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

2019 특별기획 한국에 온 여성 선교사①

경계선을 넘는 선교사 서서평
‘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

글 구춘서 총장(한일장신대학교)

구춘서 총장(한일장신대학교)
어린 양자 요셉을 업은 모습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으로

우리식 이름 서서평으로 잘 알려진 Elisabeth Johanna Shepping 선교사(1880-1934)는 언제나 경계선을 넘는 선교사이다. 그녀는 어려서 독일에서 미국으로 경계선을 넘었다. 그녀는 독일 비스바덴에서 태어나 11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1.5세 이민자다. 그녀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3살 때 미국으로 떠난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혈혈단신 대서양을 건넜다. 이렇게 그녀는 어려서 독일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이민자의 고달픈 삶을 살았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이민자의 경험은 그녀를 조선 땅에 건너와 고무신 신고 보리밥 먹으며 무명 저고리를 입고 조선인을 돌보는 선교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녀는 조선인보다 더한 조선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로마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경계선을 넘었다. 그녀는 독일 로마 천주교 배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할머니는 서서평을 로마 천주교회 교구학교를 보냈다. 그러나 미국에 온 이후 간호사가 되면서 친구들에게 개신교에 대한 소개를 받는다. 소외된 유대인을 돌보던 서서평은 개신교 부흥 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고 개신교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성경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뉴욕 성경학교(오늘 뉴욕신학교 전신)에서 성경교사 훈련을 받는다. 미국 장로교회가 조선에 파송할 간호사를 모집하자 이에 응모하고 조선에 오게 된다. 그녀는 로마 천주교 신앙에서 개신교로 경계선을 용감하게 넘었다.

조랑말 전도 사진
보리밥과 된장국, 고무신 끌고 생활하는 서서평 선교사의 한국 생활이 1934년 6월 28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되었다
서서평 선교사에 대한 평전 ‘조선을 섬긴 행복(저자 양창삼)’
1930년 뉴욕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에서 서서평 선교사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광주 제중원 성경 공부반에서 만난 남흥 부인과 함께(1914년)
교장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서서평 선교사
1933년 광주이일학교 3월 보통과 제3회, 성경과 제7회 졸업사진. 맨 위 서서평 선교사

 

여성 교육에 힘쓰다

서서평은 간호사이지만 교육자로 경계선을 넘는다. 그녀는 간호사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당시 선교사들이 가장 함께 일하고 싶은 간호사로 손꼽혔다. 그녀를 향한 찬사는 그녀를 지칭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걸, 사랑의 사도, 초인간, 재생한 예수, 사명대로 사는 사람, 예수의 첫째 계명 실천자, 천국 사업의 제1인자 등등. 그녀는 조선에 와서 언어를 배움과 동시에 광주 제중병원, 군산 구암 예수병원,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사로 활동하였다.

 

1901년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는 스물한 살의 서서평 선교사
서서평 선교사의 사인(sign)

그리고 조선간호협회를 조직하고 이를 국제간호협회에 등록시키는 등 간호사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그녀는 간호사로 멈추지 않고 교육가로 경계선을 넘어간다. 그녀의 주 교육대상자는 당시 차별받고 버림받은 여성들이었다. 구암 예수병원 시절 전주에 만들어진 단기 성경학교 교육에 헌신적이었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석 달, 나중에는 여섯 달까지 이어지는 이 성경교육에 그녀는 열과 성을 다했다. 후에 1922년에는 광주 양림동에 이일학교를 세우고 여성들을 교육했다.
이 학교를 꾸려나가기 위해 누에를 키우고 배추를 가꾸는 육체노동은 물론 자신의 생활비를 보태느라 그녀는 극도의 가난을 경험한다. 그녀가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 남긴 말 ‘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은 그녀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세브란스간호부 양성소(현 연세대 간호대) 1918년 졸업생들과 함께. 양성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캠벨 부인이 연세대 교표를 들고 있다

예수의 현현

마지막으로 그녀는 가녀린 여성 선교사에서 사회개혁가로 경계선을 넘었다. 당시 환자를 돌보는 의녀는 저주받은 직업이었다. 양반 자제라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환자의 고름을 만지고 환부를 살펴야 하는 이 천한 직업은 천민들의 독차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 천한 직업인 의녀를 근대적 간호사로 바꾸는 일에 성공했다. 그녀는 환자를 돌보고 섬기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제자직으로 인식하게 했다. 그녀는 엄격하게 간호사들을 신앙으로 훈련시켰다. 예수를 섬기는 심정으로 환자를 돌보게 하는 그녀의 엄격한 훈련은 마침내 저주받은 직업인 의녀들이 백의의 천사라는 근대적 전문인으로 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당시 단단했던 사회적 통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이 변화를 연약한 여성으로 해 냈던 것이다. 그녀는 가녀린 여성에서 이렇게 시대정신을 바꾼 근대적 사회개혁가로 경계선을 넘었다.
그녀가 따르려고 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경계선을 넘는 선구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경계선을 넘어왔다. 그래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경계선을 넘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서서평 선교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여러 경계선을 넘은 진정한 예수의 제자였다. 그녀의 별명이 예수의 현현이라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주에 있는 서서평(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1880~1934) 선교사의 비문

 
출처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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