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 정신으로 언행일치 삶을 보여 준 23년

정성진 위임목사 은퇴 특집
我死敎會生

정성진 위임목사를 보내며
코람데오 정신으로 언행일치 삶을 보여 준 23년

글 김옥현 장로(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편집부로부터 ‘정성진 위임목사 23년의 목회 여정’에 대한 원고를 부탁받고 ‘어떻게 감히 이 시대 영적 거인에 대한 내용을 담아 낼 수가 있을까?’가 고민되었습니다. ‘몇 사람이 대담 형식으로 진행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냈지만 한 사람이 글로 쓰는 것이 정성진 목사님의 목회 여정을 진솔하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겨자씨>팀의 편집 의도에 따라 미력하나마 제가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사역들을 다 나열할 수도 없고, 목사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자료를 살펴보기도 하고, 또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개혁과 행함의 목회자
거룩한빛광성교회 3대 목표와 5대 비전 그리고 그간의 어록에서 정성진 목사의 목회 철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성진 목사의 목회 철학

3대 목표 5대 비전
3대 목표 : 섬기는 교회, 인재를 양성하는 교회, 상식이 통하는 교회
5대 비전 : 지역 사회 문화 중심, 고양․파주 성시 본부, 한국 교회 개혁 모델, 북한 선교 전초 기지, 세계 선교 중심 센터

정성진 목사의 어록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 / 겸손 또 겸손 그리고 겸손 / 교회는 퍼 주다 망해도 성공이다 /
성장 전략은 없고 건강 전략만 있다 / 우리 교인에게는 망할 자유도 있다 /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 회의만 잘 해도 교회가 평안하다 /
개혁은 남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갱신으로 나타나야 한다 /
싸우면서까지 할 만큼 좋은 일이란 없다 / 교육 부서 예산은 100% 들어주어라 /
잘 하려고만 하지 말고 깨끗하게 해라 /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셨을 뿐 한 번도 명예의 관을 쓰신 적이 없다 등

정성진 목사의 목회 철학을 반영한 교회 규약은 23년 후 지금의 거룩한빛광성교회를 이루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1997년 1월 개척 이래 2000년 6월 11일 제정 시행한 교회 규약은 뚜렷한 개혁 성향의 제도와 당회 운영, 3대 목표의 설정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혁신적이고 미래 지향적입니다.

정성진 목사의 목회는 ‘개혁과 행함, 내려놓음, 교회 사랑’으로 함축됩니다.

2010년 서울 시청 앞에서 개최된 ‘광복 65주년 한국 교회 8·15대성회’에서 정성진 목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한 기독교인들을 대신해 신사참배 회개 기도를 하고, 한국 교회에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교회 개혁 모델의 기치로 내 건 내용 중 ‘담임목사 65세 정년, 원로목사제도 폐지’ 등 쉽지 않은 결단을 실천함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퇴임에 온 성도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그 뜻을 존경함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교회, 좋은 목회자 만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짜고 짜면 코카콜라가 아니라 교회가 나온다.”
이 말에 정성진 목사의 교회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2008년 4월 27일 거룩한빛광성교회 역사를 담은 타임캡슐을 제자의 길에 묻었다

주님께 드리기를 기뻐하는 사람

정성진 목사와 송점옥 사모, 두 분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셨습니다. 기도로, 섬김으로, 물질적인 헌신으로 교회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 주셨습니다.
개척 초기 정성진 목사는 송점옥 사모가 마련한 집을 교회에 건축헌금 하셨습니다. 또 2차 건축헌금 작성 시에도 자녀, 손자를 포함한 온 가족 이름으로 1년분의 사례비를 헌금 하셨으며, 얼마 전 은퇴 퇴직금 전액을 거룩한빛운정교회 개척 자금으로 드리기도 하셨습니다.
또 부친상 부조금과 두 자녀 결혼식 축의금을 선교헌금으로 내셨습니다. 정성진 목사는 늘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셨으며, 목사의 수입으로 가장 많은 헌금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 교회에서 수입대비 가장 많은 퍼센트(%)의 헌금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몇 년 전 교회의 부채가 많다고 생각한 송점옥 사모는 어렵게 모아 두신 거금을 교회에 헌금하셨습니다. 재정 담당자가 말한 후에야 정성진 목사가 알게 된 이 일은 오직 교회만을 생각하는 정성진 목사와 송점옥 사모의 재물관과 청빈한 삶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24개 교회 분립개척

목사님은 2002년 교회 표어를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로 정하고 기도하던 중 현재 교회 위치인 덕이동 부지가 하나님께서 머무실 성전으로 삼으시려고 예비해 주신 땅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추진하였습니다.
그때 ‘주여, 주님의 손으로 세우소서!’를 외치며 건축 현장 컨테이너 기도실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예배 때 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를 힘차게 외치고 찬송하셨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낳아야 한다’, ‘나를 남기지 않고 교회를 남기겠다’라는 목회 신념으로 23년간 열린광성교회까지 24개의 교회를 분립 개척하셨으며, 2018년 개척한 거룩한빛운정교회는 거룩한빛광성교회에서 세 개의 교구를 떼어 보낼 만큼 과감한 결정을 하셨고, 목사님 자신도 개척 멤버로 동참하셨습니다.

교회 개척 후 처음 연 제1회 사랑의 바자회(1997년 10월 25일 )테이프 컷팅. 매년 10월 교회 앞마당에서 열리는 바자회는 교인들의 사랑과 나눔 잔치로 그 수익금은 불우 이웃을 돕는데 사용된다.
거룩한빛광성교회는 교회 창립 14주년을 맞은 2011년 1월 9일, 앞을 잘 못 보는 40명의 개안 수술을 지원하고, 파평산 공군 기지 교회 건축을 지원했다

긍휼 사역과 인재 양성

‘병든 자의 손을 잡아 주고, 소외된 자를 품어 주며,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고, 배고픈 자를 먹여 주고, 나그네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교회의 본질로 정의하셨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겸손하게 세상을 섬기는 것이 빛과 소금의 역할임을 분명히 하고, 해피월드복지재단, 장터사회적협동조합 등의 여러 기관을 통하여 다양한 긍휼 사역과 섬김을 실천하셨습니다.
교회 3대 목표 중 하나인 ‘인재를 양성하는 교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한나래유치원 및 광성드림학교를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학교 교육 및 운영에 대하여는 간섭하지 않으시고 교육 전문가에 맡기셨습니다. 또 학생 및 교사 모집에 있어서도 일체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2006년 4월 27일, 다섯 쌍의 새터민에게 합동 결혼식을 올려 주고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도록 신혼살림을 지원해 주었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첫 번째 개척교회인 파주광성교회(현 주사랑교회) 착공 첫 삽을 뜨던 날

“정성진 목사는…”

권평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는 정성진 목사의 특징, 리더십에 대하여 『거룩한빛광성교회 20년사』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성, 빠른 실행력, 핵심을 찌르는 한 마디, 시대의 조류에 민감한 사람, 이야기 꾼,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폭 넓은 목사님의 수용성이 거룩한빛광성교회를 건강한 대형 교회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는 무엇을 건의하거나 이야기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 언사를 하지 않으시며, 의사 결정을 뒤로 미루시지 않고 빠른 판단력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최일도 다일공동체 대표는 그의 페이스 북에 ‘내 친구 정성진 목사는?’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신조를 목회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 온 내 친구 정성진 목사는 우리 시대 몇 안 되는 진정 목회자다운 목회자다.”라고 하시면서 더불어 그는 후배들과 신학생들에게 “‘청빈과 청결과 수도자적 영성과 자발적 가난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하셨다.”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여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언행일치의 삶으로 본 된 삶을 통하여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교회’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훈을 다시 한 번 되 새겨 보면서 미력하나마 목사님의 뒤를 따르고자 다짐해 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_요일 3:16

김옥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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