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연가(戀歌)

수필
황혼의 연가(戀歌)

글 김은숙(수필가, 필명 김지형)

사진 황의철

오늘도 그 자리, 황혼 길에 서로 비둘기같이 마음을 의지하며 지냈던 두 분이 머문 자리에는 빛바랜 영산홍 꽃잎만이 속절없이 지고 있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매주 목요일 3호선 전철을 타고 종로구 안국동에 간다. 내가 나가는 시간은 러시아워를 조금 넘긴 때라 지하철 안에는 젊은이보다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거동이 불편하여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주춤주춤 걷는 노인들도 많다. 처음 그 분들을 보았을 때, 저렇게 불편한 몸으로 집에 가만히 계시지 어디를 다니나 하고 의아해 했다.

얼마 후 그곳에 노인복지센터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수년 전 운현궁 건너편 옛 통계청 건물에 노인복지관이 설립된 것이다. 복지관 앞에는 이른 시간부터 삼삼오오 모여 서성거리다, 점심시간이 되면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꼭 점심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 안에 갇혀 식구들 눈치 보느니, 차라리 나와서 동년배들과 말동무도 하고 각종 실버프로그램에 참가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건물 뒤편에 인적이 드문 후미진 지름길이 있어 그길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은 때마침 봉우리를 맺은 철쭉, 영산홍, 벚나무 등으로 아름답게 조경이 되어 있고, 팔각정자까지 들어선 운치 좋은 공간이었다. 정자마루에는 일찌감치 나온 노인들이 하나 둘 난간에 기대앉아 말없이, 오가는 행인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하루는 그 길을 지나다 보니 영산홍이 만개한 꽃그늘 아래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자리를 펴놓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서로 반찬을 놓아주고 깻잎장아찌를 입에 넣어 주고 하는 모습이 여간 다정해 보이지 않았다.

부부라면 이렇게 이른 시간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실 리가 없을 텐데, 각자 홀로 된 처지라는 건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 모습이 한편 흐뭇해 보이기도 하면서도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집안에서의 입지가 거북한 할아버지를 위하여 할머니가 아침 식사를 챙겨가지고 나와서 같이 드시는 것이리라고 혼자 마음대로 추측해 보았다. 언제나 그 시각 그 자리에서 두 분은 함께 앉아 식사를 나누며 담소를 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신문지를 깔고 화투를 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할머니는 늘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화려한 재킷을 걸친 멋쟁이였으나 한눈에 보아도 유난히 안색이 창백했다. 할아버지는 아주 근엄한 교장선생님 타입이었다.

나무그늘이 점점 푸르러 가고 있는 어느 아침, 그날따라 노인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늘 다정하게 그 자리에 오순도순 앉아 계실 줄만 알았는데 오늘은 보이질 않으니 내심 몹시 궁금했다.
‘무슨 일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가셨겠지…’
그러나 다음주, 그 자리에는 할아버지 혼자 우두망찰 서 계셨다. 반찬을 놓아주거나 마주 바라보며 같이 웃음 짓던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 그 다음 주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 혼자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계신 뒷모습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다. 순간 할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에서 불길한 예감이 묻어났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하고 묻고 싶었으나 그동안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았다는 걸 들키는 것 같아 아쉬움을 품은 채 그대로 지나쳤다. 그러다 갑자기 급해진 마음에 내일은 꼭 여쭤봐야지 하며 벼르고 나갔는데 그 날은 할아버지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다시는 그 자리에서 두 노인의 모습을 영영 찾아볼 수 없으니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영원한 젊음은 없다. 두 노인에게도 아름다운 청춘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저들처럼 나이 들어가고 있으니 남다른 연민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날 때면 언제나 서로 다독여주며 행복해하시던 그분들의 환영이 떠올라 가슴 한 편이 아려온다.

 

<출처  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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