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촌의 멘토로

정성진 위임목사 은퇴 특집
我死敎會生

정성진 목사의 첫 사역지 금왕교회 손문영 장로의 편지
폐광촌의 멘토로

글 손문영 장로(금왕교회)

정성진 목사님의 은퇴를 금왕교회 전 교우들과 함께 축하드립니다.

목사님의 첫 사역지인 충청북도 음성군에 자리한 금왕교회 손문영 장로입니다.

손문영 장로

1983년 10월 3일, 정성진 목사님께서 조남봉 전도사님의 후임으로 금왕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하신 첫 날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목사님보다 다섯 살 많은 총각 집사였지요.

당시 금왕교회는 장년 대여섯 명과 학생 너덧이 예배드리는 작고 조용한 교회였습니다. 또 대부분의 폐광촌이 그렇듯 이곳 또한 미처 떠나지 못한 사람과 노년층만 남아 있는 쓸쓸한 곳이었습니다.
한때는 우리나라 금·은 생산량의 40~50%를 차지할 만큼 호황을 누리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폐광이 되고 부터는 이곳을 수놓았던 화려한 불빛들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너무나 고요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폐광촌에 목사님은 활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금왕교회 담임전도사 시절의 정성진 목사. 여름성경학교 후 한 학생에게 시상하고 있다.
정성진 목사, 송점옥 사모가 전세 보증금을 빼서 사비로 지은 금왕교회 사택. 사택이 완공되는 날 중·고등부 학생들이 사택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정성진 목사가 담임전도사로 사역할 당시의 금왕교회. 신학교 졸업 전 담임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 정성진 목사는 금왕교회 2년 사역 동안 백여 명을 전도했다

새벽 예배 후 장화를 신고 논밭으로 들어가 주민들의 일손을 돕기도 하고, 애로점을 물어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도 하셨습니다. 복음이 자연스럽게 주민들에게 심어졌습니다.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삶으로 복음을 나누던 젊은 담임전도사,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목회자였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잘 하셨던 사모님. 사모님의 반주는 찬양을 더욱 은혜롭게 하였습니다. 덕분에 금왕교회는 찬양 소리가 넘쳐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또한 학생들의 진학, 취업을 상담하는 멘토가 되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교회에 관심을 갖고 등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등록 교인이 백여 명에 이를 때쯤 목사님께서 교회 사택을 짓자고 하셨지만, 당시 교회 형편으로는 사택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사택 건축 비용은 걱정 말라며, 서울 집의 전세금을 빼서 사비로 교회 사택을 짓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모님과 주말 부부로 지내셨는데 토요일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던 사모님께서 반찬을 해 가지고 내려와서 교인들과 함께 나누곤 하셨지요.

사택이 완공될 즈음 목사님께서는 금왕교회를 떠나게 되셨습니다. 송점옥 사모가 유산을 한데다 간염에 걸려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교인들은 새로 지은 사택에서 하룻밤이라도 지내고 가시라며 권했지만 목사님께서는 구(舊)사택에서 묵으시고, 사택이 완공되는 날 금왕교회를 떠나셨습니다.

지금 금왕교회는 성전을 새로 건축하고, 목사님께서 전세금을 빼어 지은 사택은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고요한 폐광촌에 푸른 잎을 돋게 하고, 예수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주민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던 젊은 담임전도사의 열정은 여전히 이곳을 향기롭게 하고 있습니다.

은퇴를 축하드리며, 목사님의 사역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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