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열매, 하늘까지 이르기를

정성진 위임목사 은퇴 특집
我死敎會生

거룩한 열매, 하늘까지 이르기를

글 전수현 목사(전 금왕교회 담임목사)

먼저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했던 정성진 목사님의 목회를 마침내 거목(巨木)으로 세우시고 한국 교회를 비추는 거룩한 빛의 등대로 삼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성역의 한 매듭을 짓고 더 새로운 일을 향해 나아가시는 정성진 목사님과 송점옥 사모님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정성진 목사가 사비를 들여 지은 금왕교회 사택. 2018년 새 사택을 짓기 위해 허물었다. 사진은 당시 철거 작업 중인 모습

새벽부터 6개 부락 누비며

40년 가까운 목사님의 위대한 사역의 기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목회 초년기를 토대로 본다면 무엇보다 마음 중심에 깊이 뿌리 내린 목회 영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983년 10월, 전도사님이 택한 첫 사역지는 입지 좋은 도회지 교회가 아니라 충북 음성의 한 폐광촌에 있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한 때 성하였던 금광이 폐광되면서 인력과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대부분 노인들만 남은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기 위하여 금왕교회에 부임한 것입니다.
교회 주변에 꽃을 가꾸고 나무들을 심으며, 새벽부터 인근 여섯 개 부락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곳곳에 그늘진 이웃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농사 일 등 낯선 일들을 물어 가며 함께 모를 심고 김을 매며 동네 분들과 함께 호흡하였습니다. 탁월한 리더십과 불같은 열정으로 지역 사회를 섬기니 교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고, 성도는 물론 믿지 않는 이들과 타 종교인들까지도 전도사님을 존경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성전 봉헌 감사예배 시 강대상 전경

풍 맞은 주민 매일 재활 도와

세월이 많이 지나고 필자가 금왕교회에 부임하였을 때였습니다. 봉곡 마을을 다니며 전도를 하던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한사코 밥을 먹고 가야 한다며 상을 차렸습니다. 커피를 주시면서 “나두 하느님 아부지 집에 나가야지” 하고 교회 출석을 약속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김옥순 할머니는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고개 넘어 무기(무극) 장터까지 십리 가까운 길을 걸어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연을 들은 즉, 남편 박영옥 어르신이 중풍으로 쓰러져 11년간 고생을 하는 중, 정성진 전도사님이 날마다 찾아와 기도해 주시고 섬겨 주셨답니다. 자부이신 민병순 권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풍을 맞아 쓰러진 시아버님을 매일 같이 찾아와 똥 수발을 다 들며 재활 운동을 시키어 결국 일어나게 되셨어요.”
할머니는 그것이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나도 교회에 가야지, 교회 나가야지…….” 하셨는데 30여 년이 흘러서 마침내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2018년 성전을 새롭게 건축한 금왕교회

전세 보증금 빼어 교회 사택 건축

목사님은 첫 목회 때부터 비움과 나눔의 영성을 몸소 보이셨습니다. 당시 전도사님 부부의 전세 보증금까지 빼어 사택을 건축한 것입니다. 끌어 모아 쌓는 것이 아니라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영성으로 목회의 밑거름을 삼은 것입니다.
1985년 7월 천호동 광성교회 부목사로 부임하기까지 2년여의 시무 기간 동안, 폐광의 여파로 쇠하여 가던 교회와 마을에 큰 부흥과 발전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거룩한빛광성교회와 여러 가지 중한 사역들을 펼치시는 중에도 첫 목회지에 대한 목사님의 관심과 애정은 변함이 없어 여러모로 후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가끔씩 뵐 때마다 성도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하나하나 부르시며 안부를 물으시곤 합니다. 가장 어른이신 김좌배 권사님이 살아계시는지 물으실 때는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찾아뵈어야 하는데…….” 하시더니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정말로 신개촌 마을을 찾아 주셨습니다. 손을 맞잡고 함께 기도하는 뜻 깊은 만남 후에 권사님은 몇 해를 더 사시고 96세의 일기로 하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배당과 사택이 많이 낡았는데, 다행히 초기 성도들이 사놓은 토지를 매각하여 건축 대금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말에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였고 2018년 봄에는 사택을 짓기 위해 정성진 목사님이 사비를 들여 건축한 이전 사택을 철거하게 되었는데, 철거 모습을 목사님께 사진으로 보내드려 은혜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비우고 나누며

그루터기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는 비움과 나눔의 목회에 영성의 뿌리를 깊이 내려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의 목회철학과 ‘재가(在家) 수도사’의 영성으로 피어나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맺기에 이르렀습니다.
광성교회 부목사 시절에 타이어가 닳도록 심방하는 우직한 충심의 영성으로 줄기가 세워지고, 밤가시마을 개척기에는 향기 나는 영성의 꽃으로 활짝 피었습니다. 줄 낡은 시계를 손목에 매시고, 종이컵 하나로 하루를 사용하며, 한 여름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설교 준비를 하시다 손님 올 시간이 되면 에어컨을 가동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미래와 지역 문화를 위하는 일에는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건축 이전한 거룩한빛광성교회는 지역 문화를 선도하는 중심 터가 되어 수많은 사람이 깃들여 쉼과 안식을 얻고 영혼 소성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는 영성의 거목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5세기를 지나면서 새로운 개혁을 부르짖는 소리가 만연한 이 시대에 정성진 목사님과 거룩한빛광성교회를 목회의 모델과 뿌리 깊은 영성의 귀감으로 세워 주심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는 역설적 표징입니다.
젊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목회와 영성의 대를 잇게 하는 일에 더욱 소망을 품게 됩니다. 은퇴를 넘어 교회와 민족을 위한 새롭고 요긴한 사역을 준비하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큰 걸음에 임마누엘의 은총이 넘쳐 거룩한 열매가 하늘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 닛시.

정성진 목사 후임으로 금왕교회를 사역한 전수현 목사

더 많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