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essage, ‘나’로 대화하기

청년 광장

I-Message, ‘나’로 대화하기
함께 사랑하고 싶기에 배우고픈 것들

‘아이 메시지(I-message)’, 즉 ‘나’로 이야기하는 대화법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갈등이나 의견의 조율, 혹은 격정적인 감정이 담긴 대화를 해야 할 때, 대화문의 주어를 ‘당신’이나 ‘너’가 아닌 ‘나’로 바꾸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글 유동규(거룩한빛광성교회 청년부)

사랑과 염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길 원한다면, ‘너’가 아닌 ‘나’로 바꾸어 말해보세요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놓으라 한다
유명한 속담이지요. 아마도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일 것입니다, 바지 적삼을 적셔가며 자신을 도와준 선비에게, 구해진 행인이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지금 나를 아무 생각 없이 구해냈기 때문에 내 봇짐이 떠내려가 버렸소. 당신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내 봇짐까지 건져올 수 있지 않았겠소!” 이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은 함께 분개하거나, 몰상식한 행인을 향해 혀를 차게 됩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갔다면 어땠을까요. 겨우 물에서 건져진 행인과 선비가 물가에 드러누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봇짐이 없어진 것을 알아챈 행인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아이고 저 봇짐이 나에게 참 중요한 것이었는데 물에 떠내려가 버렸구나! 우리 어머니께 드릴 약을 겨우겨우 구해왔는데, 내가 내 목숨 하나 구하자고 그 귀한 약을 놓치다니! 슬프고 애통하구나!”

여전히 객관적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비가 행인을 구했고, 봇짐은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선비나 독자들의 마음에는 큰 변화가 생겼을 것입니다.

선비는 행인에게 혀를 차며 떠나가는 대신에,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봇짐을 찾아보기 위해 개울가를 뒤져본다거나, 혹은 울고 있는 행인을 진심을 다해 위로해 주었을지도 모르지요. 이 이야기의 독자들도 행인을 욕하는 대신, 행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며 해피엔딩이 되길 바랐을 것입니다.

I-Message의 힘
위 두 이야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행인의 언행입니다. 첫 이야기의 행인은 자신의 상황의 어려움, 감정의 상함 등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당신’이 어떠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되었고, ‘너’는 이런 행동들을 고쳐야한다 하는 식의 대화입니다. 그 대화의 결과는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뀐 이야기의 행인은 어땠을까요. 이번에는 행인이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상대방의 탓을 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나’를 주어로 하여,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이렇게 느끼고, 내가 받은 영향은 이러하다고 본인의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이것이 큰 변화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로 대화할 때에는, 그 말속에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질타나, 내 기준에서의 판단이 스며들기 쉽습니다. 이는 ‘너’로 칭해지는 상대방이 일종의 공격을 받았다고 인식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상대방은 자신을 방어하고 변호하는 방어기재를 발동하여 그 반응으로 분노, 공격, 침묵, 도피 등의 반응을 보이기 쉽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둘의 이야기가 처음 나누려고했던 대화의 주제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 목적 또한 달성할 수 없고,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의 관계와 감정 또한 악화시킵니다.

반면, ‘나’로 대화 할 때는 그 결과가 사뭇 달라집니다. ‘너’로 칭해지는 상대방에 대한 질타나 판단의 목소리를 배제했기 때문에, 상대방은 조금 더 본인의 입장을 자세히 그리고 능동적으로 이야기하게 됩니다. 또한 이 대화에서 표면상에 비춰지는 것은 ‘나’이기 때문에, ‘너’인 상대방은 그 대상에 대해 온전히 공감하기가 쉬워집니다.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모두 상대방의 행동을 내 기준으로 폄하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 존중을 표할 수 있으며 관계의 진전에도 용이합니다.

‘나’로 말하기를 통해 공동체 나눔을 진행하는 청년들

당신을 사랑하기에, ’나‘로
항상 내 마음에 있는 모든 사랑을 담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방을 정말로 사랑하고 아끼지만, 또 걱정하고 오래 기다렸지만 한 순간의 대화가 분노로 튀어나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사람과 서먹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 마음과 다른 말이라도, 한 번의 실수라도 그것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참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순간들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사랑과 염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길 원한다면, 이번에는 ‘너’가 아닌 ‘나’로 바꾸어, 그 말에 담긴 진심이 충분히 전달되길 바라봅니다.

 

사진 박해준

<출처 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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