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인재 양성, 초대교회의 소명을 실천하며

아름다운 교회로의 여행

한국 교회의 거목을 배출한 내매교회
믿음과 인재 양성, 초대교회의 소명을 실천하며

글·사진 김용기 기자

경북 지역 사학의 시초가 된 기독내명학교.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1909년 설립되어 독립운동가와 한국 교계의 거목들을 배출했다

쪽 복음이 전해지다

1906년 봄, 대구 약령시장 도로변에 서양인의 손에 들린 작은 서책이 사람들에게 건네졌다. 고향인 영주를 떠나 대구에서 잠시 머물던 젊은 청년 강재원은 호기심에 서책 한권을 받아들었다. 한글로 번역된 신약성경의 일부가 담긴 쪽 복음이었다. 일제의 조선 침탈이 노골화 되면서 민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강재원은 성경을 읽으며 평안과 기쁨에 빠져들었다.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강재원은 쪽 복음을 건네준 미국 북장로교회 파송 선교사인 배위량(William M. Baird, 1862.6.16~1931.11.29) 목사를 수소문해 찾아갔다. 한국 초창기 기독교를 접하고 믿음을 키운 강재원은 대구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경북 영주군 천상면 내매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내매 마을에서 40km 떨어진 방자미교회(1906)를 다니며 전도에 앞장섰다. 진주 강 씨 집성촌인 내매 마을에 믿음이 전해지며 예배처가 필요하게 된 강재원은 같은 해인 1906년 유병두의 사랑방을 빌려 처음 예배를 드리다 이듬해인 1907년 자기 집에 십자가를 달고 주일 예배를 드리며 내매교회를 시작했다.

영주댐 공사로 마을이 수몰되어 상류로 이전해 새로 지은 내매교회
강문구 목사 순교기념비. 내매교회에서 믿음을 키운 강문구 목사는 1949년 평양신학교의 교단을 끝까지 지키다 북한군에 의해 끌려가 순교했다

한국 교회의 거목을 배출하다

초대 내매교회의 신자는 설립자 강재원의 가족과 강병주 등 일가친척에 불과했다.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였지만 선교사와 매서인의 전도로 신자가 늘어 1909년에 초가 9칸의 예배당을 건축해 봉헌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지역의 기독 지식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내매교회는 1909년 사립 내명기독학교를 개설해 인재 양성에도 앞장섰다.

초기 신자이며 내명학교 설립에 참여 했던 강병주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다니던 중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일본군에 잡혀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목사가 된 후에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반대해 고난을 받았고, 한글 성경 번역에도 참여해 그 공로로 후일 ‘한국의 기독교를 빛낸 100인’에 선정됐다.

대구 경북 지역 근대 사학의 시초가 된 내명학교는 설립 초기 주일학교 어린이와 나이든 머슴 청년까지 한 반에 모여 신학문을 배우는 등 문맹퇴치에 앞장섰다. 내명학교에 15세로 입학해 상투를 자르고 신문물을 접한 머슴은 후일 목사가 되었다.

기독교 문화 속에서 신학문을 가르친 내명학교는 한국 기독교를 이끌어가는 걸출한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강신명, 강신정, 강문구 목사 등을 꼽는다. 소죽 강신명 목사는 아버지인 강병주 목사의 신앙을 이어받아 서울 영락교회와 새문안교회에서 시무했다. 동생인 강신정 목사는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총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강문구 목사는 평양신학교가 북한군에 의해 폐쇄되기 전까지 학교를 지키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내매교회의 백십일 년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윤재현 내매교회 담임목사

한국 최고의 기독교 순례지를 꿈꾸다

설립 된지 백십일 년을 맞은 내매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적 제11호로 지정되어 내명학교와 함께 한국 초대교회 역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내매교회는 영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며 자리를 인근 고지대로 이전해 교회를 현대식으로 새로 지었다. 교회와 함께 있던 내명학교는 문화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설립 당시 건물을 그대로 옮겨와 교회 옆에 재건해 보전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내매교회는 기독교 순례단지를 조성해 내매의 정신을 후세에 교육하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내매교회와 내명학교의 유물을 담고 있는 전시관과 내명학교가 배출한 기독교 인물과 업적을 살펴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명상의 공간도 구상하고 있다.

인근에는 한반도에 기독교 전례시기를 팔백 년 이상 앞당기는 역사적 유적으로 기독교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거센 ‘도마상’이 있어 의미 있는 기독교 문화 공간으로 적극 알리는 노력도 기울여 나가고 있다.

윤재현 내매교회 담임목사는 “신자들이 찾아와 예배와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의 선조들의 스토리를 살펴보며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내매의 또 다른 소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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