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한’ 나무

시냇가에 심은 나무

나의 ‘정한’ 나무

글 윤후명(소설가, 시인)

사진 박해준

나타샤는 눈 내리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가난한 시인에게 가고 있다. ‘아니 올 수 없다’고 기다리는 시인을 아니 찾아갈 리 없는 것이다.

나타샤가 가는 산기슭 길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정한 갈매나무’도 서 있다. 나타샤는 당나귀에서 내려 갈매나무에 어깨를 기대고 흰 눈을 바라본다.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나는 남쪽 땅을 지나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심고자 한다. ‘모모’처럼 외롭거나 괴로울 때 재스민꽃 희고 향기 짙은 나무는 나의 기도를 듣는다. 나무의 달램을 듣는다. 그러면 대관령 너머 머언먼 북관에서도 청록색 귤은 노랗게 익으며 내게 다가올 것이다.

강릉에 작은 집을 한 채 마련하고 내가 처음 한 일은 나무를 심는 일이었다. 귤나무가 아니라도 좋았다. 갈매나무는 물론이려니와 어떤 나무라도 시인이 마가리라고 부른 오막살이에 알맞은 나무면 되었다. 푸른 종이꽃이 바람에 날려 우리 이모들을 부르던 그 냇가에 심은 나무였으니 살구꽃, 복숭아꽃 가슴에 심을 요량이기도 했다.

한방살이를 하던 어린 이모도 이제는 늙었는데 내게 늙었다고 자꾸만 늙었다고 눈길을 주었다. 옛날 집 앞의 자라던 살구나무를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느닷없이 그 세월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서울의 집에도 살구나무를 심지 않았던가. 누구나 자기는 생각 않고 남 나이든 것만 눈에 보이는 심리는 변치 않음을 실감해야 했다.

살구나무는 갈매나무도 되며 오렌지나무도 된다. 내 어릴 적 알 수 없는 꿈이 잎 갈피마다 소근 댄다. 무엇이 되려고 이 땅에 태어나 저 오랜 세월을 헤매며 살아왔을까. 내가 쓰는 시와 소설은 무엇일까.

나는 그리움을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시와 소설 속에는 그리움이 자란다고. 그러면 이 나이에도 그러한가. 나는 내 나무에게 묻는다. 대답은 ‘그렇다’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스스로 머리를 끄덕인다.

내 길에는 갈매나무도 있고 오렌지나무도 있다. 살구나무도 있다. 내가 자하문 고개에 간직하고 있던 자작나무도 있다. 이들은 모두 그리움을 품고 내게 전해준다. 나무의 모습이 그리움의 모습으로 내게 팔 벌리고 있음을 알겠다.

내 흰 당나귀는 내 나무로부터 ‘정한’ 그리움을 받아 그리움을 알고 ‘정한’ 사랑을 배운다.

오늘밤 나타샤는 아니 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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