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유관순 이야기

강혜미 기자의 영화 이야기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글 강혜미

지금은 덜한 것 같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마땅히 위인전이 전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훌륭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읽으며 본을 받으라는 부모님의 바람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집에 있는 위인전은 두꺼운 양장에다 위인의 얼굴이 책 표지에 클로즈업 되어 그려져 있었다.

때마다 한 권씩 읽고 부모님 앞에서 주인공인 위인의 업적을 나열하는 일종의 테스트를 받아야 했기에 위인전 읽기는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위인이 있다. 바로 유관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유관순 누나’라고 되어 있어서 다른 위인들과는 다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지금도 그때 그 위인전 속 유관순 누나의 삽화가 기억나는 걸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100주년을 맞이한 3․1절을 보내며 유관순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전에 유관순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은 제목 전면에 유관순을 내세운 반면 이 영화는 ‘항거’라는 제목에 ‘유관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영화를 보러가기 전 약간의 걱정을 했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들이 투옥된 후 시달린 고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 잔인한 장면들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혹은 눈물샘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 상영관에 들어가기에 앞서 휴지를 한 움큼 챙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위인전이 위인의 출생에서부터 업적을 이루는 순간까지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면 이 영화는 철저하게 투옥 후 유관순의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또 특이한 것은 투옥 후의 모습은 흑백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투옥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은 오히려 컬러로 처리되어 좀 의아했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나서 생각해 보니 흑백은 꼭 필요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입소과정을 거쳐 여옥사 8호실에 배정을 받는다. 여옥사 8호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두세 평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내부에 사람이 꽉 차 있는 채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누울 자리가 없어 서 있다가 교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수감자들은 계속 서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다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반복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 아리랑을 부르고, 이내 모두가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른다. 점차 소리가 커지고 인근 옥사에까지 노랫소리가 이어지자 교도관은 조용히 하라는 엄포를 놓는데, 그 모습에 유관순은 우리가 꼭 개구리 같다고 말한다.

크게 울다가도 사람이 오면 울기를 멈추는 개구리. 수감자들이 다시 아리랑을 부르자 교도관은 또 제지를 가하고 수감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를 외치게 되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유관순은 요주의 인물이 되어버린다.

이후 유관순은 마치 관과 같은 상자 안에서 선채로 버텨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이때 조선인이면서 일본 순사가 된 정춘영이 일본어로 꺼내달라는 말을 하면 꺼내주겠다며 회유를 한다. 어디 유관순 뿐이었을까? 아마도 감옥에 갇힌 수많은 독립투사가 이러한 말로 회유를 당했으리라. 육체의 고통을 덜어 줄 테니 민족정신을 포기하라고. 그러나 유관순은 이를 과감히 거절하고 무려 일주일을 버텨낸다.

이후 3․1운동의 1주년이 돌아오고 있음을 직감한 유관순은 그간의 모습과는 다르게 공손한 모습으로 교도관에게 노역을 하고 싶다는 피력을 하게 된다. 노역을 하며 정확한 날짜를 가늠하고, 남옥사의 상황을 알고자 함이었다. 결국 날짜를 알게 된 유관순은 1년 전 만세를 외치던 그 날, 다시 한 번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옥사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결의에 찬 만세를 부르는 유관순과 여옥사 8호실의 수감자들. 이를 계기로 모든 감옥의 수감자가 만세를 외치게 되고, 이것이 외부로 알려지며 인근 마을에도 만세의 물결이 치게 된다.

결국 유관순은 주동자로 지목되어 열일곱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초를 겪게 되는데, 이 장면들이 걱정했던 것보다 잔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피를 흘리는 장면도 흑백이기 때문에 절제되어 보이고, 영화 자체도 고문의 잔인함보다는 서사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것이 일제의 잔인함과 악랄함보다는 그에 맞서는 민족정신, 항일정신의 숭고함을 극대화 시킨다.

많은 눈물을 흘릴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유관순을, 아니 유관순 열사를 상업적 소재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영화가 사실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사실에 가까운 상황에 살을 붙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의 한 부분을 일깨운다.

사실 역사의 흐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 남성 위주의 역사 속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꼭 여성이라는 것보다는 사회적 약자,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의 누구라도 불합리한 압제에 항거할 수 있었음을, 아니 항거했음을 보여 준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지켜진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독립된 나라에서 누리는 자유뿐만이 아니다. 죄인 된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지 않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절대적이었음을, 우리가 노력해 얻은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천국시민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출처  거룩한빛광성교회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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