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생명의 등불

글 우희정(수필가, 소소리 출판 대표)

죽음의 바다였다. 버려진 비옷처럼 볼품없이 구겨진 모양새라니, 비닐을 최소의 부피로 쪼그라뜨리면 저런 모양일까? 아니다. 쪼글쪼글한 질감으로 된 하트 문양의 큰 이파리가 마치 사막 같다. 뿌연 안개 속에 아련히 피어난 연꽃으로 벌판은 온통 신비롭고 그윽했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도 이토록 청초한 꽃을 피운다.

이렇게 환상적인 꽃의 한 귀퉁이에 이들과는 영 딴판인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강처럼 정지된 모습, 가시연 밭이었다.

눈여겨보니 이파리 가운데 부분이 불쑥 솟았다. 아! 이 무슨 얄궂은 장난인가, 한 송이의 꽃을 품기 위해서는 제 살을 찢어야만 하는 숙명이다. 잎을 뚫고 살을 찢어내는 아픔 속에서 피운 저 보랏빛 꽃, 무릇 생명의 탄생이 어찌 호락호락할까마는 더러는 고운 자태대로 어느 순간 아련히 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어이하여 스스로가 만든 견고한 방패를 뚫지 못해 노심초사하다 제 살을 꽃대를 내미는가.

펭귄의 자식 사랑도 가시연의 제 살을 찢는 아픔에 비길만하다. 암컷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 알을 낳고 먹이를 구하러 망망한 바다로 떠난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 세계를 한 달여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 바다, 암컷이 먹이를 구해 돌아올 동안 알을 발등에 받쳐 든 수컷은 부화에 정성을 쏟는다. 당연히 먹지도 못할 뿐 아니라 폭풍도 눈보라도 깡그리 몸으로 받는다. 그 자세 그대로 단 몇 초도 알을 발등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 얼마나 혹독한 시련인가.

태양이 뜨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굶주린 바다표범과 갈매기의 끊임없는 공격도 이겨내야 한다. 처절한 생존 경쟁을 거치며 알이 부화되기까지는 두 달여, 수컷은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도 자신에게 부여된 종족 본능에 충실할 뿐이니, 그도 제 살을 찢어 꽃을 피우는 오롯한 노릇이 아니랴.

이토록 역경 속에서도 도저한 희망의 등불을 켜는 생명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을진저.

우희정(수필가, 소소리 출판 대표)

 

<출처 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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