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불청객

글 김은숙 권사(수필가, 필명 김지형)

그들 한 쌍이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반갑고 신기하여 행여 날아갈세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며 무슨 길조라도 되는 양 수선을 떨었다. 그날 이후 수시로 내 창가에 날아든 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아예 터를 잡고 십여 마리가 제집 드나들 듯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즈음 아파트 단지 내에 “비둘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마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근래에 어디서 집단 이주라도 해 왔는지 아파트 내에 비둘기 떼가 무리지어 지천으로 날아다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비둘기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아니 새벽잠을 깨는 것도 ‘꾸룩꾸룩’하는 그들의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그들을 쫓는 게 나의 일과가 되었다. 겨울 추위로 베란다 문을 열 수가 없어 긴 막대기로 유리창을 탁탁 쳐 보았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궁리 끝에 블라인드 줄을 올렸다 내렸다 했더니 ‘차르르’ 하는 소리에 잠깐 날아갔으나 금세 다시 돌아온다. 나중에는 그것도 면역이 생겼는지 어디 해 봐라 하는 식으로 나를 비웃는 듯, 꼼짝 않고 뒤를 힐끗 돌아보는 놈도 있다. 수시로 물을 한 바가지씩 뿌려 보아도 소용이 없다.

어느 날 홧김에 줄을 세게 잡아당겼더니 와르르하고 블라인드가 통째로 떨어지고 말았다. 매일 스트레스가 더해 갔다.

봄이 되자 아예 창문을 열고 철책을 막대기로 두드려서 쫓았다. 금방 돌아오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바닥에 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서 푸드득 하고 두 마리가 날아올라 기절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항아리 속에 신방이라도 차렸나! 플라스틱 뚜껑을 어떻게 열고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내 눈앞에서 애정 행각도 거침없이 한다. 주둥이를 서로 비벼대며 붙어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또 삼각관계인지 세 마리가 서로 쪼아대며 격렬하게 싸우고 나면 비둘기 털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아예 뽑혀진 깃털이 바닥에 흩어져 있기도 했다.

배설물이 바닥에 쌓이는 것은 물론 넓은 창문에까지 뿌려 놓기 일쑤였다. 이불 빨래를 널 수도, 고추나 나물을 말릴 수도 없다. 내 땅을 빼앗긴 기분이다. 비둘기가 병도 옮긴다는 뉴스를 본 후 더욱 그들이 끔찍해졌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그 옛날 ‘시’에 나오는 평화의 새가 아니었다. 인터넷에 ‘비둘기 퇴치법’을 검색해 보니 여러 사례가 올라와 있다.

그물망을 친 경우도 있고, 작은 바늘못을 거꾸로 촘촘히 박아서 그들이 발을 못 붙이게 대대적으로 공사를 한 집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비둘기와 싸우며 지냈다.

희뿌옇게 먼동이 터오는 어느 갓밝이 새벽에 베란다 쪽이 소란스러웠다. 눈을 비비며 창문을 여니 비둘기 예닐곱 마리가 수선을 떠는 게 다른 날 하고는 사뭇 달랐다.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게 움직이다, 쫓으면 지척 아파트로 날아가서 이쪽만 계속 응시하고 앉아 있다가 채 몇 분도 안돼서 금시 또 수 마리씩 날아온다. 나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물을 한 들통 들고 베란다 난간에 흠씬 하게 뿌렸다. 물이 고이면 앉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비둘기를 쫓은 후 돌아서는데 구석에 하얀 빛이 반짝해서 다가가 보니 비둘기 알이었다. 그곳에 알을 낳고 부화시키기 위해 아빠 엄마 삼촌 이모 고모 온 비둘기 가족이 다 출동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축복의 시간이었으나 나는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우리 집이 비둘기 소굴이 될 판이었다. 조심스럽게 알을 들고 물기를 닦은 후 밖으로 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 앞에 놓아주고 싶었다. 그들은 지금도 건너편 아파트 높은 곳에 앉아 우리 집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는 나는 가까운 풀숲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들이 알을 발견하고 부화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다음 날 아침 어슴푸레한 미명 속에 잠이 깨어 창 쪽을 바라보니 철책 위에 유난히 몸집이 크고 검은 비둘기 한 마리가 알이 있었던 구석 언저리를 슬픈 듯 굽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내가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섬뜩하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다시 잠을 청했으나 머릿속이 어지러운 가운데 문득 떠오르는 것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의 장시「The Raven(까마귀)」의 음울한 환상이었다. 내가 그들의 생명을 버렸다는, 굳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그 환상 속에 기묘한 정서로 다가왔다. 나는 지금 철책 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비둘기의 존재에 빠져들어 포((Poe)의 시문(詩文)이 내 것이 되어 죄의식으로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날은 두세 마리씩 찾아와 마치 참배하듯 알이 있던 자리를 지켜보다 날아갔다. 나는 그들이 와도 더 이상 쫓을 수가 없었다.

이제 비둘기들은 아예 발길을 끊었다. 건너편 그들이 무리지어 앉았던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들의 종족 번식을 방해한 못된 여인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사발통문이라도 돌렸나? 다시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성가시던 비둘기들이 보이지 않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무겁고, 길 가다 그들의 종족을 만나면 괜히 두려움이 앞서서 피해 간다.

지난 2년간 불청객 비둘기와의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텅 빈 베란다에 초가을 햇살이 따갑게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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