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호남 지역 교육과 의료 선교의 열매 “순천중앙교회”

아름다운 교회로의 여행

구한말 호남 지역 교육과 의료 선교의 열매
순천중앙교회

글·사진 김용기

순천중앙교회 전경. 순천중앙교회는 지난 2006년 ‘교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본관을 개축해 입당 예배를 드렸다

서양 의술에서 싹튼 복음의 씨앗

“600리 밖에서 찾아와서 진료를 받고, 전도 소책자를 받아서 흥미롭게 읽을 뿐만 아니라 이틀 쯤 지난 후 다시 와서 다른 종류의 소책자를 달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1898년 11월 전남 목포에 도착한 서양 의사이자 목사인 오웬(Clement C. Owen, 1867-1909)이 1899년 1월 20일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서양 의술을 바탕으로 남녀노소,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던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전도 모습이다. 호남 지역의 선교는 남부 지방 최대 항구 도시로 외국인 선교사들의 유입이 빨랐던 목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1907년 순천에서 가장 먼저 기도 모임으로 시작된 순천중앙교회도 목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개종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선교가 시초가 됐다.

 

지난 2007년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아 교회 발전상을 담은 타임캡슐이 들어있는 ‘100주년 기념 조형물’을 만들어 봉헌했다
주일을 앞둔 토요일 오후 학생 회원들이 본당에서 예배 준비를 하고 있다

감옥 선교도 마다 않은 조상학 조사

오웬 선교사로부터 기독교 교리를 접하고 개종한 초기 기독교인 가운데 한 사람인 조상학은 신앙 열정이 대단하여 지역을 가리지 않고 선교에 앞장섰다. 그는 구한말 감옥에까지 선교의 손길을 펼쳤다.
‘순천지역 무만동에 살고 있던 김일현은 법정 송사에 휘말려 광주 감옥에 구금되었다. 조상학은 그에게 밤낮을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여 결국 믿기로 결단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 동서에게 믿음을 전파하였으나 믿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신랄하게 비난했다. 조상학은 이 소식을 듣고 순천을 방문하여 3개월을 머물면서 전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오웬 선교사의 동행 조사로 활동하던 조상학에게 전도를 받은 김일현은 후에 장로가 되었고, 그의 처남 정태인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순천 지방에서 배출한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김일현, 정태인과 그 가족이 믿으며 1905년 보성군에 무만리교회를 설립하는데 기여한 조상학은 전도 범위를 넓혀 순천의 개종자들이 예배 공동체를 형성하는데도 기여했다.
순천중앙교회 연혁에 따르면 1907년 벌교에 사는 조상학의 전도로 최정희, 김억평, 최사집, 김창수가 믿고 금곡동 향교 뒤 샘 부근 양사재를 빌려 예배를 드림으로 순천 지방의 첫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자 다섯 명, 여자 다섯 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린 순천중앙교회는 1908년 예배 처소로 사용하던 양사재에 일본군이 주둔하며 예배 장소를 빼앗겨 새로운 예배당을 마련해야 했다. 당시 삼십여 명으로 규모가 커진 교회는 서문 밖에 ‘ㄱ’ 자 형태의 5칸짜리 초가를 매입해 첫 교회를 마련했다.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순천중앙교회는 오래된 당회록 등 사료를 모아 작은 교회 역사관을 꾸며 놓았다

3.1운동 당시 성인 200명 교회로 성장

초대 교회의 모습을 갖춘 순천중앙교회는 당시 광주선교부를 맡고 있던 오웬 선교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변화를 맞이한다. 미국 남장로교 소속 한국선교회는 당시 22개의 교회가 설립돼 있었던 순천 지역을 광주선교부에서 분리해 순천선교부를 신설하기로 결정 한 것.
오웬 선교사에 이어 호남 선교를 이끌던 프레스톤(John F. Preston : 변요한, 1875-1975) 선교사는 순천 지역을 답사하고 선교사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10에이커의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지음으로써 순천이 호남 지역 선교의 거점 지역으로 변화하는 기초를 놓았다.
순천선교부는 미국에서 보내오는 선교 자금을 활용해 선교 학교인 매산학교를 설립해 남녀 학생에게 신문물을 교육하고, 안력산선교병원을 지어 주민을 치료하며 교육과 치료를 통한 선교 사업을 이끌었다.
순천 지역의 선교 사역이 활성화 되면서 학교와 병원에서 활동하는 인텔리 계층이 모여 들며 순천중앙교회도 빠르게 성장했다. 1912년에는 교회 면적이 두 배로 커졌고, 제4대 교역자로 이기풍 목사가 시무하던 1919년에는 성인만 200명이 모이는 교회로 우뚝 섰다.

 

‘예수님 따르기’로 지역 공동체 섬겨

올해로 교회 설립 112년을 맞은 순천중앙교회는 선교사의 소명을 이어받아 일본·필리핀·태국·베트남·남아공·아르헨티나에 선교사를 파송해 해외 선교에 앞장서고 있으며, 매산 중·고등학교와 순천대 등 기독교 계통 학교에 대한 학원 선교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홍인식 담임목사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는 교회”라며 “국내외 선교와 학원, 기독교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사랑과 만남이 있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김용기 / 관광학 박사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 교수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산 38-27 HP: 010-7326-3840 | TEL: 031-961-0122 | FAX: 031-965-0348 http://blog.daum.net/ifarmlove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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