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보고 사람을 보고 역사를 보고 나를 보고

여행, 스토리를 담다

한 장 한 장 역사책을 넘기듯 폴란드를 걷다
풍경을 보고 사람을 보고 역사를 보고 나를 보고


동유럽 마지막 여정은 폴란드! 그림 같은 풍경과 찬란함, 인류의 슬픈 현대사가 깃들어 있는 폴란드를 한 장 한 장 역사책을 넘기듯 걸었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로 이어진 동유럽 여정. 천년 고도의 고색창연한 체취는 지금도 종종 또 오라고 손짓한다.
풍경과 사람과 역사 속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나’를 더 잘 볼 수 있는 거울이 내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나’를 들여다보고, ‘행복의 의미’를 배우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닐까 한다. 나의 여행의 종착점은 언제나 ‘나’인 듯하다.

글/사진 전영의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에서 폴란드 여행을 시작했다. 지하 9층, 327m까지 개발된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은 지금도 소금 채굴이 진행 중인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광산이다.
동서로 10km, 남북으로 1.5km, 총 연장 길이 300km! 어마어마한 규모다.

700년 전 광부들이 암염을 채취하느라 호미와 망치로 바위를 부셔 가며 한 땀 한 땀 뚫은 갱도를 관광객을 위해 설치한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관광객에게 허락된 공간은 지하 130m까지다.
갱도 안은 온통 소금 왕국이다. 벽도 천장도 모두 바위소금이다. 바위 곳곳에 소금을 채취하던 광부들의 호미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단단한 바위를 얼마나 두드려야 소금을 얻을 수 있을까? 갱도 곳곳에 배어 있는 광부들의 고단함에 마음이 아리다.

굴이 점점 깊어지면서 바깥으로 나오기 힘들었던 광부들은 소금을 채굴해서 생긴 빈 공간에 예배당을 만들고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만든 크고 작은 예배당이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에 마흔 다섯 개다. 그중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헝가리 공주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킨가 예배당이다. 또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에는 채굴을 마쳐 생긴 소금 방이 무려 2,040여 개라 한다.

곳곳에 채굴 현장을 재현해 놓은 모형물, 성인의 기념 공간, 위인들의 조각상과 예술품들, 지금도 연주회와 결혼식이 열린다는 음악 홀 등 다양한 공간과 암염 조각상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대함과 화려함을 품은 크라쿠프

크라쿠프가 수도였을 때 폴란드는 가장 강했다. 그 찬란함이 여전히 크라쿠프에 남아 있다. 수도를 바르샤바로 이전하기 전 폴란드의 수도였던 학문과 예술과 상업의 중심지 크라쿠프.
소금 광산의 소금이 집결되고, 소금 거래소가 있던 곳. 당시 소금은 하얀 금이라 불릴 만큼 귀했다. 늘 소금 상인들로 북적였던 크라쿠프는 맨 처음 직물을 만들어 팔며 직물 상권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도시는 번영했다.

크라쿠프 역사 지구에 있는 시장 광장은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다음으로 세계에서 큰 광장이다. 시장 광장은 여행자의 발길로 들썩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여행지의 광장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시장 광장을 둘러 싼 건축물은 크라쿠프 번영의 빛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시장 광장에서 두 마리의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어둠에 잠겨 가는 크라쿠프 시가지를 감상했다.

비스와 강 둔치에 위치한 폴란드 국왕들이 살았던 바벨성과 그 옆 바벨 대성당, 코페르니쿠스와 요한 바오르 2세의 모교인 야기엘론스키대학교 등 폴란드 여행의 걸출한 관광 명소를 만날 수 있는 곳이 크라쿠프이다.

세계 2차 대전 시 수도 바르샤바는 나치의 융단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크라쿠프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비켜 갔다. 크라쿠프가 나치의 주둔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는 도시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크라쿠프의 찬란함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자 그 입구까지 뻗어있는 선로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태인과 전쟁 포로를 싣고 유럽 전역에서 달려온 나치의 기차가 멈춰 선 곳,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수 천 년 봉인되었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처럼 떨리고 긴장되었다. 수용소 출입문인 철문을 통과하자 옆 담벼락에 붉은 꽃 한 송이가 매달려 있다. 누군가 두고 간 추모의 꽃인 듯싶다.

곧 3열로 열 지어 있는 스물여덟 동의 수용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방문객들이 한 무리씩 이동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수용소 내의 전시 자료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나치에게 학살된 포로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희생자는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치의 생체 실험으로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어린아이들의 사진은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어린아이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있지만 이곳은 눈물조차 금지된 곳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머리카락, 의류, 안경, 신발, 모자, 벨트, 가방 등 유태인들의 소지품이 그 종류대로 유리 전시장마다 수북하다. 생체 실험실, 가스실, 시체 소각로, 목재 교수대 등을 차례로 견학하며 세계 2차 대전의 참상을 목격했다.

수용소 견학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동안 모두 말이 없다. 철문 옆 담벼락에는 들어갈 때 본 붉은 꽃이 여전히 붉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곧 꽃은 시들어 담벼락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을 잃어버린 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서는 사람들에게서 암울함을 덜어 주던 이름도 모르는 그 붉은 꽃은 동유럽 여정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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