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같은 인생에 물이 솟구치고, 사막 같은 삶에 생명의 강이 흐르고

2018 AUTUMN Special Theme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며
테마 칼럼

광야 같은 인생에 물이 솟구치고,
사막 같은 삶에 생명의 강이 흐르고

글 문상원 목사

신약성경 요한복음 후반부를 보면, 십자가 앞에서 실패한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지요. 왜 하필 그곳 갈릴리일까요?

다시 세우시는 주님

갈릴리는 제자들이 주님을 처음 만난 곳입니다. 주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감격했던 자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던 곳이요, 온 마음을 바쳐 사역하던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실패로 무너진 제자들 안에 감동이 회복되기를 원하셨기에 그곳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첫사랑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다시 세우기를 원하시고, 그들이 사명의 사람으로 다시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주님이 명하신 자리로 돌아왔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먼 길을 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님은 나타나지 않으시지요. 기다림에 지치고 답답함이 엄습할 때, 제자들은 다시 고기잡이로 향합니다. 내 힘으로 살았던 그곳으로 향합니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은 잊어버린 채 주님 대신 고기를 기다립니다. 고기를 향한 기다림 속에, 그들은 이미 주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욕망의 바다에서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집니다. 그러나 날이 새도록 수고를 반복했지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처절하게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자신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됩니다.

“얘들아”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요 21:5)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며 사용하신 호칭입니다. 주님께서는 “얘들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이 단어가 ‘파이디아(παιδία)’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파이디아’는 ‘파이디온(παιδίον)’의 복수형으로서 ‘유아’나 ‘어린아이’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미 성인이 된 제자들을 유아나 어린아이를 지칭하는 파이디아라 부르셨을까요?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이디아라고 부르신 것은, 작고 작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닐 때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제자들의 심령 속에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되돌아간 것은 주님께서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릴리에 도착한 제자들이 기다림에 주님을 잊어버리고, 욕망의 바다에 뛰어든 것은 그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한 결과였습니다. 그 바다에서라면 주님 없이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어른들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도외시하고 스스로 서려 했던 인생은 철저하게 빈손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듯

젊은 시절의 바울이 교회이 교회를 짓밟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둘 때, 그는 스스로 세상에 굳게 선 어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어른처럼 살았던 그의 인생은 다메섹에서 고꾸라졌을 때 빈손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시력을 상실한 그는 오히려 마이너스 인생이었지요. 그 이후 바울은 다시는 스스로 선 어른으로 자신을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능력으로는 언제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듯, 그는 언제나 주님 안에서 주님을 의지해서만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파이디아, 즉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평생 유치한 인간으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믿음이 장성하고 또 성숙해져야겠지요. 그러나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그리스도인도 장성하고 성숙할수록 그 마음이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더더욱 낮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깨끗하고 순전한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순전한 어린아이 같은 중심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정말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까이 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파이디온이라 부르십니다.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응답해 보세요.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요 21:6)

제자들을 파이디아라고 부르신 주님은, 이제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십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밤새도록 그물을 배 왼편에만 던졌다는 말일까요?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가 삶의 터전인 직업 어부들입니다. 그들이 날이 새기까지 배 왼편 오른편은 말할 것도 없고 전방과 후방 어디엔들 그물을 던지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빈손인 그들에게 주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다시 던지라 하신 것은,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지금껏 욕망의 바다에서 헛 그물질 하느라 빈손이었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좇아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에 물이 솟구치고, 사막 같은 삶에 생명의 강이 흐르게 해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임해 계십니다. 부르심에 감격했던 그 자리에서 지금 주님이 우리를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순전한 어린아이처럼 그 부르심, 말씀을 따라 다시 그물을 내릴 때 우리는 주님의 새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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