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새문안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

아름다운 교회로의 여행

서울 종로 새문안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

글 김용기 사진 새문안교회 제공

새문안교회는 올 4월 21일 부활절을 맞아 여섯 번째 새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언더우드 사랑채에서

지금부터 132년 전인 1887년 9월 27일 화요일 밤. 서울 정동의 한옥 사랑채에서 의미 있는 예배가 드려졌다. 2년 전 교육선교사로 조선 정부의 공식적인 입국 허가를 받아 국내에 들어온 언더우드(H. G. Underwood, 1859-1916)선교사가 자신의 집 사랑채에 모인 14명의 기독교인과 예배를 드리며 한국인 장로 2명을 선임한 것이다.

그날 예배에는 만주에서 온 로스(John Ross, 1842-1915) 목사와 제중원의 설립자인 의사 알렌(H. N. Allen, 1858-1932)도 참석해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를 세우는 뜻깊은 예배를 드렸다.

초기 담임목사로 취임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의 편지에 “지난 화요일 밤에 우리는 이 땅에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여기에 참가한 한국 교인의 수는 14명이었고, 지난 주일에 또 한 사람이 등록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매일매일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사업이 일취월장함을 목격하고 있습니다”라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선임한 피택 장로 2명의 불화로 장로 장립이 늦어지며 17년 동안 당회를 구성하지 못하다가 1904년 10월에서야 송순명을 최초의 장로로 장립해 당회를 구성했다.

서울 정동에 있었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집. 사랑채에서 14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새문안교회의 시작이다

송순명 초대 장로, 도산 안창호 선생 전도

새문안교회 최초의 장로인 송순명은 성경에 매우 밝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인 1887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고아 학교에 들어온 것으로 보아 어려서 부모를 잃은 불우한 환경 출신으로 보인다. 어려서 믿음을 접한 송 장로는 신약전서 전체를 암송할 정도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여 교인들로부터 ‘송신약’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언더우드 목사를 도와 매서인으로 전국을 다니며 성경과 전도 문서를 보급하고 판매하며 초기 복음전파에 큰 공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을 전도한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일화로 남아있다. 도산 선생은 1895년 청일전쟁이 평양에서 발발하자 전쟁을 피해 서울로 왔다가 돌아갈 여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때마침 서울의 정동 거리를 지나던 외국인 선교사(F. S. Miller, 1866-1937)의 “누구든지 배우고 싶은 사람은 우리 학교로 오시오. 먹고 자고 공부를 거저 할 수 있소!”라는 서툰 한국말을 듣고 새문안교회의 영신학당를 찾았다.

도산 선생은 예수를 믿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영신학당을 찾았지만 그곳에서 송순명 장로를 만나게 되고, 그의 끈질긴 전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도산 선생은 예수를 믿고 송순명과 함께 영신학교의 접장(선생)으로 3년간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5년 미국 북장로회의 파송을 받아 조선에 들어와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성서번역위원회와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는 등 한국기독교 발전에 헌신했다

교육 사업으로 독립운동 주역 길러내

새문안교회에 있던 영신학당은 주일학교가 그 출발점이다. 알렌이 세운 제중원 교사로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들을 모아 주일학교를 운영하며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사업을 추진했다. 우선은 거리의 고아를 데려다 먹이고 입혀주며 가르치는 고아학교를 설립했고, 점차 학교 형태를 갖추며 영신학교로 발전해 오늘날 경진 중・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가 되었다.

영신학교 출신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규식이다. 김규식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삼촌 집에 살다가 1887년 고아학교에 입학한 후 언더우드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1904년 미국 로녹대학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1910년 새문안교회의 장로로 피택됐다.

김규식(1881-1950) 선생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였으며, 김구 선생과 더불어 임시정부 부주석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새문안교회 성도들이 새로 지은 여섯 번째 성전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여섯 번째 성전 건축, 교회 공간 외부와 공유

올해로 132년의 역사를 간직한 새문안교회는 지난 4월 여섯 번째로 새 성전을 건축해 입당예배를 드렸다. 교회 건축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새문안교회 새 성전은 H자 모양의 건축물 가운데를 곡선으로 설계해 두 팔을 넓게 벌려 세상을 품는 하나님의 따듯한 사랑을 형상화 했다.

새문안교회는 부활절에 열린 입당예배에서 복음을 누리고 전파하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변화하는 교회, 사랑과 나눔으로 따듯한 교회, 민족과 열방을 변화시킬 사람을 길러내는 교회, 소금과 빛이 되어 대안적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는 교회라는 5가지 사역 비전을 발표했다.

이상학 담임목사는 “교회 공간의 최소 10%를 외부와 공유하여 한국 교회의 공간 사용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재정의 최소 20%를 교회 밖으로 사용하여 구제와 봉사 사역에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출처  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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