써 새싹과 같은 생명을 잃어버렸는가, 차라리 그러한 생명을 잃어버렸다면, 그 괴롬, 그 슬픔, 그 추억도 없이 지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삼십을 내일에 바라보는 청춘이외다. 가슴에 푸른 마음이 넘쳐흐르고 혈관에 붉은 피가 소용돌이를 치는 젊은이외다. 나는 이렇게 젊었으므로 이 봄이 괴롭고 이 봄이 슬프고, 그 괴롬 그 슬픔을 모르던 옛날의 봄이 그립습니다. 철모르던 옛날의 봄이야말로 참말 봄이었습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집안이 어찌 되는지 그것은 생각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전연히 모르고, 따스한 볕발이 기어드는 봉당에서 하품하는 개를 말이라고 못 견디게 타고 놀다가 어머니의 꾸지람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책보는 버드나무 가지에 처매어 놓고 새잡이 그물을 들고 이 들로 저 들로 돌아다니던 그 옛날의 철모르던 봄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그렇던 봄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생각하면 옛날의 일이외다. 엷은 비단 장막 같은 아지랑이에 아련히 가린 북악의 윤곽보다도 더 희미하게도 눈앞에 떠오르는 옛날의 일입니다. 그때는 이제 내 일생에 있어서 다시 찾을 수 없는 때외다. 찾을 수 없는 그때를 이렇게 추억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 추억은 이해(理解)에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목전에 닥치는 괴롬과 슬픔이 내 몸을 누르는 때마다 그 괴롬 그 슬픔을 모르고, 양지쪽에 피어오르는 고사리 싹 같은 어릴 적으로 나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다리를 더듬어 옮아가게 됩니다.

나는 그렇게 추억의 사다리를 더듬는 때마다 봄밤, 우수(憂愁)달빛이 흐르는 봄밤, 푸른 안개 속에 싸인 듯이 푸근한 유쾌와 애틋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이 그처럼 추억되고 그 추억을 추억하는 것을 향락하는 것만큼 나의 이 봄 생활은 거칠기 그지없습니다. 봄을 봄으로서 느끼지 못하리만큼 나의 생활은 거칠었습니다.

나는 내 생활을 생각하는 때마다 눈 날리고 바람 치는 거친 들을 외로이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한강에 층 얼음이 풀리고 북한(北漢)의 흰 눈이 녹아 세상은 이제 바야흐로 봄 세례를 받게 되건만 내 길의 빙설은 나날이 더해 갈 뿐이외다. 나는 그것이 괴롭고 그것이 슬픕니다.
나는 이 괴롬을 누구더러 덜어 달라는 것도 아니요, 이 슬픔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려는 것도 아니외다. 이 괴롬, 이 슬픔은 나 아니면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다만 이 괴롬을 괴롬으로서 맛보고, 이 슬픔을 슬픔으로서 맛보려 할 뿐이외다. 나는 그것을 물리치려고 하지 않고 받으려고 하며, 그저 보려고 하지 않고 그저 밟으려고 할 따름이외다. 나는 거기서 내 생명의 약동을 보고 내 생명의 법열(法悅)을 얻으려고 합니다.

봄, 괴로운 봄, 슬픈 봄, 추억의 이 봄은 나에게 얼마만의 괴롬과 슬픔과 추억을 주려하며 그 모든 것은 내 생명의 약동을 얼마나 더 늘려, 내 생명의 법열을 얼마나 더 돋우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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