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할 만큼 좋은 일이란 없다

목양실 편지

싸우면서 할 만큼 좋은 일이란 없다
「요일 4:20~21」

글 정성진 위임목사

1998년 10월, 제2회 사랑의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여전도회 회원들끼리 의견이 서로 달라서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 회원이 ‘까나리 액젓은 백령도 것이 좋다’고 하면, 다른 회원이 ‘아니다! 추자도 것이 더 싸고 맛있다’ 그런 얘기였습니다. 그때 교인들을 모아놓고 외친 구호가 바로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싸우면서 할 만큼 좋은 일이란 없다’
바자회의 목적은 좋은 물건을 싸게 팔아 선교비를 마련하는 것인데 선교하려다 싸우면 되겠습니까? 까나리 액젓이 백령도 것이면 어떻고, 추자도 것이면 어떻습니까?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옳은 일이라도 다투면서 하지 마십시오

삼봉 정도전은 고려 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돈을 수습하려고 이성계를 앞세워 조선을 건국한 혁명가요, 조선의 실질적인 통치 이념을 정립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원과 다투다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의 칼에 죽었습니다.

조선중기 정암 조광조는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대제학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바람에 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중종도 등을 돌리고, 끝내 반대파에게 죽었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도 싸우면서 하게 되면, 적을 만들고 실패하고 만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 중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요한을 전도대에 합류시켰는데 부잣집 아들인 마가 요한이 험한 선교 여정을 견디지 못해 허락도 없이 예루살렘으로 가버렸습니다. 2차 전도여행을 출발할 때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하자,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십 년 후 마가 요한이 바울에게 필요한 존재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싸우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옳은 일이라도 다투면서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투더라도 즉시 화해하십시오

몇 달 전 난곡신일교회 분쟁이 해결됐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분쟁이 해결되는데 자그마치 이십일 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상처받고 신앙의 길을 떠난 사람이 수도 없이, 많고 다른 교회로 옮긴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천호동 광성교회의 분쟁도 십삼 년을 끌었습니다. 경향교회처럼 기적과 같이 분쟁이 끝난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들이 대부분 다툼이 생기면 편을 가르고 다른 편을 쫓아내고 교회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싸움의 형태를 ‘공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즉, 성을 빼앗기 위해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입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예배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건물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게 되니 그곳에는 이미 성령이 떠나셨고, 싸움을 부추기는 마귀만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간의 화해 없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천국과 세상 나라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땅과 하늘의 법이 동시에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일하다 보면 갈등이 일어나고 다툼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즉시 화해함으로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있는 지혜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으로 화목을 도모하십시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 가장 유약한 이삭이 가장 평안하고 땅의 복, 물질의 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본다면 그는 온유했습니다. 다투지 않고 싸움을 피했습니다. 이웃과 평화를 도모했습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과 같이 적이 없었습니다. 적이 변하여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물을 빼앗길 때마다 다투지 않고 떠나고 또 떠나기를 여섯 번이나 했습니다. 그런데 옮겨갈 때마다 양떼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것을 본 아비멜렉의 입에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는 고백이 나왔고, ‘불가침 조약’, ‘우호조약’을 맺자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그의 삶에 임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삶의 자리에서 화목을 도모해야 합니다. 화목을 도모하는 일은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자주 다투고 싸우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과 혈기가 충만하여 성령님을 배척하는 영적 상태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시기, 다툼, 분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모두 외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늘나라의 평화 전권대사입니다.
싸우면서 할 만큼 좋은 일이란 없다! 없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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