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집사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 수첩

“이선영 집사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글 구숙정 집사

칠 년을 한결같이 곁을 지켜준 이선영 집사(왼쪽)에게 가슴속에만 있던 말을 전한다. 고맙고 고맙다

금요기도회에서 ‘고통을 해석하기’라는 김정준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순간 지난 칠 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엄청난 고통이 나의 삶을 할퀴었다. 그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곁을 지켜준 사람이 있다. 바로 이선영 집사다. 아들 민석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선영 집사는 교회학교 초등 2부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나의 남편 강현용 집사를 보내는 자리부터 지금까지 이선영 집사는 우리와 함께 했다.

남편은 이 년 십 개월 동안 암 투병을 했다. 아픈 남편도 그런 남편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에게도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때 내게 살며시 다가와 먼저 손을 잡아주었던 이선영 집사. 함께 울어 주고, 우리가 아프면 병원을 데려가 주고, 차가 없는 나의 이동 수단이 되어 주고, 언제든지 달려와 나의 필요를 챙겨준 그런 사람. 미소와 마음이 아주 따뜻한 사람이다.

2015년 여름, 사고로 눈 결막 출혈과 코뼈가 골절되었을 때 좀 더 정밀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종합병원으로 날 이끌어 주었고, 생일을 챙겨 주고, 민석이가 방학을 하면 일하는 나 대신 영화관을 데리고 가는 고마운 나의 친구. 그녀의 남편 백종승 안수집사 또한 감사하기 그지없다. 민석이와 놀이동산에 가서 함께 놀아 주기도 하셨고, 퇴근길에 오셔서 고장 난 컴퓨터를 고쳐 주시기도 했다. 늘 민석이와 내 곁에 있는 두 사람.

백종승 안수집사 임직식 때. 민석이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하해 드렸다

민석이가 미국 다녀올 때 공항 라이드를 해 주고, TV에 출연하여 하모니카를 연주할 때는 의상과 신발을 챙겨 주고, 연주회 때마다 자리해 응원을 보내고, 졸업하는 민석이 가슴에 향기로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주고, 친정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먼 길 마다않고 와서 함께 슬퍼하며 위로해 주었다. 연말이면 민석이에게 장학금까지 챙겨 주고, 두 분의 아들 또한 민석이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기 위해 추운 겨울 우리 집 드나드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고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민석이와 내가 이렇게 웃으며 어두운 터널 같은 고통의 시간들을 잘 보내온 것 같다.

한 때 “저에게 왜 또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저는 자라면서 많이 힘들었잖아요. 이제 결혼해서 편안해졌는데 왜 또 저에게… 왜 또 저에게…”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했다. 어린 민석이를 바라보면서 “민석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라도 삶을 연장해 달라는 남편의 간절함도 뿌리치고 착한 그를 데려간 이유가 뭐예요?” 하면서 울기도 수차례…….

민석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함께 해 준 사람들이 있어 따뜻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이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 수 있다. 남편이 떠난 자리에 나와 민석이가 외롭지 않도록, 힘든 고통가운데 일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통로를 그녀를 통해 느낄 수 있었고 외롭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도 어디선가 사랑을 전하고 있을 그녀에게 처음으로 글을 통해 말해 본다.

“이선영 집사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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