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바울>

강혜미 기자의 영화마을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바울>

글 강혜미

바울에 관한 영화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우선적으로 머리를 스친 것은 우려였다. 상업적인 장르이다 보니 재미를 위해 무언가를 첨가하다 보면 자칫 왜곡이라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특히나 성경 속 특정 인물을 지나치게 우상화시키는 것이 아닐지 걱정됐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 그것이 기우였음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영화는 매우 사실적이고자 노력했고, 바울을 바울답게 그려냈다.

영화의 배경은 네로가 통치하던 AD 67년의 로마. 바울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의 얼마간을 다루고 있다. 네로는 당시 로마에 일어난 대화재의 책임을 크리스천들에게 돌리며, 그들의 지도자 격인 바울을 주동자로 체포한다.

바울은 감옥에 투옥된 내내 고통에 시달린다. 매질을 당하고 나이가 들어 상한 육체의 고통이 그 첫 번째고, 과거 자신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죄책감에 번민하는 마음의 고통이 두 번째다.

회심하기 전 사울이었을 때 그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의 피를 묻혔다. 비록 회심 이후 전도자의 삶을 살았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그는 그 마음의 짐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바울은 주님께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감당해낸다. 감옥의 기관장인 모리셔스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느냐고 물었을 때 바울은 매우 단호한 얼굴로 답한다.

인간은 의심스러운 것을 위해 죽지 않는다고. 주를 위해 기꺼이 죽겠다는 그의 확실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모리셔스는 비록 밀려나기는 했으나 로마의 집정관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에 속한다. 그런 그에게는 원인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는 딸이 있다.

그의 아내는 로마의 신들을 향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며 그에게 신들의 노여움을 살 행동을 한 것이 아니냐며 다그친다. 그 역시 신에게 성의를 다해보지만 딸의 병에는 차도가 없고, 그는 점점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바울 역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의연한 것과 차이가 있다. 바울에게는 있고, 모리셔스에게 없는 그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반드시 상고해봐야 한다.

우리는 고통과 직면할 때 어떤 모습인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능히 감당해 나가고 있는지, 혹은 모리셔스와 같이 허우적거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잊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바울이 체포된 후 무자비한 핍박을 받게 된 크리스천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모여 숨죽인 채 살아간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이끄는 크리스천 공동체는 비록 음지에 있지만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상처받은 크리스천들을 감싸 안는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브리스길라이다.

로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로마를 떠날 수 없다. 수많은 크리스천의 죽음을 마주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우리는 간혹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곤 한다. 세상은 악하기에 교회 안에서 똘똘 뭉쳐 그 울타리 안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세상을, 악했던 로마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

바울의 투옥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온 누가는 뒷돈을 주어 가며 로마 감옥에 숨어든다. 자칫하면 자신도 옥에 갇힐 수 있었지만 그는 흔들리는 크리스천 공동체를 위해 바울이 믿음을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은 믿을 줄 수 없다며 거절하고 만다. 그럼에도 누가는 바울에게 믿음을 격려할 수 있지는 않겠냐며 그의 말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다른 누군가도 만나야 한다는 확고함이 그를 움직였다. 모리셔스의 딸이 죽어갈 때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살린다.

수많은 크리스천의 죽음을 보며 로마의 딸 하나쯤 그냥 두어도 됐을 텐데 그는 제 역할을 다한다. 그리고 그로인해 모리셔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복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드라마틱하게 회심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바울과의 대화에서 분명 흔들렸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이유를 누가는 몸소 보여주었다.

지금은 네로가 다스리는 로마시대가 아니며, 우리는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핍박을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 교묘해져서 스스로 핍박하는 상황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렇게 편하게 주를 믿으면서도 우리는 로마를 살던 그들보다 못한 전도자가 되어 있다. 이 영화를 보며 바울과 누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목숨을 걸고 주를 믿었던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주를 위해 죽을 만큼의 믿음이 내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 있는지,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을 향해 동일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 우리가 과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말이다.

 


  
출처 <겨자씨>

더 많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