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찾아가고자 하는 목마름

2019 WINTER Special Theme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p12~13
테마 칼럼

본질을 찾아가고자 하는 목마름

글 김광배 목사

사진 윤경원

7년을 수일같이

저는 거룩한빛광성교회에서의 만 7년간의 부목사 사역을 뒤로 하고, 2018년 12월 1일부로 교회에서 배려해 주신 안식년에 들어갔습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6년간 파종하여 소출을 거둔 땅은 7년째 안식하도록 되어 있고, 50년째에는 희년을 선포하게 되어 있는데, 실제 구약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희년이 실현된 적이 없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무척이나 감사하기도 합니다. 지난 7년 동안은 짧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은퇴를 준비하시는 정성진 위임목사님의 목회의 거의 3분의 1일을 함께 한 셈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너무도 사랑하였기에 ‘7년을 수일같이(창 29:20)’ 여기며 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고된 시간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였고 도대체 무엇을 붙잡았기에 7년의 세월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자문자답해 봅니다.

교회의 본질과 목적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목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씨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대형 교회의 일원으로 있으면서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했던 것은 자주 만나는 지체들이 아닌 경우 교구 식구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해 곤혹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때만큼 목사로서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 때가 없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독일의 경제학자 슈마허의 유명한 말처럼 일정 규모의 작은 공동체가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며,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기에 훨씬 적합한 구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룩한빛운정교회 분립은 크기(size)와 속도(speed)를 중요시하는 이집트적인 가치관에 저항하여, ‘작음’을 지향하는 하나의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라고 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어두운 현실에서 거룩한빛운정교회가 건강한 중형 교회로 잘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영성에 대한 목마름

영성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순례의 여정을 떠났던 기간이었습니다. 최근 3~4년 동안 저의 관심은 단연코 ‘영성(靈性)’이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아직도 신앙생활, 경건생활, 교회생활이라는 말이 훨씬 익숙하게 쓰이고 있습니다만, 영성생활, 영성훈련, 영성형성, 영성지도라는 말도 어느 정도 보편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역사적 뿌리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가 예전(liturgy)이나 의식(ritual) 중심이 아니라, ‘설교 중심의 기독교’로 고착된 것은 필연적 현실이라 하더라도 설교 이외의 초기 기독교의 풍성한 영성적 전통들마저 버리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루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욕물을 버리려다 그만 목욕탕의 아기까지 버린’ 우(愚)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따라서 우리 개신교인들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의 기독교, 더 근원적으로 1054년 동서방교회가 분열되기 이전의 기독교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초기 교회의 원형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단지 교파나 교단의 전통이라는 좁은 시야가 아니라 보다 더 거시적이고 역사적 관점에서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 영혼에 대한 뜨거운 헌신, 본질을 찾아가고자 하는 목마름이야말로 모든 것을 견디고 넉넉히 이기게 하며, 허락하신 새 땅으로 우리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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