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머슴의 아름다운 섬김으로 세운 교회

아름다운 교회로의 여행

전북 김제 금산교회
주인과 머슴의 아름다운 섬김으로 세운 교회

글 김용기 사진 금산교회 제공

십자가 종탑이 정겹게 보이는 금산교회 ‘ㄱ’자 예배당의 전경
서까래의 모습이 훤히 드러난 예배당의 중심부에 강대상이 있다

사랑채를 내 준 조덕삼

평양 대부흥운동이 전국을 휩쓸던 1905년 벽안의 선교사 테이트가 전북 김제 금산리의 마방(馬房)에 찾아들었다. 그는 지역의 지주였던 조덕삼의 마방에 말을 맡기고 하룻밤을 묵었다. 신기한 듯 서양 선교사를 살피던 조덕삼은 “살기 좋은 당신네 나라를 떠나 왜 이리 가난한 조선 땅에서 고생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테이트 선교사는 “오직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선교사의 열정과 용기에 감동을 받은 조덕삼은 자기 집 사랑채를 내주며 예배를 드리도록 했고, 이것이 금산교회를 개척하는 시작이 됐다.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루이스 테이트(Laws Boyd Tate, 한국명 최의덕) 선교사의 전도로 시작된 금산교회는 그리스도인이 된 조덕삼의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큰 자’ 가르침 실천

금산교회는 1908년 전통 한옥으로 교회를 새로 건축하고 부흥기를 맞았다. 조덕삼(趙德三, 1867~1919)과 이자익(李自益, 1879~1958) 등 초기 교인들은 지역 전도에 앞장서 세례 교인만 25명으로 늘어 공동 의회를 구성했다.

금산교회의 내력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
금산교회 기념관에는 초창기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모형을 비롯해 역사를 간직한 기념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교회가 커지며 신앙이 좋은 두 사람 중 한 분을 장로로 선정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당시로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격차가 있었다. 조덕삼은 마방의 주인이었고, 이자익은 그 마방에서 일하는 머슴(종)이었다. 여섯 살에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와 불우했던 그였다. 하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천자문을 줄줄 외울 정도로 영특해 조덕삼의 눈에 들어 마부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내 공동 의회가 열렸고 결과는 머슴 이자익이 장로로 피택되었다. 조덕삼은 결과에 실망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멋진 본을 보였다. 조덕삼은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이런 분이 교회 일꾼이 되어야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으로 나는 피택 장로님을 받들어 섬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 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라며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는 마부인 이자익을 교회에서는 장로로 깍듯이 섬기며 금산교회를 이끌어갔다.

조덕삼은 그로부터 2년 후 만장일치로 장로로 피택됐다. 두 사람이 장로로 교회를 섬기던 중에 금산교회는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 장로는 아무런 학교를 다닌 경험이 없었지만 조덕삼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더구나 조덕삼은 이 장로가 평양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5년 동안의 모든 비용을 기쁘게 담당하기로 했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자익은 목사 안수를 받았고, 금산교회로 돌아와 담임목사가 되었다.

1908년 지어진 금산교회 예배당은 ‘ㄱ’자 형태의 한옥으로 남녀가 구별된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다

100년 넘은 금산교회 예배당 문화재로 보존

이 목사와 조덕삼은 금산교회에서 목사와 장로로 교회를 섬겼다. 이 목사는 후일 한국 교회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금산교회를 비롯해 원평교회를 섬겼으며, 경상도와 충청 지역에서 목회하며 교회를 개척했다. 한국 교회의 초기 성장기인 1950년대까지 세 번이나 조선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내는 기록을 남겼다.

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섬김의 일화는 한국 기독교 태동기에 선한 목자의 본을 보인 사례로 기독교 역사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섬기던 금산교회의 예배당은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다.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136호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교회의 모습도 그 당시의 예배 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어 역사적 건축물로 가치가 높다. ‘ㄱ’자 형태의 전통 한옥으로 내부에는 소나무 서까래가 훤하게 드러나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나무로 만든 강대상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만들어진 공간에는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드렸던 모습이 그려진다. 남자와 여자 성도들이 들고나는 문도 따로 있어 당시의 예배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김종원 금산교회 위임목사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큰 자, 으뜸 된 자라 하셨는데 그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한 조덕삼 장로는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사셨던 분”이라며 “아름다운 교회의 섬김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옮겨놓는 선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더 많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