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지구에게 쓰는 편지

시냇가에 심은 나무

초록별 지구에게 쓰는 편지

글 정연희(소설가)

사진 김연철

우주 공간에 뿌려진, 헤아릴 수 없는 별 중에 지구라는 별 하나, 다른 별이 지구를 바라볼 때, 지구는 에메랄드빛으로 빛난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초록별에 초대되어 살고 있는 손님입니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보다 아름다운 별은 또 없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그렇게 비밀한 사랑이 나를 초록별을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 영혼이 초록별 지구의 신음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때로 산이 우우, 고독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맑고 맑게 흐르던 강물이, 쓰레기에 뒤섞여, 검은 눈물이 되어 흐르는, 목 메인 소리가 들립니다. 그토록 넉넉하던 바다가 고통으로 용틀임하는 바다 신음이 들립니다. 지구 둘레의 하늘이 쿨럭쿨럭 기침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지에서 무한정 기름을 뽑아 올리고, 곳곳에 관정을 뚫고 물을 뽑아내 대지가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립니다.

여름 휴가철이면 팔당 식수가 쓰레기장이 되고, 바다며 산마다 구겨 던진 쓰레기로 뒤덮여, 인간의 무정함을 두고, 산과 들이 앓는 소리를 낼 때, 나는 내 영혼을 베어 임종 앞둔 어머니에게 손가락 깨물어, 선혈을 흘려 넣듯,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용서를 비는 편지를 씁니다. 아직도 피고 지는 작은 풀꽃 하나의 신비와, 영혼의 우물처럼 마당 가득 차는 달빛 아래, 어디선가 영롱하게 흔들리고 있을 별빛을 향해, 눈물 머금고 연둣빛 닮은 편지를 씁니다.

그렇게 망가져 가면서도, 초록별은 인간에게서 첫정을 거두지 않고, 맑은 공기와 청량수의 꽃들을 선물하고 열매를 주며, 사람 살아갈 길을 터 주고 있습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치유의 손길을 건네줍니다. 불면증을 앓는 이에게는 풋대추의 씨, 안개꽃 아이리스로 잠을 보내주고, 충혈된 눈에는 아스파라거스, 라벤더 향이 눈을 맑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메밀껍질, 녹두껍질, 결명자, 국화초가 청뇌명 목침을 만들어 두풍열을 내려 주며, 단잠을 불러다 주고 혈압도 다스려 주고 있습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산도, 강물도 숲도…… 모두가 살아 있어, 우리와 생명 나눔의 이야기를 이어가자는 이웃입니다. 생명은 서로를 알아보는 따뜻한 언어입니다. 살아있음의 아름다움과 스러져가는 것들이 안고 가는 영원한 의미까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어머니의 친정이었던, 경기도 처인군 백암면과 안성 삼죽면의 산 둔덕입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늘 시골이 그리워 방학 때면 외가나 고모 댁에서 살았습니다. 사람이 지금보다는 순하던 시절의 살림 향기를 아직도 잊지 못해, 그 시절의 추억을 편지로 쓰면서 초록별 지구에게 위안이 되기를 빌고 있습니다.

글 : 정연화(소설가)

이름 없는 골짜기, 명리도, 권력도, 돈도 어울리지 않는 산골에 살면서, 별들의 언어를 익히고, 슬픔의 되새김질에서 이별의 아름다움을 배워 가며, 내가 초대되어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에게 끝없는 편지를 씁니다.
– 안성 삼희동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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