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다시 쌓기,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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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다시 쌓기, ‘너는’

글 유동규(거룩한빛광성교회 청년부)

지으신 그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본떠 만드신 자들입니다. 당신께서 만드시고 바라보며 좋다고 하셨고, 우리 가운데 이 땅의 모든 것을 향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우리의 마음 깊은 곳부터 우리의 원본 되신 당신을 닮고자 하는 소망과 주께서 주신 만물을 향한 소명들이 자리 잡기를 기도합니다.

Let me introduce myself!(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91년생 유동규입니다.”

제가 만약 짧은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면, 위와 같이 말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대학 ○○학과 유동규 입니다.” 했을 테지요.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아버지, 어떤 직장의 직책, 내가 사는 동네 이름으로 저를 소개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과 처음 만난 누군가가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입니다. 그분의 자녀로서 ○○○라는 소명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게 저의 장래희망입니다.” 라고 본인을 소개한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사실 자기소개라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사소한 일이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일상적인 행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온갖 미디어와 목소리들이 우리의 존재적 의미를 뒤흔들고 있는 때입니다. 어찌나 교묘한 이미지와 말들로 우리의 정체성을 왜곡하는지, 내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눈을 떠보면 우리는 이미 그 가치관에 굴복해 있거나 굴복한 자신을 받아들이기보단 그 왜곡된 자화상에 취한 채 살아가는 자신을 보곤 합니다.

세상이 그린 ‘나’

이러한 왜곡된 자화상은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어 결국 말라죽게 만듭니다. 참 무서운 것은, 우리가 왜곡된 자화상에 열심히 덧칠을 해 왔기에, 깨어진 것을 알게 된 때에도 원래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또 다른 강력한 색으로 이를 덮기 위해 화려한 색들을 찾는 데에 더 목을 매기 쉽다는 것입니다.

맞지 않는 색으로 덧칠해지고 뒤덮여 버린 나의 자화상은, 결국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음성을 가로막습니다. 그 덧칠된 물감 밑에는 씻을 수 없는 자괴감이나 무기력함, 그리고 상처가 고름으로 맺혀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답답함이 숨어있으며, 이미 덧칠된 물감 위에는 진리가 아닌 가치에 취해버린 만족감과 우월감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너는 나의 사랑스럽고 존귀한 자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때로는 “그래서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게 어떻다는 거죠?”라며 유일한 생명이신 그분을 한계 짓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기까지 하지요.

당신이 그리신 ‘나’

혼란스러운 가치관의 홍수와 흔들리는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엇을 전해 주고 있을까요. 앞으로 이 단락을 통해 성경 속의 주께서 ‘너(희)는 어떠한 자이다’라고 말씀하신 부분들을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이 주께서 그 사람에게 품으신 계획을 뜻하는 것처럼, 우리의 자화상의 제목이 주님이 붙여 주시는 이름과 같이 되길 소원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를 주님의 사랑스러운 음성부터 막는 장막이 걷히고, 행복한 동행으로의 초청하심이 우리의 마음 깊숙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출처  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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