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미 기자의 MOVIE

공감의 힘을 가진 오락 영화의 끝판왕
엑시트

글 강혜미

이 영화의 주인공 용남은 대학 시절 산악부 동아리에 열심이었다. 오직 클라이밍에만 매달렸던 탓이었을까?

“동아리를 하려면 제대로 된 거, 영양가 있는 걸 했어야지! 산악부가 뭐야, 산악부가! 너 심마니 할 거야?”

누나의 이런 핀잔이 익숙해져버린, 그는 백수다. 백수에게는 일가친척이 모이는 자리가 고역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고희연 덕분에 그 고역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던 용남과 용남의 가족은 유독가스 유출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유독가스는 소량에 노출되어도 곧바로 사망에 이르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도시 전체를 희뿌연 가스로 채워버렸다. 이미 2~3층 높이로 올라선 유독가스를 피해 고희연을 열었던 연회장 건물의 옥상으로 피했지만 옥상문은 굳게 잠겨 있다. 과연 방법은 없는 걸까?

고민하던 순간 용남이 팔을 걷어붙인다. 고희연 연회장의 부지점장으로 있던 산악부 동아리 후배 의주의 도움을 받아 용남은 호기롭게 연회장 건물 외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용남의 누나가 말했던 ‘영양가’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위태로운 순간을 이겨내고 옥상 문을 연 용남 덕분에 가족들은 구조의 기회를 잡게 되지만 한 번의 위기가 더 찾아온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비롯한 어르신들, 어린 조카들을 태우고 나니 구조 헬리콥터가 꽉 차버린 것이 아닌가? 결국 용남과 의주만이 옥상에 남겨진다.

구조 헬기를 의연하게 보낸 후 그 둘의 모습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살고 싶다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우는 것이 아닌가! 그 어떤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찌질 하게 울었던가 말이다. 이 영화는 예상했던 재난 영화와는 결 자체가 다르다. 주인공이 멋지게 사람들을 구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영웅 스토리가 아니다. 그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주인공의 처절한 생존 스토리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영화 반열에 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는 ‘공감’이라는 힘이 숨어 있다. 앞서 용남의 누나가 말했던 것 같이 산악부 동아리의 경험은 이 사회에서 그다지 영양가가 없다. 영양가가 있는 동아리 경험이란 건 취업과 직결되는 경험을 이르는 것일 터. 이를테면 봉사점수 만렙을 찍을 수 있는 동아리, 각종 공모전을 휩쓰는 광고 동아리 같은 경험 말이다.

누구나 대학 시절 캠퍼스의 낭만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취업에 최적화 되어 있는 인재가 되느냐 마느냐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과연 이 기준과 잣대는 누가 만든 것일까?

젊은 세대들은 물론이고 나이든 세대 역시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과 잣대에 따라 평가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잣대가 늘 옳은 것이 아님에도 낮은 평가를 받을 때면 우리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만다. 스스로 주눅이 들대로 들어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용남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의 상황에 ‘공감’한 것이 아닐까? 세상의 잣대를 고스란히 담아 용남을 바라보는 누나의 시선을 우리도 받아 봤으며, 의주에게 백수임을 고백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허세를 부려보는 용남의 모습 또한 우리가 어느 날 어디선가 해 봤던 행동 아니었을까?

그렇게 용남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던 그때, 용남은 반격을 시작한다. 영양가 없을 것 같았던 용남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오락적 재미가 극대화 되어 있는 영화이면서, 재난 영화이기도 하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휴먼 드라마적 요소까지 갖추고 있는 이 영화. 상당히 매력적이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을 쓸데없이 만들지 않으셨다. 지금은 몸을 낮추고 있지만, 주님이 주신 각자의 능력이 꼭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힘을 내 보자! 이 영화 역시 그렇게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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